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_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겨우 한 달, 니오베처럼 온통 눈물에 젖어 가엾은 아버지의 유해를 따라가던 신이 닳기도 전에 아, 그 어머니가, 그런 어머니가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사리를 모르는 짐승이라도 조금은 더 슬퍼했을 것이다. 한 형제라고는 하나, 나와 헤라클레스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자와 한 달도 안 되어 어머니는 결혼했다.
---「제1막 제2장 ‘궁정 안의 접견실’」중에서
[유령] _ 그렇다. 악마의 지혜와 음험한 재주를 가진 그 음탕하고 불륜의 짐승 같은 놈! 아, 그토록 교묘하게 여자의 마음을 농락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간사한 지혜와 재주인가! 그렇게도 정숙하던 왕비의 마음을 꾀어 수치스럽게도 그놈은 음란한 잠자리로 끌어들였다. 햄릿, 이게 웬 배신이냐? 결혼식에서 한 맹세를 자나 깨나 지켜온 나의 사랑을 배반하고, 천품이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 비열한 놈하고 배가 맞다니!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천사로 가장하여 유혹한다 해도 움직이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이 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단다.
---「제1막 제5장 ‘성벽 밑에 있는 공지’」중에서
[폴로니어스] _ “본인도 조금은 알죠, 하지만” 해놓고선 이렇게 계속하는 거야. “잘은 모르지만 그는 굉장히 거친 사람입니다. 이러이러한 나쁜 버릇이 있구요.”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버릇을 말하고 그래도 그 녀석 체면이 너무 깎일 만한 욕은 해서는 안 된다. 그 점은 매우 조심해라. 그저 구김살 없는 젊은이에게 으레 따라다니는 분방하고 거친 행동이나 흔한 실수 정도로 해 두어야 한다.
[레널도] _ 이를테면 도박 같은 것 말씀입죠?
[폴로니어스] _ 그렇지. 또 술, 칼싸움, 논쟁, 다툼, 외도……, 이런 정도면 상관없을 게다.
[레널도] _ 그렇지만 외도라면 도련님의 체면이 조금 상하겠습니다.
---「제2막 제1장 ‘폴로니어스 집의 한 방’」중에서
[햄릿] _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죽는 것, 잠드는 것, 그것뿐이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도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이야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잔다, 그럼 꿈도 꾸겠지. 아, 여기서 걸리는구나. 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벗어던지고 영원한 죽음의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망설여지나 보다. 이 망설임이 비참한 인생을 오래 끌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참겠는가.
---「제3막 제1장 ‘접견실에 이어진 큰 복도’」중에서
[레어티스] _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기다 뜻을 확실하게 이루기 위해 칼끝에 독약을 칠하지요. 실은 어떤 돌팔이 의원한테서 독약을 샀는데 어찌나 효력이 강한지 그걸 조금 바른 칼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 달밤에 채취한 약초로 만든 보기 드문 명약으로, 제아무리 효험이 큰 해독제라도 도리가 없지요. 제 칼끝에 이 독약을 칠해 놓겠습니다. 그것으로 피부를 슬쩍 긋기가 무섭게 그놈은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왕] _ 이것도 생각해 보자.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계획에 가장 알맞겠는가 하는 것을 숙고해 보자는 말이다. 실패하여 계략이 탄로 날것을 대비하여 제2의 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가만 있자, 두 사람의 기량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내기를 한다고 치고, 옳지! 시합에 열을 올리다 보면 땀이 나고 목도 마를 테지. 또 그렇게 되도록 가능한 한 맹렬하게 시합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놈이 마실 것을 청할 테고 그때 내가 미리 준비한 독이 든 술잔을 내주는 게야. 그놈이 요행히 독 묻은 칼끝을 벗어나더라도 그 한 모금만으로 우리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4막 제7장 ‘이전과 같은 장소’」중에서
[햄릿] _ 이 칼끝에 독을? 그렇다면 독약이여, 네 임무를 다해라! (햄릿은 왕에게로 달려가 독이 묻은 칼로 왕을 찌른다.)
[오즈릭, 귀족들] _ 반역이다! 반역이다!
[왕] _ 이놈들아, 나를 구해라!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햄릿] _ 살인하고 강간한 이 저주받을 덴마크 왕아! 이 독배를 비워라!(술잔을 억지로 왕의 입에 갖다 대고 기울인다.) 네 진주가 들어 있느냐? 내 어머니를 따라가라.(왕도 숨이 끊어진다.)
[레어티스] _ 내 손으로 만든 독약을 마땅히 먹을 사람이 먹었습니다. 우리 서로 용서하십시다. 햄릿 왕자님, 저와 아버님의 죽음은 왕자님의 죄가 아니고, 왕자님의 죽음은 저의 죄가 아닙니다!(레어티스도 숨이 끊어진다.)
---「제5막 제2장 ‘왕궁의 안에 있는 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