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빨간 사과 · 자전거
검은빛 슬리퍼 산개구리 호르르르 춤값 물방울무늬 우산 이만한 작대기 협상 벨튀 크흑, 이제 멸망인가 산개가 타닥타닥 |
탁동철의 다른 상품
|
갖고 있는 모든 걸 자기들 방식으로 풀어내도 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아이들은 뭐든지 해낸다. 마음먹은 대로 얼마든지 뻗어 나간다. 온 나라 누구든지 하는 것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나.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감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노래 음이 안 맞는 아이가 있으면 틀린 게 아니라 화음이다. 글자가 삐뚤빼뚤 틀리면 작품이다. 틀린 게 없다. 틀려도 괜찮아가 아니라 틀려야 아름답고, 틀려야 달라지고, 달라야 아름답다.
--- pp.6-7, 「여는 글」 중에서 “내빈 실내화, 이제부턴 안 됩니다.” 선생님이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어제 교직원 회의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입에 거품을 물고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펄펄 뛰어올랐다고 한다. 현관에 놓은 내빈용 실내화가 자꾸 사라져서 왜 그런가 조사해 보니 6학년들이 하나씩 맡아 끌고 다니더라고,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학교냐면서. 내 생각으로는 말이 되는 학교 같다. 6학년은 우리 학교에서 특별하니까 내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아, 치사하다. …나는 실내화 안 사고 끝까지 버텨 볼 작정이다. 이건 6학년의 마지막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 pp.48-49, 「검은빛 슬리퍼」 중에서 다음 날 아침, 기대했던 말랑말랑 햄버거는 안 보이고 선생님의 딱딱한 얼굴만 보였다. “다 거짓말! 내가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너네 춤 안 췄다는데?” 까칠하게 따지는 말투에 이슬이가 쩔쩔매며 변명했다. “췄어요. 그런데 미세하게 흔들어서 교장 선생님이 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미세하게?” “네, 살짝살짝.” “….” “우린 분명히 췄으니까 햄버거 사 줄 거죠?” 선생님이 오해가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히 사 줘야지.” 아이들이 “와아” 하며 좋아한다. “사기는 사는데 너네한테 전달은 안 될 거야.” “네?” “춤을 추기는 췄는데 춤 전달이 안 된 거나, 햄버거를 사기는 샀는데 전달이 안 된 거나 똑같아.” 말발 센 이슬이도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 엉덩이춤 다시 해도 되지요?” --- pp.91-91, 「춤값」 중에서 “어떻게 심어요?” “아무렇게나.” 선생님은 뭘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안 해 준다. 원래 교사라는 직업은 학생이 질문하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사람 아닐까. 그런데 선생님은 무엇이든 그냥 알아서 하란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서 하라는 건지. 일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그림도, 운동도, 좋아하면 저절로 길을 찾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고구마가 좋아도 길을 못 찾겠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고구마 줄기를 눕힐까요?” “그래. 고구마가 편안하겠다야.” “세울까요?” “응. 반듯한 고구마로 자라겠네.” “잎을 묻고 뿌리를 위로 올라오게 할까요?” “맘대로. 고구마가 공중에 달리면 캐기도 쉬울 거야.” “저를 심을까요?” “좋지. 하린이가 많이 달리겠네. 우리 반에 하린이가 하나밖에 없어서 아쉬웠거든.” 결국, 저쪽에 가서 선생님이 심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 pp.115-116, 「물방울무늬 우산」 중에서 “이제부터 욕하는 사람은 반성문을 쓰게 해요.” “오, 반성문. 좋습니다.” 남자들은 아예 눈까지 감아 버렸다. 아무도 손도 머리도 들지 않았다. 책상 나무 판때기 속으로 파고들어 갈 것처럼 꽉 붙어 책상과 한 몸이 되었다. 입에서 언제 욕이 튀어나올지 불안하니까 불리한 규칙을 안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기들은 지금 여기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자리에서 나온 말은 자기들과 아무 상관없다는 표시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영지가 손을 들었다. “벌칙만 있는 교실은 사막이에요. 벌이 있으려면 상이 먼저 있어야지.” 옳은 말이다. “오, 상. 좋습니다. 어떤 상이 좋을까요?” 벌칙을 말할 때는 귀가 막히고 눈이 감겨서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듣던 남자들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상훈이가 책상 바닥에 거머리 빨판처럼 붙었던 입을 바닥에서 떼어 내고는 그 입을 열었다. --- pp.138-139, 「이만한 작대기」 중에서 인성이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보니까 모래 더미는 마구 헤쳐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구멍마저 뭉개졌고. 일부러 삽까지 들고 와서 엉망으로 망쳐 놓은 그 나쁜 녀석은 퍽이나 만족스럽다는 듯 룰루랄라 평화롭게 그네나 타고. 인성이의 급발진 분노 폭발. “야 이 새×, 나쁜 놈아!” 인성이가 욕하고, 가방 집어 던지며 덤벼들었다. 처음에는 뒷걸음질로 피하던 민우도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주먹을 휘둘렀고, 점점 싸움이 커졌고, 어느 순간 민우 손에 있던 휴대폰이 인성이의 머리통을 내려친 것이다. 