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홀 푸드에 갔었는데요. 거기 계산원 말로는 출산하고 4주 있다가 복귀해야 한대요. 당연히 무급이고요.” 그러자 유코가 말했다. “불법이잖아요. 3개월 동안은 해고할 수 없을걸요.” “그렇죠. 나도 계산원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저 어깨만 으쓱이던걸요.” 젬마가 말했다. “내 친구 하나가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데요. 걔는 아들을 낳고 18개월 휴가를 받았대요. 그것도 유급으로요.” 콜레트가 대답했다. “캐나다에서는 출산휴가 간 여자의 자리를 1년 동안 지켜줘요. 이 세상에 유급 휴가를 의무로 두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랑 파푸아뉴기니밖에 없다는 거 알아요? 가족의 가치를 그토록 중시하는 미국이 말이죠.” --- p.51~52
“그게 저 파스타였어요.” 알마는 기다란 방의 저 끝에서 이야기했다. 위니에게는 들리지 않을 거리였다. 흐느끼느라 중간중간 말이 막혔다. 부드러운 가죽 소파에 앉은 알마는 한 손에 묵주를 쥔 채로, 말을 하다 말고 번번이 눈을 감고서 구겨진 화장지 한 움큼을 천장으로 흔들며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뭐라 기도를 읊조렸다. 집에서 가져온 파스타를 너무 많이 먹어 식곤증이 왔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여동생 집에 있는 자기 아기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었다고 했다. 알마는 그런 뒤에 잠든 게 분명하지만, 그건 자신답지 못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며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위니를 슬쩍 바라보았다. 알마의 딸이 이앓이를 하고 있어서 전날 밤 네 번이나 깼다면서. 알마는 깨어나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런데 요람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 소리도 못 들으셨습니까?” --- p.75
위니가 TV에 나왔다. 하지만 자신이 알던 위니가 아니었다. 화면 속 위니는 훨씬 어린 10대였다. 무대에 서서 어깨끈 없는 금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뒤로 느슨하게 묶어 올린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주 똑같이 생겼지만 좀 더 나이 든 여자의 팔을 잡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위니의 어머니가 분명했다. 또 다른 화면이 나왔다. 위니는 파스텔색의 레오타드 상의에다 긴 튤 스커트를 입고 무릎까지 끈을 묶은 발레슈즈 차림이었다. 프랜시는 조리대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 소리를 높였다. “……그웬돌린 로스는 1990년대 초반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 「블루 버드」의 주인공으로 유명했습니다.” --- p.92
“오늘 아침 우리는 아주 불쾌한 사진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날 밤의 위니 로스를 보여주는 사진이죠. 아마 바로 이 순간, 겨우 생후 7주밖에 되지 않은 위니의 아이는 침대에서 유괴되었겠죠.” 카메라는 사진을 다시 커다랗게 비췄다. 이번에는 위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화면이었다. 술에 취해 입이 살짝 벌어지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이거 보세요. 취했네요.” 퍼트리샤 페이스가 계속 말했다. “정말 묻지 않을 수 없군요. 이 사진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혹시 이 사진으로 이제껏 했던 이야기가 전부 바뀔까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다들 그동안 다른 쪽에만 초점을 맞추고, 경찰이 일 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면이나 보디라는 남자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죠. 유모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고요. 하지만 모르겠네요. 이제 갓 엄마가 된 사람이, 출산한 지 겨우 몇 주밖에 안 된 여자가 애를 집에 놔두고 외출을 했다라. 가서 이 사진처럼 놀았다는 거죠? 요즘의 모성애는 뜻이 달라져서 이래도 되나 보죠?” --- p.228
“맞아요. 그리고 로스 씨도 술을 마셨죠. 그날 밤 로스 씨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기억하십니까?” “벌써 물어보셨잖아요. 지난번에요.” 넬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착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마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래요. 술 마신 게 사건이랑 무슨 연관성이 있는데요? 위니는 그날 밤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이스티를 시켰으니까. 그리고 케이블 뉴스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모르겠지만, 애 낳은 여자도 술 마실 자유가 있단 말이에요.” --- p.241
“그 여자를 집에 데려가고 싶어서 죽을 거 같았어. 침대에 눕히고 싶었다고. 그 드레스를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남자는 프랜시의 다리 사이에서 손을 떼고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손바닥을 더 세게 비벼서 빨리 움직이게 했다. 남자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위니, 제기랄. 그 여자 죽여주게 섹시했는데.” 프랜시는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흘리는 신음이 방 안에 퍼졌다. 사람들이 이 모습을 쳐다보았다. 당구대 옆에 있던 인부 둘 다 꼼짝도 하지 않고서, 당구채를 갈퀴처럼 옆에 들고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프랜시는 울고 있었지만, 아치라는 남자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듯했다. 그는 윗입술에 밴 땀을 혀로 핥으면서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여자의 아기라. 납치라는 건 말도 안 돼.” 그가 고개를 젓더니 맥주를 마저 마시려고 잔을 잡았다. “경찰이 조만간 그 여자를 잡아다가 신문을 해보면 좋겠군. 완전 맛이 간 여자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