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야오를 중국으로 끌어들였을까? 2004년 칭화대의 오퍼는 딱 하나였단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게 지원해주겠다.’
서울대라면 가능했을까?
KAIST라면 가능했을까?
야오치즈 교수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AI 분야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AI반(人工智能班)’을 또 만들었다. 올해 2기 신입생 을 뽑는다. 기본적인 운영 방식은 야오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반’은 ‘즈반(智班)’으로도 불린다. 야오치즈 교수의 이름 마지막 글자 ‘즈(智)’를 딴 별명이다. 컴퓨터 사이언스를 넘어 이젠 AI로, 중국 학계는 벌써부터 ‘즈반’이 배출할 인재에 주목하고 있다.
유연하다. 아니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학과 편제를 벗어난 조직도 뚝딱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미래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 pp.26-27
많은 이들이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일 수도 있다. ‘중국 소비 제품 의존도가 높은 게 문제’라는 말이 머지않아 제기될 것이다. 중국 제조업에 의존해야 한다면, 우리 경제는 중국에 대해 아무런 레버리지도 갖지 못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지정학적 역학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없다. 중국이 하자는 대로 그냥 해야 한다.
중국 시장에서는 로컬 기업에 밀려 팔 게 없고, 한국 시장은 중국 기업에 내줘야 할 판이라면? 속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 p.33
미·중 기술 전쟁으로 중국의 반도체 추격은 더 거칠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인재에 대한 그들의 ‘사냥’은 더 광범위하게 진행될 터다. 은밀하고, 집요하게….
기술 인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는 우리 아이들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도 먹을 게 없다면 우리 후대들은 ‘구걸통’ 들고 대륙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 p.38
우리가 규제의 함정에 허덕일 때, 우리 경제가 정치 프레임의 틀에 갇혀 있을 때 중국은 국가와 기업이 똘똘 뭉쳐 제4차 산업혁명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중국의 후발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 경쟁에서 뒤질 때 우리는 자칫 중국에 자존심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기술 우위 없는 한중 관계는 공허하고, 위험할 뿐이다.
--- p.50
중국 전문가, 참 많다. 어지간한 회사마다 중국팀이 있고, 중국 비즈니스 경력이 있는 팀장이 팀을 이끈다. 정부기관에도 중국어를 구사하는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풍요 속의 빈곤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주변에서 “중국 전문가가 없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중국을 안다는 사람은 많은데, 막상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은 없다는 거다. 꼭 필요한 곳에는 전문가가 더 없다.
--- p.64
AI 속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고 AI 신사유람단이라도 꾸려 중국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도 숱하게 나왔다. 하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나왔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이렇게 몇 년 지나고 나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의 AI 산업과 경쟁해야 하는 난감한 현실에 부닥칠지도 모르겠다.
---pp.110-111
미국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에 부과한 거래제한 조치를 지속키로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019년 11월 15일 보도했다. 거래제한의 시한을 90일 연장했을 뿐 바뀐 건 없다. 집요한 견제다. 쉽게 풀리지 않을 목줄이다. 그만큼 화웨이의 역량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화웨이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을까.
--- p.112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세계 증권업계가 깜짝 놀랐다. ‘사상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라고 흥분했던 앤트그룹(?蟻集團)의 홍콩·상하이 증시 상장이 첫 거래를 불과 며칠 앞두고 무산됐으니 말이다. 홍콩에서 약 155만 명, 상하이에서 약 515만 명이 청약에 참여했고, 그증거금만도 무려 210조 원에 달했던 세기적인 상장 파티였다. 중국 ‘고위 인사’의 말 한마디가 그 파티를 망가뜨렸다.
“아무리 사회주의의 나라 중국이라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 p.133
쌍순환(雙循環·Dual Circulation)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공식석상에 가면 꼭 언급한다. 2020년 5월 14일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에서 처음 말했다. 이후 정치협상회의(5월 23일), 기업좌담회(7월 21일), 정치국상무위원회(8월 5일), 경제사회 전문가 좌담회(8월 24일), 중앙전면 심화 개혁위원회(9월 1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중국에선 특히 최고지도자는 말을 즉흥적으로 하지 않는다. 특정 단어를 반복 언급한다면 그 말의 가치는 격상된다. 사실상 중국 정부 최우선 의제다.
