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예술이란 것도 알면 알수록 정이 붙고 좋아진다. 또 자주 많이 접하다보면 몰랐던 나만의 취향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이 설명해준 대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씩 이해해가며 좋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앞서 말한 양 극단의 두 가지 태도를 항상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기쁨을 주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감동을 받게 하는 예술작품은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흠모해 수백 년을 살아남은 예술작품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좀더 많다. 손바닥을 부딪쳐야 소리가 나듯이 그게 나의 취향과 일치하면 예술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데, 설사 일치하지 않더라도 별 상관은 없는 것이다.--- pp.20-21
감동을 주고, 마음에 평화를 주고,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정화시키고,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생각하는 즐거움도 주는 예술에 대해 ‘좋아. 하지만 예술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반발하는 사람이 많다.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지만 존중한다. 그러나 본인은 그렇다 쳐도 제발 자녀한테 만큼은 국영수 조기교육보다 공연 한 편, 전시회 한 번을 더 접하게 해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 예술 즐기는 습관을 갖도록 기를 쓰고 노력해야 한다. 분명 우리의 자녀들은 그동안 과소평가된 우뇌형 재능이 ‘밥 먹여주는’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를 보고 ‘원은 360도’라고 생각하는 아이와 달이 밥을 많이 먹고 배가 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p.77
현대는 관객이 공부를 해야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관객들이 작품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나쁘게 말하면 적극적인 감상자들을 제외하고 미술과 관객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을 가르는 큰 분수령이 되었다. 피카소는 이것을 회화가 끝장이 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예술이 전통과의 모든 연결을 상실하고, 인상주의가 가져온 해방이 화가로 하여금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허락하자마자 회화는 끝장이 났다. 화가의 감각과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과 어디에서 출발했건 간에 각자가 이해하는 대로 회화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게 되자, 회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개인들만이 존재했다. 조각도 똑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피카소가 위와 같이 이야기한 것은 결국 전통의 규칙이 끊어진 시대에 화가의 창조력이 경쟁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 규칙을 끊은 첫 번째 선수는 1913년 남자 소변기를 ‘샘’이란 이름으로 전시장에 내놓은 마르셀 뒤샹이다.--- p.94
오케스트라에서는 일단 현악기가 기본이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연주한다. 당연히 현악기 주자의 연주 실력이 오케스트라 수준을 결정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내한했을 때 소문만큼 뛰어난 연주 솜씨도 놀라웠지만, 현악기를 활로 긋는 단원들의 보잉 각도가 마치 줄선 군인처럼 똑같아 감탄했다. 관악기는 이에 비하면 옹기종기한 솔리스트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곡에 따라 악기 하나당 네 명까지도 연주하긴 하지만 대부분 악기당 한 명이 연주한다. 대신 악기의 종류가 다양하다. 목관악기에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바순 등이 있고, 금관악기로는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가 있다. 악기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은 음악의 색채를 그만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일 터, 이런 중차대한 임무 때문에 관악기 연주자들은 비록 현악기보다는 뒤쪽에 위치하지만 무대 정 가운데 나란히 앉아서 연주한다. 그래서 관악기 연주자들을 오케스트라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pp.193-194
오페라 하면 최고급 공연 장르로 여겨진다. 오페라에게 이처럼 억울한 오해는 없을 것이다. 시작이야 400여 년 전 이탈리아 귀족들이 사랑방에 모여 ‘뭔가 심심한데 음악과 드라마를 그럴 듯하게 합칠 수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실험예술은 그 시조격인 작곡가 몬테베르디를 거쳐 스카를라티, 페르골레시 등 르네상스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뮤지컬처럼 당대 대중 공연의 총아가 되었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헨델이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배워 영국으로 돌아가 음악시장을 독점할 정도였다. 서민들이 오페라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오페라의 형식과 내용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대 전설이나 신화를 다루던 정가극 ‘오페라 세리아’에서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고 공감을 잘하는 서민 취향의 가벼운 오페라인 ‘오페라 부파’로 옮겨갔다. 오페라 부파의 전성기를 이끈 작곡가가 바로 모차르트와 로시니다.--- pp.225-226
나는 춤이 가장 정직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무용수들은 오로지 땀으로 승부한다. 발바닥이나 어깨, 발목, 무릎 등 몸의 어느 한 구석 근육에 직업병이 없는 무용수가 드물다. 그렇게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아픈 몸을 풀기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거듭한다. 발가락 끝에 몸의 하중을 싣거나, 상대방의 어깨에 들리는 리프트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가 필수다. 여기에 모든 동작은 우아함을 생명으로 하니 연기력도 길러놔야 한다. 점프와 회전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한계에 이르러도 찡그리는 얼굴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절제의 예술. 가장 젊은 나이에 반짝 꽃을 피우고 빠르게 시드는 찰나의 예술이 발레다.--- pp.268-269
국내에서 손꼽히는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다. 그는 “비극이란 사람이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게 된 상태”라고 했다. 사람들이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종합하면 남자는 사회적 지위, 여자는 사랑으로 귀착된다. 가장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상실한 상태가 ‘공포’라면, 관객은 주인공이 공포에 맞서는 방식에서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위대한 비극의 주인공들은 공포 앞에서 의연하고,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와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낳게 하는 것이 비극이라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희극이 보통 사람보다 못한 악인을 모방하는 것이라면 비극은 보통 사람보다 나은 선인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보다 더 잘살 것으로 예상되는 위인이 어느 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건만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거나, 심지어 죽음마저도 덤덤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pp.322-323
〈렌트〉를 기점으로 뮤지컬은 영화처럼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꽃을 피워 다시 유럽으로 역수출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렌트〉와 비슷한 시기에 막을 올린 〈라이온 킹〉, 〈아이다〉 같은 디즈니 뮤지컬이다. 여기에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이라는 토니상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도록 하는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뮤지컬은 자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화상품이다. 연극은 텅 빈 공간과 관객 한 명만 있어도 만들 수 있지만, 뮤지컬은 기술과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복합적으로 얽혀져서 만들어진다. 상업예술이기 때문에 고급이냐, 저급이냐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예술이다. 작품에 따라 예외도 있지만 우리는 보통 뮤지컬을 스트레스를 풀고 억눌린 욕구를 해소하러 보러 가지, 뭔가 심오한 교훈과 감동을 받기 위해 보러 가지는 않는다.
---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