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영속성과, 노예와 주인의 영속성은 같은 믿음에 기인한다. 주인이 없으면 노예가 없는 것처럼, 남성이 없으면 여성도 없다. 성차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위치를 가장함으로써 우리 문화에서 자연에 기반한 검열의 일종으로 기능한다.
--- p.44~45
애초에 성별을 구성한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는다. 이는 지배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성별이 “이미 거기에” 있다고 승인한다. 모든 사유 전에, 모든 사회 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무엇. 이는 여성을 지배하는 자들의 사유다.
--- p.47
여성은 문명을 만들었다는 모권과 ‘선사’에 대한 믿음은 지금까지 남성 계급에 의해 생산된 역사 해석을 생물화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것은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사회적 사실이 아닌 생물학적 설명에서 찾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여성 억압에 대한 레즈비언적 접근을 구성할 수 없다. 사회의 토대 혹은 사회의 기원이 이성애에 놓여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모권제는 가부장제보다 덜 이성애적이지 않다. 억압자의 성이 바뀔 뿐이다.
--- p.59
보부아르는 특히 그 신화(여성은 남성과 다르다)의 특징 중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서 여성에 대한 정의로 사용하는 잘못된 인식을 강조한다. “여성은 대단하다”는 개념이 성취하는 것은, 억압을 여성의 최고 특징(누구에 따르면 최고인?)으로 유지하면서 여성을 정의하는 일이다.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범주를 질문하지 않는다. 성 범주는 정치적인 범주이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 p.65
자연에서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불가항력적인 그 관계는 바로 이성애 관계다. 나는 이것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의무적 사회관계라고 부를 것이다. --- p.87
사유 혹은 언어의 계급과 범주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레즈비언과 게이인 우리 자신을 계속 여성, 남성으로 인지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이성애를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
--- p.91
이제 이성애 계약 그 자체를 깨뜨리자고 말하면서 나는 ‘여성’ 집단을 지목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사회계약 그 자체를 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깨야 하는 것은 이성애다.
--- p.102
사회 안에 사는 것은 이성애 안에 사는 것이다. 사실, 나는 사회계약과 이성애는 두 개의 초-부과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회계약은 이성애다. 내가 사회계약을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직면하는 문제는 내가 이성애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생겼던 문제와 같다.
--- p.110
변증법을 변증법화하는 것은 타자들의 모든 범주가 유일자, 존재, 주체의 편으로 옮겨진다면 인간성 문제에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 p.131
‘여성적 글쓰기’가 없다는 것은 주변부에서 말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 표현을 통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다. ‘여성적 글쓰기’에서 이 ‘여성적’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신화, 여성 신화를 실천하면서 나타난다. ‘여성’은 글쓰기와 협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성’은 상상적 형태이고 구체적인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41~142
주나 반스가 레즈비언들에게 최초로 그리고 널리 읽혔을지라도, 그녀를 레즈비언 소수자로 환원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반스의 작품이 문학 안에 있는 것이, 그녀와 우리를 위해서 더 좋기 때문이다.
--- p.147
소수자 작가의 텍스트는 소수자의 관점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할 때만, 중요한 문학 텍스트여야만 유효하다.
--- p.148
소수자 각각의 관점을 보편화하는 것은 역사에 열려 있을 수 있는 작품의 국제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주제나 내러티브의 주체와 같은 형식적인 요소들에 대한 특정한 관심을 요구한다. 문학 작품을 전쟁 기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은 보편적 관점을 시도하는 것이다.
--- p.167
인칭대명사는 모든 언어에서 젠더를 고안하고, 이를 대화나 철학적 합의에서도 꽤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도, 어떠한 정당화도, 질문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젠더 개념을 활성화하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통과된다.
--- p.175
젠더는 존재론적 불가능성이다. 왜냐하면 젠더는 존재의 분할을 수행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로서 존재는 나뉘지 않는다. 존재로서 신이나 인간은 하나이자 전체다. 그러므로 젠더를 통해 언어로 소개하는 이 분리된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존재,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론적 농담, 여성에게 권리로 속한 것을 왜곡하는 개념적 책략이다.
--- p.178
사로트 소설의 실체는 이중 운동을, 이 치명적인 포옹을 폭력적이고 격렬한 열정적인 말로 감싼다. 그것은 내가 사회 계약의 천국은 오직 문학에만 존재한다고 말한 이유다.
---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