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반홀름 동료들과의 만남은 아무 맛 없는 시골빵 한 덩어리를 뚝뚝 떼어 나눠 먹는 아침밥 같았다. 자극도 호들갑도 없는 대화. 누구도 누구에게 기대를 걸거나 기대를 심지 않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이의 대화. 잘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약속할 필요가 없는 대화. 아, 담백해. 있는 그대로를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깨끗한 한 끼 식사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상대에게 눈길을 주다가, 자기 일에 집중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철새들의 움직임 같았다. 그래, 이대로 북쪽 끝까지 같이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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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보라, 빨강, 주홍, 연두, 초록, 청록… 채도 높은 물감만 골라서 짜놓은 천연의 팔레트였다. 이곳의 자연물은 너무도 선명해서 형광빛이 돌 정도다. 첫날 마주한 뒷마당의 잔디를 보면서도 눈이 시렸다. 색은 빛의 일이니, 그렇다면 농사도 빛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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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배우는 곳이 꼭 태어난 곳일 필요는 없지. 자전거 안장을 잡아주는 사람이 꼭 아빠일 필요는 없지. 나는 핸들에서 손 하나를 뗄 수 있을 때까지, 여유롭게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때까지 녀석들의 야물딱진 궁둥이를 따라 이 길을 달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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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셔츠와 치마들 사이에 내 빨래를 넌다. 브랜드도 디자인도 묘하게 다른 내 옷이 이곳의 옷들과 함께 하나의 햇살 아래 보송보송 말라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게 주어진 시대, 내가 찾아온 공간… 내 몫의 세상을 이렇게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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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듬직한 리더와 명랑한 꼬마가 한 몸에 다 들어 있는 여자였다. 한나를 보고 있으면 ‘즐거운 일을 하거나 일을 즐겁게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둘 다 하고 있는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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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복지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친구들끼리 ‘도대체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불행하길래 우리나라 정도가 1등을 차지해버린 거냐!’라고 했단다. 불행도 행복도 비교에서 오는 것. 행복의 요건이 보편적으로 충족된 삶을 살면 행복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세계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행복’에 1등 행복의 영예를 씌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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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으로 되는 것’은 역시 기계의 일이지 사람의 미덕이 아니었다. 첫날 머렉이 했던 ‘반드시 서로의 눈을 보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손발이 쿵짝쿵짝 맞는다 해도 사슬의 어떤 부분에서는 잠시 멈추거나 주춤거릴 수 있다. 사슬이 된 우리는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자기 리듬에만 춤을 추지 말고 동료를 살피라는 뜻이었다.
--- p.93
혼자서는 꿈이지만 함께라면 못 가질 것도 없다. 시골 환경의 특혜를 누리면서 반대로 치안을 걱정하지 않는 것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점점 비교와 소비에 어색해지면서, 함께 갖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자본주의에 보탬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면서.
--- p.127
저녁 식사란 허기를 달래며 다음 노동을 준비하는 점심과는 다르다. 너와 내가 마주앉아 오늘의 에피소드와 수고로움의 조각들을 늘어놓고 맞추어 보며, 하루라는 짧은 생애를 무사히 넘겼음에 안도하는 시간이다. 저녁이 있는 삶, 그것도 윤택한 저녁이 있는 삶은 나 대신 밥을 계획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누군가의 역할을 공동체가 하나의 ‘일’로 빼내어 맡아준 덕에 스반홀름 사람들은 여유로운 저녁을 영위할 수 있었다.
--- p.134
행복이라는 왕관은 테두리가 높고 뾰족하구나. 덴마크에서 보고 듣고 겪는 사이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행복이라는 다면체의 한 단면은 ‘보수성’이라고. 덴마크도 스반홀름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은 아니었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기여를 할 수 있고, 그곳의 규율을 체득한 사람들만이 서로에게 안전과 신뢰를 보장하며 모여 사는 것이다. 종교들이 제시하는 천국이나 극락조차도 누구나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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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구성원은 여자이기도 남자이기도, 싱글이기도 커플이기도, 잡식주의자이기도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스반홀르머들의 각기 다른 선택은 존중받는다.
--- p.157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정의될까? 내 표정, 행동, 말… 그중 어느 하나도 나를 대표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누가, 언제의 나를 만나느냐, 그 타이밍, 인연의 문제다. 우리는 높고 좁다란 담장 위를 걷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어느 으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누구에게는 나쁜 사람이, 누구에게는 원더풀 퍼슨이 될 뿐이다. 담장 폭 하나 차이의 두 세계는 이토록 다르다.
--- p.193
나는 스반홀름의 로고에는 백조보다 거위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완벽함, 우아함, 고결함의 상징인 백조 말고 궁둥이를 뒤뚱대며 걷다가 스텝이 꼬여 종종 넘어지기도 하고, 괴상한 목소리로 꽥꽥거리는 거위 말이다. 거위로서의 일상에서 얼핏 백조 같은 면모를 발견하는 곳, 서로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은 평범한 거위들이 하나둘 모여든 기슭이 바로 여기, 스반홀름이었으면 좋겠다고…
--- p.195
눈앞에는 낡은 침대, 소박한 음식, 발바닥을 간질이는 잔디, 씩씩한 노랑 따릉이가 있었다. 누구도 탓하지 않고 무엇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땅 한 뼘 소유하지 못한 나지만, 말할 수 있었다. “여기가 내 집이다.”
--- p.235
여름은 힘들다. 작년보다 몇℃ 높다느니, 기록적인 폭염이니 해도 여름은 원래 힘든 계절이었다. 한 해의 한가운데이자 절정인데 그렇지 않겠나. 대신 꼭대기에 오르느라 어떤 식으로든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많은 성장 영화의 배경이 여름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없으면 어른도 없는 것일지도.
--- p.244
타인의 두려움은 달의 뒤편 같은 존재다. 달을 보는 것은 일상적이고 간단한 일이지만, 달의 뒤편은 지구상의 그 누구도 자기가 선 자리에서 끝끝내 볼 수 없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도 현명하고, 모르는 부분으로 남겨두는 것도 현명하다. 어떤 행위에 앞서 ‘함께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현명하다.
--- p.245
“공동체에서 일하며 소비 없는 휴가를 보내겠다”고 하면 사람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 모이면 불편하고 결국 싸우게 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맞다. 모이면 한결같이 싸우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내가 고른 사람과 잡초라도 뽑으면서 그러는 편이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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