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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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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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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2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54g | 147*208*20mm
ISBN13 9791191209785
ISBN10 1191209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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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을 때의 일이었다. 열차 안에서 10박 11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그 길을 갔다. 소실점을 이루며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나간 전선주를 따라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앉아 있던 새들은 열차가 지나가면 새카맣게 날아올랐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자작나무 숲이 차창 밖으로 몇 시간씩 변함없이 이어져 마치 한 폭의 풍경화가 걸린 듯했던 대륙의 시간이었다. 그때 마음속을 가로질러간 말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에 알게 된 것들인가.

---
문득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고 했던 그 말.
내가 사랑하는 책상이면, 내가 사랑하는 서재면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벌판도 다르지 않으리라.
남이 말하는 평가나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남의 눈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도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을 때
모든 것은 거기서 이룩되고 그것으로 찬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
빗길을 돌아오며 아주 오랜만에 어려서 네게 들려주던
아빠 작사, 작곡의 자장가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너무 슬프다면서 네가 다른 노래를 지어달라고 했던 그 자장가.

아빠 머리에 흰 서리 내리고
네가 네 생의 주인이 될 때
저무는 바다도 함께 보겠지.
바람 같던 세월도 얘기할 거야.

어느새 아빠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렸구나.
너 또한 네 생의 주인이 되어……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 저무는 바다도 함께 바라보고,
그 바닷가를 걸으며
바람 같던 세월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
첫 학기가 끝날 무렵 나는 전공을 바꿔 영문과로 전과를 했다. 그 이야기를 말씀드리러 박 교수 댁을 찾아갔던 날, 큰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교수님, 저 영문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왜?’라고 묻지도 않으셨다.
손수 차를 타주신 선생님은 내내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교수님은 말없이 뜯어진 방석 귀퉁이에 튀어나온 솜을 개구쟁이 아이처럼 손끝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삼십여 분 동안 교수님은 그 방석의 솜 끄집어내기를 계속하셨다. 그뿐, 교수님은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선생님은 내가 국문과를 떠나지 말고, 당신 밑에서 학문을 하기를 바라셨던 거로구나. 겨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이미 영문과로 전과가 확정된 뒤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미국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에 빠져서 극작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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