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주기로 한다면, 결정해야 할 문제는 하나뿐이다. 얼마를 줘야 할지만 정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돈을 다르게 주거나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결정해야 할 문제가 더 많아진다. 여러 유형의 가구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할당된 소득액을 얼마나 빨리 줄여야 할지, 누가 누구와 함께 사는지,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벌고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 p.29
2차 대전 중에는 정부가 국민생활의 많은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혔다. 정부가 의료와 교육, 소득 유지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1942년 전반적인 국민보험 혜택과 충분한 자원이 없는 사람들의 소득을 유지하는 중앙관리형 국가부조제도를 제안한 윌리엄 베버리지의 보고서는, 전쟁 중에 더 나은 삶을 고대하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존재였다. 1945년 가족수당(아동수당의 전신), 1946년 국민보험퇴직연금(기여형), 실업수당, 상병수당의 법령이 의회를 통과했다.
--- p.39
기존의 시장실패의 맥락에서 보면, 사실 세금과 수당이 없는 경제가 적절한 세금과 복지제도가 있는 경제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공적 제공이 경제에 이용가능한 인적자원을 강화하고 기업의 성공을 강화하는 ‘기업지원정책’을 다루는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앳킨슨이 제안하는 것처럼 ‘불완전한 정보와 시장의 부재 같은 현실 세계의 현상을 고려하면 기본소득 지급과 관련된 세금의 추가 징수가 자원 배분을 개선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p.66-67
그렇다면 왜 자산조사에 기초한 수당에 의지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자산조사에 기초한 수당에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자산조사에 필요한 관료주의적 개입이 한 가지 요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모르고 아마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침범 받는 것 말이다.
--- p.100
에드나는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엑세터 주택단지 주민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빌 조던의 연구는 해당 집단의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가난하다’ 혹은 ‘빈곤’한 상황에 있다고 범주화하고 싶은지 먼저 묻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어떤 집단을 ‘가난하다’고 혹은 어떤 특정한 상황들을 묶어 ‘빈곤’이라고 범주화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어떤 것보다 유용한 증거일 것이다. 런시만의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엑세터 거주자들은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사회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사람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 p.128
대중은 ‘빈곤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비판적인 인식을 갖거나 빈곤과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불평등과 저소득에 의존하는 생활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람들이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들을 좀 더 지지하게 된다.’ 이들은 기꺼이 복지국가를 지지하고 ‘부담과 수당의 분배가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한 기꺼이 집단적 선에 기여한다.’
--- p.148
기본소득은 흔하고 평범한 제안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보는 방법이다. 세금과 수당을 관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비교적 작은 변화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전의 정책 변화에 대한 사례에서 이끌어낸 교훈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정책적인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생각보다 높을 수도 있다. 또 가족수당에서와 같이 기관과 구조, 제도, 담론이 기본소득을 시행하는데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p.169
주의할 것이 있다. 우리가 논의한 시행 방법들은 이상적인 유형들이다. 빌 조던이 지적했듯이, 사회정책의 개혁은 그렇게 정연하지가 않다. ‘웅장한 고속도로’라기 보다는 ‘구불구불한 시골길’이다. 영국을 예로 들면서 조던은 약간의 다른 비유를 이용해서 기본소득으로 대변되는 ‘간선 도로’를 기존의 수당 시스템을 고쳐야 할 필요성에서 동기가 된 ‘유니버설 크레디트’로 대변되는 ‘국도’와 비교한다.
--- p.184-185
고용 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일정 부분이 우리 모두에게 속하는 자원에서 나온다면, 기본소득의 자금 마련을 위해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착취라고는 볼 수 없다. 이런 기반에서 계산된 기본소득은 공정한 호혜성에 필요한 기반 중에서 최소한 하나는 정립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기여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최저 소득’으로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17
금융거래세에 대한 논란의 대부분은 환전을 중심으로 일어나지만 다른 종류의 금융거래에도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것을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국가 금융거래세 또는 비슷한 금융활동세를 국가 규모의 기본소득에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유럽 국가의 세금은 유럽 전체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도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지구적인 금융거래세가 전세계의 기본소득에 자금 조달을 도울 수 있다. 따라서 금융거래세는 장점을 다 갖춘 기본소득을 창출하는 동시에 통화 투기를 줄이므로 경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다
--- p.241
부자에게는 그런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반대가 있을 수 있다. 돈이 부족한 경우라면 부자에게는 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분별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주려면 자산조사를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당신도 자산조사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님을 알 것이다.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 부유한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돈을 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부유한 사람들이 기본소득으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면 말이다.
--- p.260
영국웨일즈 공인회계사협회가 협의에서 논의한 두 번째 시행 방법은 한 번에 하나의 연령 집단에 시행하는 기본소득이다. 현재 OECD도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 아동수당을 강화한다. 두 번째 단계는 16세, 17세, 18세의 모든 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16세가 되는 집단이 기본소득을 지급받게 된다. (우리는 이 세 단계를 21세인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는 상황에서 시험할 것이다.)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