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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앤서니 브라운
관심작가 알림신청Anthony B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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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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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민 shine@yes24.com
분홍색 돼지색깔을 입힌 이 책은 돼지들을 위한 책이라 '돼지책'인가? 제목이 뜻하는 바가 사뭇 궁금해진다. 제목 뿐 아니라 표지그림도 심상치 않다. 어두운 표정을 한 건 엄마 모습을 한 여자 뿐이고, 나머지 셋은 너무나 행복해 한다. 모두 여자의 등에 업혀 있으니, 자신의 몸을 편할 수 밖에 ……. 이쯤되면 감이 잡힐만도 한데, 풍자의 대가 앤서니 브라운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본격적으로 가정 내에서 여성의 위치와 존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씨의 아내', '○○의 엄마', ○○○호 아줌마', 그것도 모자라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얼굴 없는 여성이 등장한다. '아주 중요한 회사'와 '아주 중요한 학교'를 다니는 한 남자와 두 아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생활하고, 여성은 엄마와 아내의 몫을 다 짊어지고 고개숙인 슈퍼우먼으로 살아간다. 어느날 여성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가족된 자의 몫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근본적인 원칙을 깨우치기 위해 아주 간결한 메모를 남긴다. '너희들은 돼지야." 여성이 떠난 후 모든 것은 예상했듯이 집안은 엉망이 되어가고, 세 남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관심 없는 무기력한 돼지의 모습이 되어간다. 마치 영화 '구미호'를 보는 것처럼, 서서히……. 그리고 엄마와 아내의 존재를 떠올린다. 절정을 지나 결말로 치닫는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아빠는 설거지와 다림질을 하고 두 아들은 침대를 정리하고, 그리고 셋은 엄마가 요리하는 것을 도우며, 재미를 느끼기까지…, 그리고 나서 등장한 건, 처음 보는 엄마의 또렷하고 환한 얼굴, 엄마는 차를 수리하며, 다시 한번 미소를 보여준다. 결말에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즐겁게' 그리고 '함께'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림책은 흔치 않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어린이책의 범주를 벗어나기 십상이겠지만, 이 책은 진지한 주제를 곳곳에 숨겨놓은 유머러스한 볼거리로 적절히 균형을 잡아준다. 인간 돼지의 모습을 암시하는 그림자와 돼지문양의 벽지, 벽난로에 새겨진 돼지그림, 돼지시계, 돼지 소금병, 돼지 수도꼭지 …. 공동체를 인지하기 시작하는 어린이들과 가족과 가정에 대한 인식에 신선한 충격이 필요한 아빠가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돼지책'은 '가족책'이 될 것이다. |
피곳 씨와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피곳 부인은 설거지를 모두 하고, 침대를 모두 정리하고, 바닥을 모두 청소하고, 그러고 나서 일을 하러 갔습니다.
"엄마, 빨리 밥 줘요." 아이들은 아주 중요한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마다 외쳤습니다. "어이, 아줌마 빨리 밥 줘." 피곳 씨도 아주 중요한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마다 외쳤습니다. --- pp. 5-8 |
"이제 어떻게 하지?" 피곳 씨가 말했습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은 손수 저녁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끔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피곳 씨와 아이들은 손수 아침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끔찍했습니다. --- pp. 17-18 |
"이제 어떻게 하지?" 피곳 씨가 말했습니다.
피곳 씨와 아이들은 손수 저녁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끔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피곳 씨와 아이들은 손수 아침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끔찍했습니다. --- pp. 17-18 |
“너희들은 돼지야.”
낡은 고정관념에 맞서는 통쾌한 선언 피곳 씨 가족은 피곳 씨와 피곳 부인, 두 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늘 입을 크게 벌리고 아내에게, 엄마에게 빨리 밥을 달라고 요구하고 소파에 기대 빈둥거리기만 한다. 피곳 부인 역시 직장에 다니지만 그 일은 가족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지 출근을 하기 전에도, 퇴근을 하고 나서도 집안일은 모두 피곳 부인의 몫이다. 결국 견딜 수 없어진 피곳 부인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떠나 버린다. 오랫동안 여성들은 가정의 모든 가사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가사 노동은 당연히 여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피곳 부인들에게 떠맡겨져 왔던 것이다. 『돼지책』은 국내 출간 당시 이런 성별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책이 소개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날, 그 사이 남성들의 가사 참여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차이가 큰 것이 현실이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평일 여성이 가사 노동에 3시간 10분을 쓰는 동안 남성은 고작 48분을 할애하고 있다. 『돼지책』의 문제의식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 이제 피곳 부인은 집에 없다. 늘 그렇게, 당연히 집안일을 해 주던 아내,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은 혼란에 빠진다. 자기들끼리 밥을 만들어 보지만 부엌은 엉망진창에 음식 맛도 끔찍하다. 그림자처럼 집을 돌보던 피곳 부인이 사라지자 아무도 청소나 빨래를 하지 않아 집은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피곳 씨와 아이들은 말 그대로 돼지가 되어 버린다! 앤서니 브라운은 남자들이 돼지로 변하고 집은 돼지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돼지 모양으로 변한 문손잡이, 돼지가 된 사진 속 얼굴, 돼지 콧구멍 모양의 단추 등 화면 곳곳에 숨겨진 돼지 모티프가 이야기의 무게를 덜고 웃음을 준다. 앤서니 브라운의 팬이라면 『우리 엄마』에도 등장하는 꽃무늬, 장면 곳곳에 숨겨진 명화 모티프 등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이미지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세 남자는 피곳 부인에게 애원한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피곳 씨와 아이들은 이제 집안일을 함께하기 시작한다. 설거지, 침대 정리, 다림질, 요리…… 모두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림책은 피곳 부인이 자동차를 수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자동차의 번호판은 SGIP 321, 거꾸로 하면 PIGS 123이다. 피곳 씨 가족은 이대로 해피엔딩을 맞은 걸까? 피곳 부인은 집에 머물기로 한 걸까? 앤서니 브라운은 위트 있는 결말로 독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생각해 볼 거리를 남긴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을 꾸리기 위하여 전체 구성원이 노력해야 함을, 그렇지 않으면 돼지와 다를 바 없음을 『돼지책』은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