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온기를 가진 위로다. 지친 날의 끝에, 힘이 솟지 않는 하루에,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순간에 내 곁에 있었다. 향은 언제나 따뜻하게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종종 그 위로에 힘을 얻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향 속에 담곤 했다. 지친 마음을 위로받은 뒤엔 매일 새롭게 향을 배우고, 즐기고, 사람들과 나눈다.
--- 「시작하는 이야기」 중에서
향기에 둔해서 즐거움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좋은 향기가 나는 곳이라고 느낀다. 향이 있는 공간이라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나도 향이 난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머물고 있는 집과 작업실을 채우는, 크고 작은 모든 물건에 모두 향이 스며 있다. 발향하는 물건이 아닐지라도 이 자리에서 천천히 향에 물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서 나도 함께 향에 물들어간다. 차곡차곡 향이 쌓이는 사람이 되어 간다.
--- 「시작하는 이야기」 중에서
나는 늘 향을 곁에 두지만, 향수는 쓰지 않는다. 색이 넘치는 작업을 하지만 대개 무채색의 인간에 가깝다. 작업실은 다른 공간들처럼 생글한 식물이 가득하진 않지만 자연히 말라 가고 있는 고운 색의 꽃들로 채워져 있다. 당연하거나 익숙할 것들을 생각하고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나와 내 공간은 낯선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 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면 좋겠다. 처음은 강하고 낯설지라도 계속해서 맡으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라벤더처럼.
--- 「가장 익숙하지만 낯선, 라벤더」 중에서
라벤더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로즈메리 오일은 잎, 꽃, 잔가지를 수증기 증류 방법으로 추출한다. 무색에 가깝거나 살짝 연노랑 빛을 띠기도 하는 오일의 첫 향은 풀 향이 짙고 잎이 가득한 나무의 느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촉촉함이 빠지고 건조한 느낌의 나무 향이 된다. 손끝으로 담은 로즈메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언젠가 손끝에 한 번쯤 스쳤을 로즈메리 허브 향을 떠올리며 비교해 보는 일도 즐겁다.
--- 「손끝이 간질간질해지는 기억엔, 로즈메리」 중에서
숲은 늘 애틋하고, 숲의 기운이 가득 담긴 향은 또 그것대로 좋다. 사시사철 깊고 푸르른 숲의 내음이 바로 파인이다. 숲이 그리울 때 이 오일을 깊게 들이마시면 숲속을 가만히 걷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 「그립고 애틋하게 흘러가는 계절, 파인」 중에서
시나몬 스틱은 디퓨저 스틱 대용으로도 좋다. 디퓨저 오일에 스틱을 꽂기만 하면 되는데, 장식으로도 좋지만 스틱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이 디퓨저의 효과를 크게 만든다. 시나몬 스틱과 잘 어울리는 향을 고르면 더 좋다. 시나몬이나 시트로넬라 등의 오일은 벌레들이 싫어하는 냄새이고 스틱과도 잘 어울려 이런 계열을 사용하면 진드기나 날벌레 없는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 「알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시나몬」 중에서
엄마와는 다르지만 나는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향기 트레이를 채우는 일을 느리지만 단단하게 해 나가고 있다. 향을 만지는 일이 나의 또 다른 우주다. 언젠가 커다랗게 자랄 그 우주에서 향을 나누는 것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평안을 빌고 싶다. 좋은 향을 만드는 작업, 그것을 나만의 기도로 만들고 싶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샌들우드」 중에서
바쁘고 지친 하루의 끝에 베르가모트의 주황빛 같은 달을 볼 수 있는 밤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밤에도 마음을 데워 주는 베르가모트를 지필 수 있다. 슬픔이 흐르는 세상에서도 사랑스러운 것들이 넘치는 일상이라 다행이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아끼지 않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자세를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 「따뜻하게 좋아하는 마음, 베르가모트」 중에서
체취는 강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는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면 그 사람의 향이 생각난다. 생각이 난다기보단, 잊히지 않는다. 그리움이 밀물처럼 향으로 밀려온다. 아이들의 애착 인형처럼 그 사람이 두고 간 옷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얼굴을 파묻는다. 길을 걸을 때도 코를 스쳐가는 냄새 중에 익숙한 향이 있는지를 애타게 찾게 된다.
