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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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2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5708 |
ISBN10 | 8932915709 |
포함 국내도서 1만 5천원 ↑ 세계문학 북마크 OR 모비딕 간식접시머그 증정(택1/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12년 0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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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2쪽 | 214g | 128*188*20mm |
ISBN13 | 9788932915708 |
ISBN10 | 8932915709 |
자식에게 어머니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여성'이다. 자식은 어머니를 통해 여자란 누구인가,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가치관, 사고방식, 선입견, 편견 등을 형성한다. 어머니와 동성인 딸의 경우에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어떤 여자가 되고 싶은가(어머니처럼 되고 싶은가 혹은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쓰였다. 외동딸인 저자에게 어머니는 가장 친밀한 가족이자 가장 중요한 여자였다. 저자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일찍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 사회적으로 공장 노동자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상인이 되었고(식당 겸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남편과 똑같이 일하고 때로는 남편이 못하는 일들도 척척 해냈다. 저자는 그런 어머니를 의심 없이 사랑하고 존경했다.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저자의 어머니는 집안 형편상 다소 부담이 되는 교육비를 지출해 가며 딸을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 학교에는 주로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에서 나고 자란 여자 아이들이 다녔다. 저자와 같은 상인, 노동자 계급의 여자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만난 중상류층 이상의 집안의 여자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저자의 어머니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들은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 않았고(전업주부가 대부분이었다), 세련된 말씨와 우아한 태도로 딸을 가르쳤다. 저자는 그런 어머니들과 다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속내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에 '공부해라', '남자애들한테 한눈 팔지 말라'라고 잔소리만 하는 어머니에게 반발심, 저항감을 가지기도 했다.
결국 저자는 어머니가 소망한 대로 명문 대학에 입학했고, 상류층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가족을 꾸렸다. 저자의 어머니는 이제 자신과 학력도, 계급도 전혀 다른 딸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랬던 어머니가 어느 날 알츠하이머 병을 진단 받았다. 저자는 약 10년 간 어머니를 처음엔 자신의 집에서, 나중엔 요양병원에서 모셨다. 명민하고 성실했던 어머니가 하루가 다르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 역시 큰 고통을 겪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하루라도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은 어머니가 하루 빨리 세상을 떠나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편하게 해주길 바랐다. 애증에 죄책감이 더해지고 또 더해지며 저자의 내면은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도 회한도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또는 하지 않았던, 할 수 없었던 일들도 사실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체험과 감정, 생각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생애를 활자로 기록해 역사로 만드는 것. 그것이 자식을 작가로 키워낸 어머니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일 테니.
이 책을 읽으면서 앨리슨 벡델의 책 <당신 엄마 맞아?>가 생각 났다.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남자의 자리>)와 어머니 이야기(<한 여자>)를 책으로 쓴 것처럼, 앨리슨 벡델 역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펀 홈>와 어머니 이야기(<당신 엄마 맞아?>)를 책으로 썼다(정확히는 만화로 그렸다). 네 권 모두 훌륭하고 여운이 오래 간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 p. 41
엄마와 딸. 그 관계는 그 관계속에 놓여보지 않고서야 마음을 어찌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 관계속에 있어서. 더 그렇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작가 아니에르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쓴 책이다. 얇은 책인데, 작가는 이 책을 꽤 오랫동안 썼다. 아마도 자신이 기억하는 어머니가, 더이상 이 세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기에 그랬던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작가로써 그녀가 어머니를 가장 그리워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만나 전쟁통에 그녀를 낳았다. 그녀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기위해 어머니는 그녀에게 참 많은 것을 주려했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상점에서 물건을 팔던 어머니는 <먹고 살게 해주는 손님 p.52> 들을 위해 웃음을 짓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금방 표정이 변했다. 그들은 언제라도 더 싼곳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기에.
그녀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어머니는 그녀가 좀더 품안의 자식이길 바랬다. 그래서 그녀와 어머니는 많은 사소한 것들로, 둘의 서로 다른 차이로 다투었고, 그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였던 어머니를 점차 떠나보낸다. 대부분의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p.62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참 많이 와닿았다. 내가 태어나 가장 오래 내 곁에 있던 사람임에도 나는 온전히 엄마를 모르고, 엄마도 온전히 나를 모른다. 그러기에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좋은> 엄마는 아니였다. 반대로 나도 항상 <좋은> 딸은 아니였듯이. 작가는 그런 엄마와의 관계를 말한다.
결혼을 통해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된 시간, 그리고 엄마의 독립. 그리고 엄마의 노년까지 그녀가 기억하던 엄마와의 시간은 마냥 행복하지만도 그렇다고 서로가 대면대면할 정도 먼 사이는 아니였다. 딱 어디만큼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가까이 있으면 어색한 . 하지만 그 어디만큼은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런 거리이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돌보는 딸, 결국 돌아가신 엄마.
그녀의 글을 보며 나는 나의 어머니의 늙음을 생각한다.
