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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온 편지

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 그책 | 2012년 04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8 리뷰 32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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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30g | 146*206*20mm
ISBN13 9788994040233
ISBN10 899404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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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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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대 문득 새들의 노랫소리가 듣고 싶은 적이 있는지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들의 합창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 숲으로 오십시오. 특별히 새벽과 저녁 무렵에 오셔야 좋습니다. 무수한 새들 저마다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모이고, 섞여 빚어내는 군더더기 없는 앙상블의 시간에 매료될 것입니다. 그대는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됩니다. 감나무 과수원 위쪽, 버드나무 한 그루가 아름답게 서 있는 자리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온몸의 긴장이 소멸하고 욕망의 때 역시 단숨에 씻겨 내려갈 것입니다. ---「열여섯 번째 편지 중에서」

진심을 담은 사과였습니다. 놀랍게도 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10여 분만에 모두 바가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리 준비해둔 빈 벌통에 그들을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습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습니다. 벌에게 말을 건네고 사과까지 하는 나를 그대는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수한 생명과 대등한 입장에서 살아보면 그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보다 말없는 생명들에게 감사와 사과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열일곱 번째 편지 중에서」

칡에게 휘감긴 나무들은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칡은 주로 탁 트인 공간에서 자랍니다. 칡덩굴에 휩싸이는 나무들도 대부분 탁 트여 빛이 좋은 자리에서 자라는 행운을 얻어 자랍니다. 하지만 신은 그런 공간의 나무들에게 오로지 그 유복함만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빛과 축적되어가는 양분을 활용할 수 있는 행운과 함께 더러 칡이 옥죄어 오는 고통도 감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모든 시련을 견딘 나무들에게만 새로운 개척지 숲의 주인이 될 것을 허락합니다. ---「스물네 번째 편지 중에서」

숲에서의 침묵은 자주 명상으로 이어집니다. 침묵하여 답답하거나, 침묵하여 고립과 단절로 빠져드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침묵함으로써 더 많은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되고, 오히려 침묵함으로써 나의 허위를 잘라내게 됩니다. 참된 침묵은 내가 뒤집어쓴 거짓을 잘라내는 과정입니다. 나의 거짓을 거둘 때 타자의 거짓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생명은 내 순수한 영혼을 두텁게 감싸고 있는 거짓된 요란과 현란을 걷어냄으로써 성장에 이릅니다. ---「서른한 번째 편지 중에서」

그대는 혹 맨몸으로 자연 위에 서 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아는지요. 처음의 경계심을 넘고 찾아오는 그 자유의 극치를 느껴본 적이 있는지요. 바람이면 바람대로, 햇살이면 햇살대로, 퍼붓는 비면 그 비 그대로, 몸의 감각은 무방비함의 즐거움에 젖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롭습니다. 모든 억압이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면서 구석구석 세포들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1만여 년 전의 인간 유전자가 그러했듯,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본래 이렇게 자유롭고 거침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숲을 뛰노는 짐승들의 주파수대역과 같은 대역에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산방 생활도 어느덧 3년이 다 되었습니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내키는 대로 살아가기’의 삶 속에서 가장 좋은 순간 중의 한 장면이 바로 위의 장면입니다. ---「서른네 번째 편지 중에서」

큰 바람 불고 눈 내리며 추워진 시간의 협곡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안으로 깊어가는 시간을 보냅니다. 이미 만들어놓은 겨울눈을 지키며 오로지 침묵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숲은 내게 간결함을 위해 먼저 멈추고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내 안에 이미 담겨 있는 씨앗과 새롭게 움틀 눈을 응시하도록 가르칩니다. 새롭게 성장할 때를 기다리되 협곡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마흔한 번째 편지 중에서」

나무가 이룬 성과와 결실은 낙엽과 열매,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까지 숲의 다른 생명들에게 환원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룬 모든 성과들 역시 이웃과 세상에 밀알처럼 쓰이는 삶을 꿈꿉니다. ---「마흔일곱 번째 편지 중에서」

나무들은 나목裸木이 되어 자신을 지켜냅니다. 겨울엔 오로지 자신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더 이상 소비도, 생산(인간으로 치면 무모한 모색」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목은 무언가를 생산하려는 시도를 멈춥니다. 당연히 소비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요. 간결해지는 것이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만 버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에는 그렇게 버티는 것만이 가장 큰 희망이고 수행인 시기가 있습니다.
---「마흔아홉 번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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