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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6p
(두둥) 잘 먹고 잘 싸운다 · 10p (싱긋) 여자 히어로 특집· 66p (불끈) 삶의 무게· 124p 에필로그 · 178p 작가의 말 · 184p 프로듀서의 말 · 188p |
저김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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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감싸며 타오르는 화마가 집 안의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첫문장」중에서 히어로들은 랭킹 1위가 되면 ‘캡틴’ 칭호를 받게 되는데, 현재 히어로 랭킹 1위는 나다. 그러니까 내 히어로 네임은 그냥 허니 번이 아니라 ‘캡틴 허니 번’이다. 스물네 살인 나를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놈들이 종종 캡틴 칭호를 생략하는데, 내 취미는 그런 녀석들의 인생을 생략시키는 거다. --- p.14 “지영아, 넌 왜 다이어트 안 해? 응? 넌 위기감도 없어? 네 뱃살 좀 봐. 그게 여자 배야? 나였으면 절대 밖에 못 나가. 그렇게 생각하면 넌 진짜 대단하다! 다른 사람 생각도 안 하고 그런 몸으로 돌아다니는 거 보면~” “그러게. 남지영, 너한테 한 톨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제발 우리 눈을 생각해 주라! 뚱뚱한 건 네 죄인데 왜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냐?!” “다시 생각해도 놀랍네~ 100kg이라니, 아니 대체 뭘 먹어야 그렇게까지 찌는 거야? 비결 좀 알아 가자~ 나도 너처럼 간식만 존나 먹고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면 되는 거야? 어? 말해 봐!” --- p.21~22 사실 저 같은 여자 히어로들이 임무를 받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대부분의 일은 남자 히어로들에게 넘어가죠. 그래서 히어로 네임을 가진 남자 히어로는 많은데, 히어로 네임을 가지고 있는 여자 히어로는…. 제 기억으로는 캡틴 허니 번밖에 없네요. 대부분의 여자 히어로들이 연예계로 넘어오는 이유도 임무가 없어서랍니다. --- p.27 “넌 빌런을 처벌할 때는 최고의 히어로다. 내가 그렇게 키웠지.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히어로는 될 수 없어. 저걸 봐라. 누가 저 여자를 히어로라고 생각하겠어.” 영상 속 여자는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빌런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난 빌런들을 체포하는 임무만 처리해 왔지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 p.63 |
히어로 네임 ‘캡틴 허니 번’, 남지영.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히어로 랭킹 1위에 오른 그녀의 몸무게는 100kg이다. 몸무게에 비례해 신체 능력이 상승하는 초능력을 지녔기에 그녀의 몸무게는 항상 대중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또 다른 히어로 김소희. 타고난 미모와 발랄한 성격으로 연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캡틴 허니 번처럼 정식으로 범죄 소탕 임무를 수행하는 히어로가 되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임무를 주지 않는 히어로 협회의 암묵적인 방침 때문에 히어로 시험을 통과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연예계 활동만 하고 있다.
접점이 없었던 지영과 소희는 한 여성 히어로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한 팀을 이루어 사건을 수사하게 된 둘은 실종된 여성 히어로가 한 명만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이 모두 똑같은 종류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압박이 지영에게도 향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사는 갑자기 중단되고, 지영은 히어로계에서 물러나게 될 위기에 처한다. |
억지로 불행해진 여성 초능력자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의 주인공 남지영은 남다르다. 히어로 랭킹 1위에 빛나는 능력자다. 초능력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수많은 남성 히어로들을 저만치 따돌리며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히어로 협회 연구진의 정성 어린 관리를 받으며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는 중이고, 20대 중반으로서 히어로 사회에서는 젊은 축에 속해 미래가 창창하다. 하지만 대중의 눈길은 늘 지영의 몸매에 쏠린다. 그녀의 몸무게가 100kg를 돌파했다는 사실이 뉴스에 나올 정도다. 지영이 그 몸무게를 만든 것은 체중이 늘수록 신체 능력이 강해지는 초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장 지영이 살을 빼기라도 한다면, 히어로 전력에 공백이 생기면서 빌런들이 득세해 당장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지영에게 너무도 쉽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행복해질 거라고. 정작 지영은, 다이어트 압박을 받기 전까지는 딱히 불행하지 않았다. 업계 1위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이럴진대 다른 여성을 대하는 태도야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여성 히어로는 임무를 아예 받지 못한다. 경력 많은 남성 히어로가 맡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남성 히어로에게도 분명 경력 없는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 점을 들어 여성에게 일을 주는 사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연예계로 빠진 여성 히어로들은 화장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수시로 외모 평가를 들으며 억지 미소를 짓고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스태프 심부름을 한다. 지영이 들은바, 남성 히어로들은 전혀 겪지 않았던 일들이다. 자신감 넘치는 슈퍼히어로가 건네는 위로와 희망 듣고 보면 여성 히어로들도 우리네 여성들처럼 유리 천장에 가로막힌 채로 가스라이팅에 시달린다. 우리와 다른 점이라고는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라는 것 정도다. 현실과의 그 유일한 차이점 덕분에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을 읽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된다. 일반적인 인간을 뛰어넘는 초능력자, 한 번도 정의에서 눈 돌린 적 없는 히어로들이 여성으로서 우리와 같은 일상에 놓일 때 얼마나 놀라운 활극을 펼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캡틴 허니 번은 이야기 내내 힘과 속도를 겸비한 움직임을 자랑하고, 생트집을 잡는 동료와 상사를 향해 딱 알맞은 ‘팩트 폭력’을 선사한다. 그녀의 파트너 히어로인 소희는 베테랑인 그녀에게 기가 죽기는커녕 자신만의 초능력으로 사건 해결에 기여하겠다며 동분서주한다. 방송 촬영장에서는 성실한 리액션 로봇 노릇에 충실했던 여성 초능력자들은 힘을 마음껏 쓸 기회가 왔을 때 처음이라 서툴러서 안 될 거라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는다. 본인이 슈퍼히어로임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호쾌한 언행은 아직 호쾌하지 못한 우리에겐 위로이자 희망이다.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이 밝고 건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주요 캐릭터들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문장 덕분이기도 하다. 간명하고 거침없는 표현으로 장면을 분명하게 전달하며, 때로는 심장에서 손끝을 향해 바로 쏜 듯한 단어로 핵심을 짚는다. 웹툰을 전공한 작가가 캡틴 허니 번의 세상을 이토록 선명하게 보여 주기에, 우리는 책장을 덮은 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