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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서사

대한민국 독서사

: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 양장 ]
리뷰 총점9.4 리뷰 40건 | 판매지수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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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82g | 128*188*30mm
ISBN13 9788974839574
ISBN10 8974839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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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은 연재 중이던 당시 《서울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단행본도 수십만 권이 팔렸는데, 시끌벅적한 논란.스캔들 등을 수반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논란은 고매한 대학교수(국어국문학과의 국어학 전공 교수)의 부인이 바람이 나서 급기야 집을 나가고, 교수도 젊은 여성 타이피스트의 종아리 같은 데 관심을 갖는다는 줄거리에 심히 불쾌감을 느낀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의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 황산덕은 《자유부인》을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1956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늘 점잖고 고뇌가 많았던 문교부가 키스 및 포옹 장면(정사가 아니다)의 필름을 약 100피트나 잘라내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 논쟁을 야기하고 대중의 관심을 더 크게 만들었다. 이런 견지에서 《자유부인》은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인 베스트셀러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이나 영화가 대규모로 흥행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그 자체나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이슈화(오해, 논란, 법정 공방 등)가 수반되고 시장을 자극해야 하기 때문이다. --- p.70

심훈의 《상록수》(1935) 독서사는 개발주의가 민족.민중주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3.1 운동 때 옥고를 치른 심훈의 이력 때문에 흔히 반일 민족주의 소설로 평가된다. 하지만 심훈은 그 자신이 카프(KAPF)로 이어지는 문학단체 염군사(焰群社)의 일원이었으며, “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 깊은 밤 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던” 친우 박헌영을 회고할 만큼 진보적이고 사상의 교류 폭이 넓은 작가였다. 실제 《상록수》는 기독교 계열의 농촌운동은 물론 반자본주의적이고 아나키즘적인 이상공동체로서의 ‘자치촌’에 대한 지향이 공존하는 소설이었다. 《상록수》는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1960년대식 개발주의 영웅서사로 재탄생했다. 영화 [상록수](1961)는 민족을 누대의 가난으로부터 구하겠다는 기치를 앞세우고 등장한 청년 영웅 채영신의 열정을 부각시킨다. 박정희는 이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박정희의 눈물은 채영신에게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감동의 눈물이자, ‘이등 객차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질 눈물이었다. --- p.105

그녀는 다른 ‘천재’들과 비슷하게 요절함으로써 ‘전설’이 되었고,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모든 문학소녀(가끔 문학청년도)의 우상이자 아이콘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녀의 독자들이 남아 있다. 전혜린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1968) 같은 전설적인 에세이만 남긴 게 아니라, 헤르만 헤세.루이제 린저 등 독일과 프랑스 문학의 번역.소개자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가 번역한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 등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구적인 교양과 실존 정신의 정화로서 광범위한 청소년과 독서 계층에 의해 읽혔다. 전혜린은 당시의 대한민국에선 불가능했던 개인주의나 여성주의적 해방의 어떤 아련한 표징이기도 했다. 즉 ‘읽고 쓰는’ 지적 여성의 1960년대식 상징이었던 것이다. --- p.125


1945년생인 최인호는 고교 재학 중에 문단에 나와 25세 이전에 이미 [술꾼](1970) [모범동화](1970) [타인의 방](1971) 같은 뛰어난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기린아가 됐다. 마치 김승옥이 그랬던 것처럼, 등장하자마자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통블생’(통기타.블루진.생맥주)으로 요약되는 그 시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 것은 《별들의 고향》이다. 이는 ‘《자유부인》 이후’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다. 1973년 9월 상.하권 합해 초판 2만 부를 찍고 6개월 만에 8만 부가 팔려, 당시 국내 창작물로서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0만 부를 돌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실 정확한 건 모른다. 보도마다 다르다. 《별들의 고향》의 발행부수 자체가 새로운 현상이자 신기록이었고, 혼란이자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최인호는 ‘젊음(젊은)’이라는 단어를 세 번 잇달아 사용하며 “젊음, 그리고 젊은 감정의 순수함을 꾸밈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젊은 독자들에게 파고드는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자기가 “특히 여대생에게 어필하는” 능력이라고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는 모두 청춘 남녀가 등장하여 당시 젊은이들의 (연애)감정과 사회의식 그리고 생생한 입말을 그려보였다. --- p.141

이런 자발적.공동체적 책 읽기의 시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인구의 규모와 질은 그 어느 시대도 1980년대와 비교하기 어렵다. 이른바 ‘명문대생’부터 ‘삼류 대학생’까지, 동북 끝 강릉에서 서남단의 제주도까지, 대학뿐 아니라 공장.야학.교회.사찰에 다니던 셀 수 없이 많은 청춘들이 ‘세미나’에서 같이 읽었다. 심지어 대입 재수학원 종합반 동기들의 독서 모임도 있었고, 고교 동문회에서도 학습 팀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팀원들 중에는 원래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이들도 있었겠지만, 시대의 기운이 아니라면 변혁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또 결국 그렇게 된) 소심하고 비루한 영혼을 가진 자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가히 ‘책과 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사회과학의 시대’나 ‘문학의 시대’는 저절로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겠나.
저 ‘함께 읽기’야말로 1980년대식 책 읽기가 지닌 정치성의 핵심이며,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 그리고 학교 선생과 부모들이 읽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꼭 읽는 것, 기실 그 어른들은 겁이 나서 읽어보지도 못한 것, 간혹 읽다가 잡혀가는 것, 읽고 흥분하여 정부와 어른들을 향해 돌 던지게 하는 것, 숨기고 불태워야 하는 것. 그런 것을 길거리에서 어깨 겯듯, 함께 읽은 것 말이다. 그것은 일부 억압성도 함유한 거대한 집합성이었다. 기성세대와 보수 세력은 이에 대한 대응에 골몰했다. 대학에서도 국사.국민윤리.교련 같은 과목들을 통해 반의식화 우경화 교육을 실시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왜?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읽은 책의 헤게모니는 지적 헤게모니라기보다는 윤리적 헤게모니였기 때문이다. --- p.195