도대체 쌍순환이 뭐길래?
--- p.187
과학에서도 중국의 추격과 미국의 ‘기득권’ 사수 투쟁은 더 치열해질 거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IT 기업 때리기는 그 단초일 수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려면 미·중 모두가 필요로 하는 나만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 한국 과학기술 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를 위해 바꿀 것이 있으면 바꿔야 한다.
--- p.196
“중국은 업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나오면 내버려 둡니다. 공무원들은 모르니까요. 체제에 도전하지만 않으면 그냥 하라고 합니다. 규제, 없습니다. 창업 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훨씬 더 자본주의 스타일입니다.”
중국인들의 ‘돈’ 인식은 치열하다. ‘돈은 귀신으로 하여금 맷돌을 돌리게 한다(?使鬼推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돈 인식이 인터넷 혁명과 겹쳐지면서 청년 창업 붐을 낳았다. 돈을 향해 뛰어라(向錢走)!
그때 정부는 어쨌느냐고? 놔뒀다. 새로운 영역, 공무원은 잘 모르는 분야에 억지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게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지들 책임이고…. 일단 규제부터 찾는 우리 공무원들과는 다르다.
--- p.202
최근 중국에서는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산업, 이른바 ‘란런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란런(?人)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의 중국말로, 란런 경제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용하게 되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뜻한다.
란런 경제는 중국이 강점을 보이는 다양한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 연계 오프라인 서비스)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음식배달, 마트 배송 등 전통적인 서비스에서 시작해 각양각색의 방문 서비스로 분야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29
SNS에 익숙한 중국의 MZ세대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를 즐기고 고가의 명품을 소비하는 등 유통시장에서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도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팬데믹 상황을 접하며 ‘가치 중심 소비’에 눈뜨기 시작했다.
--- p.234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제품이 있다. 물론 중국산이다. 정부가 직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전자기기에 중국산 반도체를 탑재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정부가 나서 판로를 개척해주면 중국의 반도체 관련 업체들은 중국 시장에서 성능 평가를 받으면서 개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얘기다. 즉, 정부가 앞장서 자국의 후발 업체들이 시장 평균 이상으로 따라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
--- pp.255-256
아시아타임즈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그 이유를 ‘반도체’라고 볼 정도다.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미국이 입을 가장 큰 피해는 정치·군사·지정학이 아닌 반도체”이고 “중국 공산당이 대만 TSMC에 관리를 파견해 핵심 기술을 다 빼내 갈 거다”라고 예상한다.
중국,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이 절대 경계를 늦춰선 안 되는 존재다.
--- p.275
2020년대, 중국 비즈니스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중국의 제조능력, 그리고 소비시장과의 전방위 결합 시기다. 중국 비즈니스는 모름지기 기술력과 기획력을 갖춘 마케터가 주도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BTS 안마 의자는 바로 그 트렌드를 보여준다.
--- p.293
시장을 사느냐, 기업을 사느냐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기업을 샀던 TDK는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훨훨 날 때 CATL의 등에 탔지만, 시장을 사는 데 급급했던 한국 게임 업체들은 오
히려 중국 기업에 자신을 사달라고 애걸해야 할 처지가 됐다.
--- p.299
우리의 대중국 비즈니스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제조업 시대엔 ‘어떻게 하면 중국에서 싸게 생산할 것인가’만 고민하면 됐지만, 소비의 시대를 맞아선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비싸게 팔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그동안 대중국 비즈니스의 주력은 철강·기계·석유화학·자동차 등 제조업 위주였다. 이제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 소비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소프트’ 상품을 비즈니스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필자는 ‘S·O·F·T·C·H·I·N·A(소프트 차이나)’를 제안한다. 소비시대 중국을 겨냥한 새로운 주력 비즈니스 분야다.
--- p.308
얄밉다. 부럽다. 괘씸하다. 무섭기까지 하다. 지금의 중국이 그렇다.
그들은 코로나19 방역에 앞선 듯하다. 노(no) 마스크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프로축구 경기장에서도, 마스크 많이 안 쓴다.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 상가에서는 ‘소비 축제’가 열린다. 심지어 역병이 시작된 우한에서는 대규모 야외 맥주 파티가 열린다. 세계는 지금도 하루 수만 명이 새로 코로나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데, 중국은 정상에 가까운 일상을 즐긴다.
---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