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이며, 현재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 「이광수 논설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의미」, 「최인훈 소설에서의 반복의 의미」 등과 평론 「윤리의 표정」, 「부재의 흔적들」 등이 있다.
이형식이 김선형과 처음 만나 인사를 주고받던 이 시대만 해도 사정은 사뭇 달랐다. 자유연애란 자율성의 다른 이름이었고, 자율성은 근대적 인간의 표지(標識) 바로 그것이었다. 근대적 인간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다양한 가치들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대신 의심하고 질문에 부친다. 그는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가치를 만들어 내고 가치의 주인이 된다. 이광수는 ‘따르도록 만들 수는 있으나 알게 할 수는 없는(可使由之 不可使知之)’ 타율적 도덕이라고 유교 도덕을 비판하는데, 자유연애는 이와 상반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짝지어 준 사람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의 관계란 근대적 의미의 도덕률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일종의 본보기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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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초기 논설을 보면 그가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상치되지 않을뿐더러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들은 순전히 생물학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조물주의 작용을 통해 종의 번식이라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인간 세계 역시 그렇다는 것이 이광수의 논리였다. 이광수는 나중에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는 것을 이기적인 태도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음을 깨달은 데서 온 변화일 것이다. 『무정』을 쓰던 때의 이광수에게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세계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경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젊은 지식인 이형식은 개화 지식인의 딸이자 근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 선형에게 영어 개인 지도를 해 주면서 조금씩 연정을 품게 된다. 그런 형식 앞에 옛 은사이자 한말 지식인 박 진사의 딸 영채가 나타난다. 영채는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하고자 기생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정혼한 형식을 위해 절개를 지켜 왔다. 형식이 두 여성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 영채가 겁탈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좌절한 영채는 유서를 남기고 형식을 떠나 버린다. 결국 형식은 영채를 잊고 선형과 결혼해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한편 실의에 빠졌던 영채는 평양으로 가던 기차 안에서 개화한 신여성 병욱을 만나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각각 미국과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탄 기차 안에서 형식과 선형, 그리고 영채는 운명적으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