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믿음만큼 중요한 동력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숭배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대개는 믿음을 드러내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미적 감각을 활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모든 경우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거꾸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믿음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믿음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다움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드러내려고 한 것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미적 감각을 활용한 작업이 믿음만 아니라 미적 감각 또한 고양시키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믿음을 활용한 작업이 아름다움만 아니라 믿음 또한 고양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의도했던 것보다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 더 도드라지는 일도 일어난다. 결과는 동기에 의존하지만 그러나 동기는 결과를 제어하지 못한다. (……)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둘 모두 근본적이고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라는 것. 사람은 숭배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 숭배를 위해 즐기고 즐기기 위해 숭배할 수 있다는 것. 『켈스의 책』과 천산의 벽서를 탄생시킨 것은 믿음만도 아니고 아름다움만도 아니라는 것. --- pp.26-27
성인이 된 후 후는 오랫동안 라면을 먹지 못했다. 라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자리를 피해야 했다. 라면은 그의 내부에서 털어 낼 수 없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료로 작용했다. 자기가 라면에 환장하지 않았다면, 박 중위가 주는 라면을 받아먹지 않았다면, 아예 라면 맛을 몰랐다면 연희 누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관련은 서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을 덮친 태풍 사이의 관련만큼 비정형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태풍은 일어날 것이다. 혹은 나비가 수만 번 날갯짓을 해도 태풍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태풍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는 사소한 현상들이 태풍이 일어났기 때문에 태풍을 유발한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결과가 무작위로 원인들을 소환하는 이 시스템은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지원받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인간 심리의 무규칙성과 돌발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인과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낸다.
연희에게 일어난 일은 그가 라면을 먹지 않았어도 일어났을 일이다. 그가 라면을 먹은 사건과 연희의 사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라면을 먹지 않았는데도 그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는 자기가 행한 다른 어떤 일을 끄집어내어 그 사건의 원인으로 상정하고 자책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끌어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죄의식을 덧씌우기 위해 무엇이든 찾아냈을 것이다. 만들어 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식이었으니까.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죄의식이 느껴져서 괴로웠을 테니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차라리 죄의식을 만들어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자기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나았을 테니까. 그는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 죄의식을 필요로 했다. --- pp.40-41
비가 갠 아침에 대문 역할을 하는 통나무 기둥에 기대 잠든 후를 발견한 사람은 헤브론 성의 한 형제였다. 헤브론 성에서는 모두 형제로 불리었다. 예외는 없었다. 나중에 후가 그 사실을 궁금해했을 때 한 형제는, 모든 개미들은 개미로 불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개미들에게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모든 개미들을 그냥 개미라고만 부른다. 사람들의 차별 없는 호명 속에서 개미들은 평등하다고 형제는 설명했다. 신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차별 없이 평등하고 차별 없이 하찮은 존재다. 개인마다 개인만의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특성은 신의 시선으로 보면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다.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닌 것을 내세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것이 모든 형제들을 형제로 호칭하는 이유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하찮은 존재이고 한없이 하찮은 존재로 서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차이를 부각함으로써 생기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이 세상의 욕망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라고 형제는 설명했다. --- p.93
군복을 입고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군복을 벗은 후에도 한정효는 장군의 충실한 그림자였다. 그는 그림자였으므로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장군을 환한 빛 가운데 드러나게 했다. 그것이 그가 자신에게 부여한 그의 일이었다. 실체가 빛날수록 그림자는 더 어두워졌고, 그림자가 어두워질수록 실체는 더 빛났다. 그림자를 어두워지게 하기 위해 실체가 더 빛을 내지는 않았지만, 실체를 빛나게 하기 위해 그림자는 더 어두워져야 했다. 오래전에 한 신비주의자는 절대자를 한없이 높이고 자기를 한없이 낮추기 위해 그림자를 비유로 사용했다. “당신의 존재 앞에서 나는 감히 존재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환상이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시는 경우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지우고 보이지 않게 하면서 오직 장군만 높아지고 빛나고 위대해지도록 힘썼다는 점에서 그 역시 신비주의자였다. 그러나 정치권의 신비주의자들은, 높고 빛나고 위대한 절대 권력자의 그림자로 자처함으로써 그 영광의 휘장을 같이 두르기도 한다. 절대자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에게 이런 욕망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정치적 신비주의자들은 훨씬 현실적이고 노골적이다. 권력자가 높고 빛나고 위대해질수록 그들이 두르게 될 휘장 또한 더 영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은 권력자를 더 높고 더 빛나고 더 위대해지게 떠
받든다. 그들을 위해서도 권력자는 더 높고 더 빛나고 더 위대해져야 한다. 그 사실을 의식했든 안 했든, 장군이 높아짐에 따라, 그만큼은 아니라도, 이 신비주의자 역시 덩달아 높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pp.164-165
젊은 교회사 강사 차동연이 이끄는 천산 공동체 발굴 팀은 여러 날에 걸쳐 수도원 건물 지하 방을 조사했다. 복도를 따라 양쪽에 만들어진 방은 모두 일흔두 개였다. 모양과 크기는 일정했다. 한쪽 면이 2.5미터, 다른 쪽 면이 3.9미터 내외로 세 평 정도였다. 방에는 벽면의 글씨 외에 어떤 장식도 없었다. 이미 소개된 대로 성경을 옮겨 적은 글씨들은 반듯하고 꼼꼼했으며 심혈을 기울여 쓴 표시가 또렷했다. 대개 먹을 썼지만 군데군데 채색이 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야생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염료를 이용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크기와 색깔이 적절히 섞여 조화를 이룬 글씨들은 거리를 두고 보면 미술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흔두 개의 방에 적힌 글들의 필적을 분석한 발굴 팀은 잠정적으로 한 사람의 필적만은 아니라고,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필사에 참여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 p.332
이번에 『켈스의 책』 대신 그가 인용한 것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이었다. 미로와 같은 지하 통로, 통로 양옆의 묘혈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상징들을 형상화한 벽화들(물고기 배 속의 요나, 세례 받는 예수, 오병이어, 비둘기, 어깨에 양을 얹은 목자 같은)과 천국에서의 안식을 염원하는 기원문들로 채워진 카타콤 내부를 천산 공동체의 지하 공간과 비교하고 그 유사점을 언급했다. 그는 천산 공동체 벽서의 제작 동기가 카타콤 벽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이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과 곧 맞이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놀라울 만큼 강렬한 소망. 그들은 순수하고 철저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을 ‘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체메테리움(Coemeterium)’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들이 무덤을 잠시 쉬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시 로마인들이 불렀던, ‘죽은 자들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네크로폴리(Necropoli)’에 대한 부정의 의미가 있었다. 차동연은 체메테리움이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그들은 육체에 갇혀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니며, 카타콤에 들어와 누움으로써 비로소 참된 쉼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점은 천산 공동체의 형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증언했다.
--- p.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