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5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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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384g | 145*210*20mm |
ISBN13 | 9788936437381 |
ISBN10 | 8936437380 |
발행일 | 2016년 05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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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384g | 145*210*20mm |
ISBN13 | 9788936437381 |
ISBN10 | 8936437380 |
봄밤 / 삼인행 / 이모 / 카메라 / 역광 / 실내화 한켤레 / 층 / 해설│신형철 / 작가의 말 / 수록작품 발표지면 |
건축을 하는 사람들 중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 역시도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동안, 주당이 되었으니까. 나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술 좋아하는 대학 선배들이 아무래 난리를 쳐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던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설계사무소에 입사하고 나서다. 한 달의 반 이상을 철야 근무 하고,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원 전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특히나 당시 우리 팀 이사님과 팀장님은 팀워크를 외치며 해장까지 같이 하기를 바랐으니... 우리 팀에서 회식을 좋아하는 팀원들은 없었다. 그렇게 고집 부리듯 술을 마시지 못했던 나는 이 팀에서 살아남고자 술을 마셨다. 여자 팀원이 나 하나였기에 꼼수를 부릴 수 없었고, 뭐든 같이하기를 원했기에 빠져나갈 수 없었던 나는 평생 마실 술을 그때 다 마신 기분이었다. 근데 참 웃긴 건 못 마실 것 같은 술이 마실수록 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게도 마셨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치열하게 일하고, 술도 마셨기에 웃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ㅋㅋ 해석도 자유넹.)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가 술을 마시는 건 힘들고 괴롭고 아프기 때문 아닐까? 권여선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제목부터가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책은 아프고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술을 마셔야만 용기가 생기고, 힘이 생기는 그렇고 그런 아저씨와 아줌마의 이야기. 너는 왜 그렇게 인생을 살았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쓸쓸함이 묻어나는 책이다. 모두 7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술’이라는 공통된 소재가 있다.
쇠를 주무르던 일을 했던 남자와 전직 교사였던 여자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봄밤’, 친구 부부의 이별 여행을 따라가며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는 이야기 ‘삼인행’,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시이모가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가족과 연락을 끊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위해 조카의 아내에게 독백하듯 이야기 하는 ‘이모’, 스쳐가듯 했던 말로 인해 잠시 사귀었던 남자가 죽게 된 이야기 ‘카메라’, 커피 잔에 소주를 마시는 신예 작가의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역광’, 고등학교 동창인 경안, 혜련, 선미가 다시 만나 겪게 된 일을 그린 ‘실내화 한 켤레’, 인태와 예연이 만나 매혹되지만 우연히 듣게 된 말에 모든 것이 희미해진 ‘층’. 모두가 ‘술’이 조금이나마 소재가 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우울할 때보다 기쁘고 행복할 때 남편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거의 10년 가까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나는 집에서만 술을 조금 마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가 심신이 안정 될 때 술을 마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음을 안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가 거의 없는 주택가라 술을 마시고 깽판을 치면 다 들린다. 특히나 얼마 전에 이사 온 앞 집 아저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술 주정꾼이다. 그 아저씨만 술을 마시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그 아저씨의 친구가 매일 와서 술을 마신다. 얌전히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매일 뭐 하나씩 깨부수니 동네가 편안할 날이 없다. 그들이 그렇게 술을 마시는 이유가 뭘까? 세상이 마음 같지 않고, 화나는 것들 뿐 이어서 일까? 그나마 술이 있기에 이 힘든 세상을 버티고 있는 것일까
7편의 단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카메라’다. 그 카메라가 아니었다면,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관주는 살아있었을까? 관희와 잠시 같이 일했던 나는 관희의 동생 관주와 잠깐 사귀게 된다. 그걸 관희에게는 비밀로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래 가지 못했고 헤어졌다. 사귀던 당시 ‘나’는 관주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관주는 자신이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말한다. 조교가 되면 월급이 제법 나온다면서. 카메라를 산 관주는 그걸 들고 ‘내’가 있는 동네에 왔었다. 그리고 우연히 사진을 찍게 되고 그게 불행의 시작이 되었다.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아니 카메라가 아니었다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젊은 청춘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생각났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오늘은 아무래도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다. 내 삶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졌으니까.
앞서 읽었던 이 작가의 산문집이 내게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고,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구한 것이었는데, 이제 이 책은 이 작가가 쓴 다른 책까지 관심을 갖게 해 준다. 독서의 기쁨, 작가의 발견이다. 한동안 우리 소설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만나게 된 것 같아 참 고맙다.
소설의 분위기는 대체로 밝지 않다. 그렇다고 어둡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어쨌든 가라앉아 있다. 사는 일에 희망도 별로 없어 보이고, 답답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술을 마시고 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 무엇 때문에 온통 암울해 보이는 분위기에도 나는 기꺼이 들어서는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읽고 있는 건가 따져 보고 싶게 해 준다.(보통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에 그다지 마음 두지 않는 스타일인데.)
좋은 문장 표현에 반했던 면도 있다. 줄거리만 따라 읽어 가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해 놓은 게 좋아서 지나쳤다가도 다시 돌아와 읽었다. 이런 경험,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서 해 봤던 건데. 내용도 주제도 문체도 차이가 아주 많은데 나는 비슷하게 읽고 있다. 비슷하게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또 생각해 봐도 좋다. 내가 좋아할 작가가, 내가 기뻐하며 읽을 책이 늘어났다는 것은.
학생들과의 독서 모임보다 어른들이 여는 독서 모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소설의 주제를 찾아내는 것보다 각 소설들을 읽은 후 자신이 생각한 것만 얘기해 보라고 해도 참여한 사람 수만큼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이 작가의 소설의 장점이 이것이었구나, 읽는 사람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 어쩌면 이건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얻었던 유익한 경험이기도 한데.
끝까지 다행이다 하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소설이 다시 그의 소설을 불러 내는 일은 좀처럼얻기 어려운 행운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