영화 속 주인공이 삶을 바로잡고 싶을 때마다 시간을 되돌렸다면,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는 저는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놀랍게도 100년 전,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위기를 겪고, 또 극복해내더군요. (……)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또 그들의 선택이 역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생각해보면 비로소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제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재산이 된 셈이죠.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제가 역사에 몸을 기댔던 이유입니다.
---「들어가는 글_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중에서
역사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 저는 품위 있는 선택에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만을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품위 있는 삶을 만드는 선택의 힘」중에서
최초 또는 최고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아이폰, 한글의 공통점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처럼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는 결국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어요. (……)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창조 : 세상을 바꾸는 생각의 조건」중에서
정도전의 사상은 굉장히 급진적이었습니다. 모든 토지를 몰수해서 백성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노비도 해방시키자고 주장했어요. (……)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낀 정도전은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고민했어요. 길고 막막한 인생의 터널에서 주저앉는 대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고려 망해라!’하면서 괴로워하고 술이나 퍼마셨다면 정도전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잊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도전 :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중에서
독립운동가 박상진은 법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머리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와 권력을 모두 지닌 이름난 가문 출신이었지요. 그는 1910년에 판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평양 법원으로 발령까지 받았는데 사표를 던집니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했거든요. (……) 박상진은 결심합니다. 이제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 자리가 아니라 판사의 맞은편, 바로 피고인석이라고 말이죠.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박상진 :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중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정신적 유산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전통이라 부르고 대부분 그것에 따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죠. 하지만 저는 그 전통이라는 것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당연히 그래 왔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 기원을 낱낱이 가려본 적 없는 것들을 기꺼이 심판대에 올리고 과연 내가 따를 만한 생각인지 살펴보는 거지요. 나에게 맞지 않는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면 받아들이지 말고, 그 생각이 수정되는 데 힘을 보태면 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재를 바라본다면」중에서
조선의 18대 왕 현종의 실록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예송’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복을 입는 기간에 대한 논쟁이었던 예송은 현종 재위 기간 내내 지속되었는데 그로부터 약 350년이 흐른 지금, 예송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백성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잘난 양반끼리 대단한 기 싸움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 21세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러 논쟁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게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을 정도로 우선순위에 있는 일인지 말이죠. 과연 100년 뒤 우리 후손이 이 대립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평가할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뜨거움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뜨거움이 혹시 빗나간 열정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나의 온도는 적정한가」중에서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오늘을 잘살기 위해 필요한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