--- 「사랑했던 그 사람의 향, 페퍼민트」 중에서
모서리가 둥글게 낡은 엽서와 사진들, 노랗게 세월이 묻어 읽을 수 없는 책,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는 테이블 매트나 레이스, 낡고 꾀죄죄한 오래된 인형들 사이에서도 파출리 향이 난다. 아마도 이 오일이 그만큼 오랫동안 여러 용도로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오래된 것들이 천천히 말을 거는 느낌, 파출리」 중에서
제라늄은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진정시키는 작용, 사람을 적당히 기분 좋게 고양시키는 작용을 동시에 해줄 수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기분에도 활약하는 슈퍼맨 같은 오일이다. 우리 감정이 널뛰기하는 것 같을 때 이쪽저쪽을 유심히 지켜보며 중심을 잘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향을 가진 오일이다.
--- 「흔들거려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나에게, 제라늄」 중에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있다. 어떤 일이든 잘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했던 내가 있다. 엄마에게 완벽한 딸이 되고 싶었고, 완벽해져야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 「누구나 서툴러,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만다린」 중에서
디저트의 달콤함이나 부드러움을 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 바닐라 빈. 이 바닐라 빈에서 추출하는 오일은 신체에 활력을 선사하고, 정서적 손실을 회복하게 돕기도 한다. 나에겐 달달한 디저트를 먹는 것과 같은 효과다. 우울증과 불안을 잠재울 수 있도록 신경계를 자극해 긴장을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 부드럽고 달달한 바닐라의 고마운 효능이다.
--- 「나의 냄새를 쫓는 습관, 바닐라」 중에서
바늘 하나, 혹은 두 개를 손에 든 채 생각을 멈추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단순한 동작을 반복한다. 시간을 잊고 감정도 잊게 만든다. 작게 반복되는 행위가 쌓이고 쌓여 무늬를 만들고 모양이 완성되어 가면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한참을 쌓아 가다 변덕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솟으면 바늘을 빼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풀어버릴 때도 있다. 다시 마음이 가는 대로 다른 모양으로 떠내면 되는 것이라 실과 바늘에겐 마음껏 화를 내도 좋다.
--- 「욱하는 순간을 참아 내고 싶을 때, 사이프러스」 중에서
그 매콤한 향기는 허브 계열의 티트리다. 뚜껑을 열어 건네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디선가 맡아 본 기억이 있다며 청소년기의 기억함을 뒤지게 된다. 그 어딘가의 기억 속에서 여드름 자국을 가리고 싶어 얼굴에 톡톡 두드려 본 적 있는 화장품을 떠올리곤 하는 오일이다. 이 향을 처음 맡을 때 “이거 엄청 익숙해요, 바디샵의 대표적인 향 아닌가요?” 하는 사람들이 많다. 투명한 듯 연한 노란빛의 녹색 오일로, 따뜻하면서도 코가 아플 정도의 매움이 확 하고 풍겨온다.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바짝 들 것만 같다.
--- 「비교하지 말기로 해요, 티트리」 중에서
그럴 때 레몬이 좋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가사 노동에 며칠이나 시달렸을 엄마의 고달픔을, 그 무거운 몸을 기분 좋은 상큼함으로 위로해주면 좋겠다. 이런 거 비싼 사치품일 뿐이라고, 아껴 두었다가 다른 좋은 일에 쓰자고 말하는 엄마도 언젠가는 이런 잠깐의 사치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 「우리의 삶을 채우는, 레몬」 중에서
새해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도 미루는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루기만 하는 내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될 것이다. 어불성설 같은 말이지만, 우리의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고민하는 것이 또 다른 고민을 부르고, 그렇게 쌓인 고민이 하루를 더 조급하고 쫓기게 만들 것이다. 차라리 우리 다 같이 조금 게으르고 느리게 살자.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지 말자. 그리고 미루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매콤한 진저의 찬스를 써 보자.
--- 「다 같이 조금 게으르고 느리게 살아요, 진저」 중에서
한참이나 바닥으로 고꾸라질 듯이 냉이를 관찰하고, 깊은 뿌리를 잘 뽑고, 흙을 털고 냄새를 맡았다. 약간 쌉쌀한 듯한 시원한 냄새가 났다. 당장이라도 뜨거운 밥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이 도는, 입맛이 살아나는 듯한 향이었다. 전혀 다르지만 마치 그레이프프루트 같았다. 계절에 맞게 땅 위에서 솟는 모든 것들은 모양도 향도 다르지만 기분 좋게 입맛을 돋워주는 그레이프프루트를 닮았다.
--- 「잘 먹고 나를 잘 돌보도록, 그레이프프루트」 중에서
슬프고 힘들었던 날엔 팔로산토처럼 묵직하고 강한 향이, 기분이 좋은 날엔 가벼운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무탈하고 평온한 날엔 연한 꽃향기가 생각난다. 곁에 있는 향기들로 정직하게 모든 감정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감정을 기록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도, 동의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라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니까.
--- 「마음의 상처를 잘 보듬고 싶을 때, 팔로산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