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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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2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5708 |
ISBN10 | 8932915709 |
발행일 | 2012년 0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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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2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5708 |
ISBN10 | 8932915709 |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페이지)
한 여자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 에르노만의 방식인가 싶어 잠시 멍했다. 경험한 것만을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내가 만나고 느낀 그녀의 글은 감정의 표현이 굉장히 솔직하고 담담하다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한 여자, 엄마의 죽음을 어떤 단절로 표현하는 그녀의 마음을 저절로 가늠하게 했다. 알면서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내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이 자리에 서서 숨 쉬고 있는지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을 때 툭 던진 표현.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라니...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감당하기 어려웠던 요즘이었는데, 미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내느라 더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의 담담한 말투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르게 하지만, 그것도 완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이 기록으로 저자는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한다.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었던, 소녀였다가 여자였다가 어머니가 된 그 과정을 되짚어가며 어머니를 기억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지금 그렇게 해야 할 것처럼 열기가 일어나는 마음을 오히려 객관적으로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을 부른다. 유년기를 통과한 어머니가 처녀로 지냈던 시간, 아버지를 만나 부부가 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지난한 삶을 살아가며 부풀린 몸무게. 그동안 자신은 성장했고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거리감이 편안했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그 사이 어머니는 늙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시간이 이어지다가, 또 다시 조금은 떨어진 삶. 그리고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4월 어느 저녁, 아직 6시 반밖에 안 되었는데 그녀는 벌써 슬립 바람으로 시트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잠이 든 통에 성기가 내보임. 방 안이 무척 더웠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내 유년기의 그 여자와 같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가슴팍이 파란 실핏줄들로 덮여 있었다. (98~99페이지)
저자의 표현처럼 나의 엄마도 누군가로부터 태어난 연결고리가 있을 텐데, 처음부터 나에게 엄마로만 존재했으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가끔 미국에서 엄마의 동생들이 다녀갈 때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언급한다. 작은 외삼촌의 기일에 맞춰 연말에 다녀간 막내 외삼촌과 지나간 시간을 얘기하는 엄마의 얼굴은 낯설었다. 예순, 칠순이 넘은 나이의 남매가 소소하게 나누는 지난 얘기들은 평범한 그리움이었는데, 이럴 때가 아니고서는 잘 나오지 않는 말들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얼굴이 떠오를까 싶은 물음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말로 꺼내진 않았다. 엄마가, 울 것만 같아서... 아니 에르노처럼 그 시간을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정도였다. 감정의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개인의 경험, 온갖 감정이 푹 파고들어있음에도 객관적으로 묵묵히 그 기록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어떤 마음일까. 어머니에 대해 쓰는 일이 자신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써야만 했던 이유. 그녀만의 방식일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며 남겨진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택한 이 기록이 그녀에게 어떻게 남겨질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의 엄마가 떠나고 나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엄마가 늘 바라는 것 두 가지. 치매 같은 병에 걸리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과 혹시나 기억한다면 무덤으로 만들지 말고 수목장으로 해달라는 거였다. 치매로 자식들 고생시킬까봐 걱정하며, 관리하기 어려운 것 말고 조금은 쉬운 방법으로 자신의 뒤처리를 해달라는 것. 오래 전부터 그런 말을 하는 것을 그냥 웃으면서 듣고만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말은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거부한다고 해서 오지 않을 시간은 아니잖아. 그래서 두렵고, 안타깝고, 괜히 슬퍼지고... 나의 엄마이기 이전의 시간들에 관심두지 않았던 게 괜히 더 미안해지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지난 연말부터 심해진 불면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덕분에(?) 요즘 새벽 2~3시 사이에 엄마를 자주 들여다본다. 숨을 쉬고 있는지 가까이서 지켜보곤 한다. 너무 피곤할 땐 코를 곯기도 하지만 평상시 엄마의 잠버릇은 그냥 고요하게 자는 거다. 가까이서 듣지 않으면 숨을 쉬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일 때도 있다. 그냥 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굳이 한 번 더 들여다보며 걱정을 키우는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언젠가부터 계속된 습관 같은 생각이니,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게,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저자는 어머니의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낸다.
아기로 태어나 소녀로 성장하면서, 여자와 어머니의 삶을 채운 시간.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가는 길에 알츠하이머에 걸려버린 여자인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시간을 기록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며 저자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기도 했다는, 이 기록을...
동시에 내가 겪을 그 시간도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나의 엄마가 부재했을 때, 나는 어떻게 나를 위로하고 엄마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상상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나가올(다가온) 그 시간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흘려 들으며 별 생각이 없었던 주제를 이 책으로 다시 떠올려본다.
엄마가 떠난 후에 고아가 될 내 마음을, 미리 다독여야 할 것만 같아서 말이다.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와 <남자의 자리>는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