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딘가에서
꽃도 열매도 있다 D랜드는 멀다 은행 줍기 안녕, 다나카 옮긴이의 말 |
저스즈키 루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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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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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없어서 쓸쓸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늘 곁에 있던 사람이 도중에 사라지면 아마 쓸쓸하겠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빠의 빈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서 대답하기가 늘 곤란하다.
--- p.13 엄마는 공사 현장에서 남자들과 어울려 힘쓰는 일을 한다. 거기서 여자는 엄마뿐이다. 볕에 탄 머리카락은 퍼석퍼석하고 잘 먹는데도 말랐다. 날씬해서 부러운 몸매가 아니라 가난해서 비쩍 마른 몸이다. 잘 씻어도 얼굴이 어딘가 지저분해 보이고, 여름에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대자로 뻗어 낮잠을 자는 모습은 꼭 밭에서 방금 파낸 흙 묻은 우엉 같다. --- p.21-22 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나는 하나도 안 좋을 것 같지만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 p.23 “이제 됐어. 아빠, 머리가 많이 하얘졌네. 커피 잔도 예전에는 아빠가 막 돌렸으면서. 내가 무서워서 꺅꺅 소리를 질렀는데.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칠 년은 그런 거야.” --- p.21~22 」 눈을 감아보았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아빠의 모습을 찾았다. 미키의 아빠나 영정 사진으로 본 나카노의 아빠, 유카의 아빠, 집주인 아줌마의 남편, 나중에는 기도 선생님의 얼굴까지 차례차례 떠올랐지만 모두 우리 아빠의 모습은 아니다. --- p.64~65 왠지 평범한 가족 같았다. 지금까지 계속 부족했던 것, 찾아 헤맸던 퍼즐 조각을 드디어 맞춘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족 단위로 온 것 같았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다. 지금껏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나?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싶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남들과 같아졌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 p.117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 p.151 ‘어쨌든 살아 있다’, 엄마의 경계선은 늘 거기다. 아무리 크게 실패해도 살아 있다. 수치스럽지만 살아 있다. 죽을 뻔했지만 살아 있다. 하지만 기준이 그거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다 오케이이지 않을까? --- p.197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 p.266 “누구든 슬플 때나 괴로울 때는 울어. 안 우는 사람을 없어.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 ‘보이즈 돈 크라이’가 아니라 ‘소년이여 크게 울어라’야. 노 보이 노 크라이, 세상에 울지 않는 소년은 없어.” --- p.269 |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각자의 인생을 비춰주는
빛과 같은 이야기 이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은 다나카 모녀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다루지만 결국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둠 속에서도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살아질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다나카 하나미와 그 엄마,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언젠가 어딘가에서」에서 담임 선생님께 ‘어느 가정에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인 ‘장식장 안의 해골’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집 해골은 이 찻장으로는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하나미는 「꽃도 열매도 있다」에서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다는 겐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안녕, 다나카」에서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고통받는 신야에게 다나카 모녀는 인생의 가치란 좋은 학력과 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선사한다.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_266쪽, 「안녕, 다나카」 ‘인생의 그늘을 비춰주는 짧은 빛, 희망을 선물하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각기 다른 상처를 보듬어준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자극적인 내용 없이 사람의 마음에 무해하게 스며드는 선한 소설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단 하나의 감동 소설 행복은 따스하고 양지바른 곳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도 남편도 없이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막노동을 척척해내며 딸에게 가난을 묻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엄마 다나카 마치코. 그런 엄마를 알게 모르게 지켜보며 자신보다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딸 다나카 하나미. 돈은 없어도 늘 마음에 여유를 한가득 품고 다니는 다나카 모녀의 유쾌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기분 좋은 미소와 작은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더라도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고 싶은 하나미의 바람처럼 다나카 모녀에게는 늘 서로가 첫 번째였다. 서로의 존재 덕분에 햇볕 한 줄기 없는 곳에서도 이들의 얼굴은 눈부시게 빛난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가 타인을 통해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을 때, 늘 웃음을 잃지 않던 해바라기 같은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작가는 이 소설을 펴내며 ‘희망이 느껴지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먹다 남은 복숭아 씨앗이 오랜 시간이 지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기적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 속에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을 움트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