《인간시장》은 한국 출판 역사상 공식적으로 집계된 최초의 밀리언셀러였다. 출간 2년 만인 1983년에 100만 부를 돌파했고, 제5권은 초판을 13만 부 제작했다. 당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까지 장총찬의 파노라마식 활약상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했다. 《인간시장》을 다 읽어버려 아쉬움이 남은 죄수들은 자연스럽게 황석영의 《장길산》을 읽었다고 한다. 이어서 교도소 방마다 “장총찬과 장길산 형님이 맞짱 뜨면 누가 이길까” 같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 또한 역사소설과 대중소설의 영역을 관통하는 당대의 시대적 감수성의 핵심에 ‘협’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작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 p.213

강석경의 《숲속의 방》(1986)은 1980년대 집단주의와 개인성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민음사의 ‘오늘의작가상’ 제10회 수상작인 이 소설은 대학가에서 애독되며 1986년도의 베스트셀러가 된다. 작품은 부르주아 가정의 셋째 딸인 불문과 대학생 ‘소양’이 자신의 환경을 수락하지도, 운동집단에 속하지도 못하고 정신적 방황을 하다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자인 언니 ‘미양’이 추적하는 형식을 취한다. 비틀스의 패널이 걸려 있는 그녀의 ‘방’ 낡은 전축에서는 레너드 코헨의 [파르티잔]이 흘러나오고, ‘소양’은 보들레르와 카뮈를 읽어가며 유미적인 자기 세계에서 살아간다. “신문지상에 일단짜리 학원기사가 시대의 밑반찬으로 연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대학생이 되고부터 그녀의 방황은 본격화된다. 부유한 속물적 부모에게 반항하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투신하지 못하는 그녀는 어디에도 동일화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이다. 그녀는 자신 속의 부르주아적 속성을 부수고 싶어 호스티스가 되는가 하면, 삶의 진실을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아 종로의 밤거리를 헤매 다닌다. 그녀는 집단주의라는 ‘숲의 아우성’ 속에서 안식할 수 있는 진정한 개인의 ‘방’을 찾아 헤매다 결국 좌절하고 만다.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들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들이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라는 그녀의 항변은 1980년대 운동이 억압하고 있던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 p.222

1980년대에 이문열이 이토록 열독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문열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풍부한 이야기성, 독특한 문체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이문열 소설의 주인공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태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이문열의 주인공들은 ‘시대와의 불화’-타락하고 비속한 세계와 결국 거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냉소와 비하가 뒤섞인 감정을 표출한다. 그의 주인공들은 진정성을 추구하며, 속물적인 주류적 가치와 운동.이념의 집단적 도그마 양쪽 모두와 불화하는, 고유한 개별성이 강조되는 ‘아웃사이더’이다. 1980년대의 독자들은 이 냉소와 자기비하라는 변형된 나르시시즘적 현학이 풍기는 정조에 열렬히 반응했다. --- p.226

1993년은 신경숙의 해였다.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1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신경숙 현상’을 불러왔다. 어떻게 신경숙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진정한 노동소설’ 운운하며 신경숙의 《외딴 방》을 ‘거친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비하려 한 백낙청을 비롯해 여러 남성 중진 비평가들이 신경숙을 상찬하고 나섰다. (…) 왜 그렇게 거의 모든 남자-중년-비평가들이 신경숙을 그토록 반가워하고 좋아했을까? 이는 더 풀어야 할 의문이지만, ‘1980년대식’ 노동.민중문학을 재빨리 극복 또는 청산하려 했던 문학적 주류에게 신경숙 소설의 문체와 내면성은 어떤 새로움의 진앙지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다시 말해 ‘1980년대’와 대비되는 ‘1990년대’를 주장할 중요한 근거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 p.245

탈이념 시대의 진보 담론은, 민주화를 이뤄내고 두 차례 연속 ‘민주정부’가 집권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두터움을 가졌음에도 언제든 극우 세력의 힘이 강해지고 사회가 퇴행하여 파시즘화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널리 수용되었다. 즉 사회주의.민중주의 같은 급진적 사상 대신 시민적 민주주의가 새로 필요했다. 이제 청년.학생들은 1980년대식 사회과학 서적과 마르크스-레닌-김일성의 책은 잘 읽지 않았지만, 홍세화.진중권.박노자.강준만 등의 책을 읽으면서 ‘진보’의 논리와 입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인문.사회과학적 교양과 책 읽기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사회운동’, 대중문화와 일상에서의 ‘문화정치’에 주목하는 문화주의, 그리고 언론개혁운동과 연관된 맥락 아래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사회의 모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 괴물을 본격적으로 상대해야 했다. 처음엔 괴물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새로운 단계를 이룰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세계 전체를 집어삼킬 새로운 경제-삶의 논리로 모든 시공간을 영토화하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기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못하는가에, ‘기업’뿐 아니라 ‘나’의 흥망이 걸려 있는 듯했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미.일 합작품(?)이다. 더구나 출판계는 마침 들이닥친 디지털 혁명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맞아야 했다. 독자는 점점 줄고, 나눌 파이는 작아지기 시작했다. 책 읽기는 세기말적 상황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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