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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20g | 145*225*30mm
ISBN13 9788958286615
ISBN10 89582866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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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는 손에 전화기를 들고 아무 반응도 못 한 채 멍하니 가만히 있다. 바라바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르바라의 목소리였다. 나 바르바라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녀가 꿈을 꾼 것이다. 바라바라는 4년 전에 죽었다. 그렇지만 바르바라였다. 분명 바르바라였다. 에바는 바르바라의 외침 소리와 한숨 소리, 에바? 하고 되묻는 또랑또랑한 말투를 알아보았다. 바르바라는 그녀에게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나를 도와줘, 하고 외쳤을 뿐이다. 곧 통화가 끊겼고, 전화기는 먹통이 되었다. ---p. 73

누리아는 말은 하지 않지만, 마르틴이 자기 딸을 죽였다고 확신한다. 전부 마르틴으로 시작해 마르틴에서 끝이 났다. 누리아는 미움은 없고, 오로지 죄책감만 든다. 그녀와 마르틴이 바르바라의 벗은 몸을 본 유일한 사람들이다. 멍 자국으로 가득한 젊은 육체와 팔에 난 상처들. 누리아는 그 사실을 페페에게 말해야 했다. 바르바라를 더 강력하게 벽에 밀어붙여 놓고, 얘기하게 해야 했다. ---p. 156

엄마는 비겁했고, 나는 엄마를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내 피임약들을 발견했다. 딸이 피임약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방치할 거라고 믿을 바보 엄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엄마가 눈치챌 수 있도록, 은쟁반에 곱게 올려놓았다. 하지만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내 몸에 든 멍과, 내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직접 자해한 팔의 상처들을 본 날에도 엄마는 나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 엄마는 비겁했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지도 않았고, 그해 여름 나한테 있었던 일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의 비밀 때문에, 나의 당혹스러움 때문에, 내 주변을 에워싼 무관심 때문에. ---p. 244

에바에게 바르바라는 열네 살 여름 이후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친구가 죽었다고 상상하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더더군다나 바르바라가 삶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했을 때 죽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에바는 그때 바르바라를 죽였다. 마르틴의 배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 한 방울이 더해진 것뿐이었고, 바르바라가 제멋대로 행동하며 그녀를 무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었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바르바라가 못된 년이고 나쁜 친구라고 퍼부으며 확실하게 싸움을 걸어 복수하기 위한 핑계가 생겼을 뿐이었다. ---p. 184

나는 두렵다. 정말 두렵다. 그가 돌아오면 내가 에바와 통화한 걸 알게 될 테고, 그러면 그가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죽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나는 4년 전부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p. 118

안 돼, 식구들한테는 안 돼. 나는 혼자 계속 되뇐다. 이곳을 나간다고 해도 나는 식구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식구들을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출 자신이 없다.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식구들이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 옆에서 나를 쫓아낼 거라고,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알게 되면 차라리 내가 죽기를 바랄 거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했다. 이제 나에게는 가족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인간이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식구들이 알게 된다면 나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고, 그런 내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p. 36

성폭행. 로사노는 불가능한 퍼즐 조각들을 다시 짜맞춰 보기 시작한다. 로사노는 페페가 누리아에게 취하는 강압적인 태도와 사람의 기를 죽이는 차가운 눈초리,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말투, 고집스러운 그의 권위주의를 떠올린다. 그리고 누리아도 떠올려 본다. 그녀는 피하는 듯한 눈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된 자책감에 시달리며 진정제들을 복용했다. 로사노는 아이의 몸에 난 맞은 자국과 팔의 보이지 않는 부위에 있던 상처 자국들을 떠올린다. 그렇다. 모두 분명하다. 아주 분명해. 전에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어쩌면 개에 대해 수사했다면 같은 결론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시간이 모자라. 그는 안타깝다.
---pp. 28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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