나의 엄마에게 나이듦이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사회적으로는 노년의 시간속에 계시지만 나는 어머니의 늙음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에게 어떤 감정도 감추지 않고 다 쏟아낸다. 그녀가 늘 어렸을 때 보던 모습 그대로의 엄마인것처럼..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이러다 많이 후회하겠지..정말 많이 후회하겠지..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이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으며 굉장히 담담하게 쓴 글임에도 자꾸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늙어가는 나의 엄마에대한 연민을 가지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서 그런지도.
진짜 많이 슬펐다.
그냥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속에 있는 분이라면 특히 딸의 입장이시라면 작가의 글을 읽으며 드는 나의 생각에 많이 공감하실듯.. 아니실려나.. 나만 후회가 많이 들어 그런걸까..ㅠ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p.110
엄마의 존재가 갑자기 큰 폭풍처럼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의 존재가 그렇게 변하긴 하지만 - 엄마에 대한 마음은 조금 더 각별하다. 엄마는 항상 내 옆에 있다. 작아졌다가 조금 커졌다가 몽글몽글하기도 하면서 옆에 서 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온갖 세상 살이를 견뎌낼 수 있는 어른이 되어도 엄마 앞에선 한순간 어린아이로 머무르고 싶다. 엄마 앞에서라도,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려 보고 싶어진다.
최근에 엄마가 아팠다. 웬만한 일도 고통도 꾹 참던 엄마가 진심으로 아프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드는 감정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엄마를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훅,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솔직해진 엄마가 사랑스러웠다. 아픈 걸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했다. 엄마가 나보다 더 약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아주 가깝게 인식하게 되었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소설
작가 '아니 에르노'는 '경험하지 않은 건 쓰지 않는다'라는 철칙으로 자전적 소설을 꾸준히 써냈다. 생생하게 경험한 글감이 상상을 해서 만든 것보다 더욱 풍부한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자전적' 요소가 들어간 글은 자신의 내부와 치부를 모두 드러내며 감수한다는 뜻이다. 솔직함, 용감함, 과감함.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붙여지는 수식어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이 작가의 강점은 이것뿐만은 아니다.
내가 만난 그의 첫 책은 「부끄러움」이었고 이번에 읽은 「한 여자」는 두 번째 책이다. 분량이 꽤 짧은데도 나는 밑줄을 정말 많이 그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소설 속에서 화자는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하여, 그에게 남은 어머니에 대한 흔적 - 사진, 혹은 기억 - 을 통하여 어머니의 자서전을 써 내려간다. 어머니의 삶 속에서 다른 모습의 실루엣들이 겹쳐진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때로는 증오하며, 아름답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
내 마음과 겹쳐지는 순간
"처음에는 내가 글을 빨리 쓰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무슨 말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마치 어머니에 관한 진실 - 그 진실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 을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순서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양 단어들을 고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할지에 대해 궁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게는 그러한 순서의 발견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50쪽)
작가 '아니 에르노'가 책 속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장을 쓸 때 꽤 오랜 시간이 들었을 것 같았다. 또한 독자인 나도 글을 읽는 내내 크게 다가오는 문장들에서 엄마를 향한 생각과 마음이 겹쳐지는 순간 조금 멈칫하곤 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다시 첫 문장으로 되돌아가 둘을 이어 보았다. 다시 한번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살짝 훌쩍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 20쪽
그러한 상태가 차츰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실 때인 이달 초에 그랬듯, 날이 춥고 비가 오면 여전히 만족스러움. 그리고, <이젠 더 이상 그래 봐야 소용없구나> 혹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구나>(어머니를 위한 이런저런 일)를 확인할 때마다 밀려드는 공허한 순간들. 어머니가 보지 못할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이 자아내는 빈틈. (이제는 평범한 문장들, 심지어 진부한 표현들에 담긴 힘이 느껴짐.)
● 22쪽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 <어머니는 난폭했다>, <어머니는 전부를 다 불사른 여자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뒤죽박죽 떠올리는 것. 그렇게 해서 내가 되찾게 되는 것은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여자, 며칠 전부터 내 꿈속에 나타나,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다시 한 번 삶을 사는 나이 불명의 여자와 동일한 그 여자일 뿐이다.
● 23쪽
보다 정확히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
● 42쪽
사진 속 얼굴들이 움직인다는 착각이 일 정도로 아무리 오랜 시간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내 눈에 보이는 건 그저 1920년대 영화 속 의상을 빌려 입은 듯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웬 아가씨뿐이다. 장갑을 쥐고 있는 넓적한 손과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자세만이 그것이 내 어머니라고 말해 준다.
● 50쪽
두 달 전, 종이 위에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라고 쓰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그 뒤로,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장이고, 심지어 만약 그 문장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면 내가 그 문장을 읽으면서 느낄 감정과 전혀 다르지 않은 감정을 품고서 읽어 낼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병원과 노인 요양원이 위치한 구역으로 가는 것이나,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날에 대한 기억들이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불쑥 솟아오르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