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 주말 강연에서는, 30대 이하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쓴 글도 읽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많은 여성이 나와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와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들의 글은, 내가 수년간 잊고 지냈던 사건들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장애물들을 뛰어넘거나 회피하며 여기까지 왔고, 터무니없는 모욕들을 숱하게 견디며 살아왔다. 남자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하고 낯설겠지만, 여성이라면 옆집 이웃만큼이나 익숙하게 느낄 만한 이야기들을 나는 다 기억한다.
---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 중에서
윗동네에 사는 한 남자가 내게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는 수년 동안 이런 식으로 내게 접근했다. 덩치가 나보다 두 배는 되고 다정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의 그는, 뼈가 으스러질 듯 달갑지 않은 포옹으로 인사하곤 했다. 나는 보통 머쓱한 미소로 몸을 움츠리며 그를 막아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평생 낯선 이와 미련퉁이들을 지겹도록 용서해 온 나는, 오늘만큼은 서슬이 퍼랬다. 그래서 그가 다가와 팔을 내밀었을 때 몸을 틀어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고, 팔을 들어 그의 수작을 저지했다.
--- 「칼은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다」 중에서
분노를 표출했기에, 성폭행 이후에 겪는 전형적인 내면의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묘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조금씩 부식되어간 믿음은 경계심으로 자리 잡았고, 차가운 회의와 냉소는 뚫을 수 없는 얼음장이 되어 버렸다. 수십 년에 걸쳐 흘러넘친 감정이 어떤 문화적 규범처럼 측정 불가한 방식으로 나를 빚은 것이었다.
‘누구한테 말은 해 봤어? 왜 말을 안 했어, 경찰을 부르지 그랬어, 왜 신고를 안 했어?’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왜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겠는가. 누구에게든 나를 지켜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 「후회스럽고 가슴 아픈 기억」 중에서
그가 난데없이 좌회전 깜빡이를 켜더니 농업용 도로가 난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길을 잘못 들었어요”라고 내가 말했다. “지름길을 알아.” 그가 대답했다. 사건은 급작스럽게 일어났고, 나는 흥분한 상태로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
방향을 틀고 농업용 도로에 들어선 그는 속도를 높여 1.5킬로미터 이상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배수로에 차를 세웠을 때, 나는 이미 차 문을 열고 한쪽 발을 내밀고 있었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더니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보증금을 낸 것 같은데, 이제 너희가 잔금을 치러야지.”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허풍 떠는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웬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 「나를 변화시키고 온 우주를 바꿔 놓을 깨달음」 중에서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성장하기도, 사라지기도 하며 보냈다. 전형적인 20대의 모습일 수 있지만, 관계의 궁핍 속에 머무는 내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어 줬고, 그 믿음은 당시 내게 과분한 선물이었다.
어느 날 밤, 스카치위스키와 와인을 어마어마하게 마신 뒤 그녀가 내 말을 끊더니 말했다. “너는 왜 지적으로 퇴행하려고만 하는 거야?” 왜 그리 자신을 무너뜨리고 태워 버리냐는 의미였다. 그 질문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마치 내가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걸 그녀는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지루한 상태로 부랑하며 꿈도 없이 밑바닥을 전전하는 가짜 혁명가였고, 그녀는 그 모든 걸 꿰뚫고는 내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 「내 삶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 중에서
그녀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지금도 그녀가 여기 있다면 어떨지, 수십 년을 내다보았던 우정을 쌓아 왔다면 어떨지 생각한다. 진부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게 바로 규칙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한다.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창의적이고 쉽게 해 나간다. 나는 캐롤라인의 죽음에서 살아남았고, 그녀의 죽음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 「나를 지켜 낸 캐롤라인의 사랑」 중에서
아무도 내게 저녁을 준비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나뿐이다. 나와 반려견, 그리고 바늘 이 없는 시계만 있다. 배고프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는다. 때로는 몇몇 훌륭한 순간을 위해 검소하고 엄격한 흥정을 하고, 어쩔 땐 잔인한 고요함을 누린다.
요즘은 계단을 오를 때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숲의 빈터를 향해 마음이 굽는다. 너무 무서워서 받아들이지는 못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그냥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가끔 겨울 오후에는 춤을 춘다.
--- 「자기만의 방은 중요하다」 중에서
타일러는 하늘에서 우리 집 마당에 잠시 떨어졌던 별 같은 존재다. 나는 그 과정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어느 날 오후엔 기분이 나쁜지 이런 말을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가족들이랑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살고 싶다고. 사촌들, 반 친구들, 승마 팀 친구들이 세상에 남았다.
남길 사람들을 쭉 읊은 그녀는, 마지막에 좋아하는 선생님의 이름과 함께 내 이름도 넣어 줬다. 나는 기쁘면서도 조금 놀랐다. 새로운 세상에 어른들도 남긴다고?, 라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조언해 줄 사람도 몇 명 있어야죠.”
--- 「살면서 감당해야 할 두 가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