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현재 완료 용법, 수동태, 목적격 관계대명사, 이런 말은 거리낌 없이 내뱉으면서도 정작 매일 먹는 마요네즈Mayonnaise 나 크루아상Croissant 발음 같은 건 자신이 없죠 .
지금 와서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민망합니다. 물어봐도 어차피 나랑 비슷한 교육을 받은 옆 사람이라고 별수 있을까요. 네이티브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학원 문을 두드려보지만 정작 발음 정도는 기본이라는 건지, 수업은 회화반부터 시작하곤 합니다.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느낌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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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몇 년 한국식 교육을 받은 우리의 혀와 우리의 영어 브레인은 이미 진화를 거쳤습니다. 미국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학습법을 따라 해봐야 맞지 않습니다. 맨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거랑 전 애인 이름 위에 문신을 덮어씌우는 수정 방식이 다르듯이, 여러분의 영어는 지금 수정과 교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베이비식 백지상태 공부법과 같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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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리가 알고 보니 외국인이라는 사실, 그것도 아주 모범적인 영어를 구사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언제나 내 손이 닿는 거리에, 네이티브인 시리가 제가 말 걸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여러분이 영어로 말 걸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라도 더 알아들으려고 고민합니다. 부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대답합니다. 시리는 내 호주머니 속 외국인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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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발음공부의 가장 큰 난관은 피드백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누군가의 발음을 듣는다고 해서 내 발음이 고쳐질까요? 피드백 없이 남의 발음을 따라 해봐야, 내 발음이 저 발음이랑 비슷한지 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피드백이 없으니 실력 향상이 쉽지 않습니다. 몸이 좋아지고 싶다고 운동선수의 영상은 열심히 찾아봤는데, 정작 이상한 자세로 스쿼트Squat를 하다가 몸만 축나는 꼴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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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걸 보니 분명히 법칙이 있을 거야! 법칙을 외우면 되겠지! 하는 분도 계시겠네요.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왜냐면 알파벳 o 발음이 심지어 몇 가지 더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Movement(무브먼트)의 ‘우’ 발음도 있고 Coffee(커피)의 ‘어’는 앞서 배운 발음 ‘어’와는 조금 다른 발음입니다.
글자는 하나인데 다섯 가지도 넘는 o 발음, 법칙으로 외워봐야 실제 말할 때 바로 떠오를 리가 없겠죠? 법칙을 외워봐야 소용없다고 계속 강조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영어는 한글처럼 쓰여진 그대로 읽는 언어가 아니거든요.
--- p.74
우리는 학교에서 미국식 영어를 배웠고, 미국식 영어에서 ‘-tter’은 ‘-터’가 아니라 ‘-러’였습니다. 하지만 책 앞머리에서 강조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네이티브를 따라잡는 게 아닙니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혀로 억지로 네이티브 발음을 흉내 내기보다는 상대가 알아듣기 쉽도록 전달력 높은 깨끗한 발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매럴’이 아닌 ‘매터’로 읽어볼까요? 자신감을 갖고 ‘-tter’은 ‘-터’로 읽어도 됩니다. 네이티브도 백이면 백 알아듣습니다(시리도 알아들어요!). 그럼 성공입니다.
--- p.85
영어에는 Syllable이라고 하는 ‘음절’ 개념이 있습니다. ‘박자’ 또는 ‘리듬’이라는 명칭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발음공부를 하다가 이런 용어가 나오면, 문법적인 용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음절’ 개념이 한국인의 영어 발음 개선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 알고 계셨나요?
음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분명 옳게 발음했는데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황당한 경우가 바로 음절을 잘못 끊어 읽어서 그렇습니다.
--- p.91
“I am sixteen going on seventeen, innocent as a rose(난 열여섯, 곧 열일곱이 돼. 장미처럼 순수해).”
다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보셨나요? […]노래에 나오는 Sixteen과 Seventeen 은 강세 위치가 아주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학교에서 많이 배우셨을 거예요. 강세가 뒤에 가면 ‘식스틴(16)’, 강세가 앞에 오면 ‘식스티(60)’ 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헷갈려서 강세를 잘못 두면, 「Sixty Going On Seventy(난 예순, 곧 칠순이 돼) 」’라는 노래가 되어 버립니다. 그만큼 강세가 중요하겠죠.
--- p.112
사람은 보통 ‘닥치면’ 어떻게든 한다고 합니다. 당장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면, 당장 애인이 외국인이라면, 손짓발짓을 섞어서라도 영어를 하게 됩니다. 물에 빠졌으면 당장 개헤엄이라도 치는 게 당연합니다. 바닷물에 빠졌는데 그 와중에 수영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죠.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여러분은 아직 영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아직 닥치지 않았는데도 미리 지혜롭게 예습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공부가 늦은 게 아니라, 빠른 셈이죠.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