다음 날 교실 회의를 열어 잘잘못을 따졌다. 사회자 이슬이가 하나하나 칠판에 적었다. 1. 구멍 뚫어 주려 한 민우 마음은 칭찬 2. 구멍 뚫기 실패로 더 망쳐 놓은 것 잘못 3. 사과하려는 마음 못 보고 무조건 덤벼든 인성이는 잘못 4. 욕한 것 잘못 … 잔소리 듣기, 반성문 쓰기, 봉사 활동하기, 평소에는 나온 말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심각한 사건이라 한 가지 벌칙으로는 부족하다고, 괴롭고 힘든 고개를 세 번 넘어가며 뼈아픈 후회를 겪어 봐야 한다고 했다. 민우와 인성이가 회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했다. --- pp.194-197, 「크흑, 이제 멸망인가」 중에서 산개는 변함없이 타닥타닥 돌아다니는데 오히려 개 잡겠다는 우리 반 아이들의 마음이 변했다. 두려움이 걱정하는 마음으로, 걱정이 애정으로. 우리에게 붙잡히기 전에 굶어 죽으면 어쩌나, 감기 걸리면 어쩌나 불쌍한 마음이 생기더니 어느새 떠돌이 산개와 흠뻑 정이 들고 말았다. 마음 밖에 있을 때는 문젯거리 골칫거리였는데, 마음 안으로 들여놓는 순간 소중한 무엇, 꼭 있어야 할 무엇이 된 것이다. 내가 일기장에 시를 한 편 썼다. 땅 파는 게 국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산개는 쓸쓸한 개다./ 주인이 없고/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없다./ 먹을 게 없어서/ 낮에는 돌아다니며 먹을 거 찾고/ 밤에 쓰레기봉지를 뒤지다가/ 새벽에 비틀거리며 존다. --- pp.227-228, 「산개가 타닥타닥」 중에서 |
|
함께 들여다보기
6학년 3반, 배추 선생네 교실에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인성이와 고집 센 민우가 운동장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인성이가 소중하게 쌓은 모래성을 민우가 망가뜨려서 화가 난 인성이가 민우에게 가방 집어 던지고, 민우는 휴대폰으로 인성이 머리를 치고. 이건 두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하나하나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보며 잘잘못을 따진다. 성을 다시 쌓으려고 했던 민우 마음은 칭찬, 민우 마음을 못 보고 화부터 낸 건 잘못, 도구를 들고 공격한 건 큰 잘못…. 아이들이 내린 결론은 잔소리 듣기, 반성문 쓰기, 봉사 활동 하기. 심각한 잘못이기 때문에 세 가지 고개를 다 넘으며 반성해야 된단다. 민우와 인성이도 회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민우한테는 ‘휴대폰 금지령’을 내린다. 하지만 누가 사 주는 게 아니라 자기 힘으로 일해서 모은 돈으로 사는 건 인정한다. 아이들의 판결이 놀라울 따름이다. 민우는 휴대폰값만큼 열심히 청소하고 심부름하면서 아이들이 인정해 주는 일값을 교실 일기에 차곡차곡 기록하며 모은다. 선생님의 야단보다 아이들의 말이 더 힘이 세다. 벌 받고 야단맞으면 끝이 아니라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오래오래 그 일을 함께 겪어 나간다. 한 사람의 말, 그리고 기록하는 교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이슬이가 꽈당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픈 것보다 창피한데, 아이들이 웃는다. 배추 샘도 참으려다가 더 크게 웃고 만다. 이슬이가 화났다.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못 하겠다고 말했을 때 배추 샘이 살을 빼야 한다고 말한 것까지 합쳐서 단단히 화가 났다. “나는 입술 꾹 깨물고 교실 일기장 펴서 글을 썼다. 교실 일기에 쓴 글은 우리 반 전체가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있으니까 선생님은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선생님도 이제는 선생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야 하고, 잘못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오늘 일에 대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진하게 꾹꾹 눌러서 썼다.” 교실 일기는 힘이 세다. 누군가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기록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슬이가 글로 항의했고, 아이들이 학급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슬이의 속상한 마음에 손을 들어 주었다. 배추 샘이 공손하게 사과했지만 이슬이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배추 샘이 재치 있게 일부러 넘어지고 이슬이가 웃는 바람에 함께 웃으며 기분 좋게 해결된다. 이슬이가 속상했던 일이 ‘그깟 일’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말을 하면 그 사람 말에 반응을 한다. 다른 사람 말을 무시하면 자기 말도 무시당한다는 걸 아이들도 안다. 그리고 교실에서 함께 만든 규칙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다수결이나 큰 목소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에 둘레가 반응하고 교실이 움직인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놀이로 풀어 가는 교실 배추 샘이 춤바람이 났다. 비 오는 날 아침 성현이가 무심코 ‘빗방울 툭’이라고 한마디 했는데 ‘빗방울 툭’ 미끄러지는 몸짓을 하고 놀이를 만들어 놀잔다. 누군가 말하면 그 말을 춤으로 표현하기. 배추 샘의 춤바람이 아이들에게까지 옮겨 간다. 햄버거와 콜라를 걸고 교장 선생님 앞에서 엉덩이춤 추기. 처음엔 햄버거 먹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했지만 춤으로 인정받고 말겠다는 오기와 울분이 보태져서 멋진 공연을 하게 된다. 춤뿐만이 아니라 배추 샘은 노래도 만들자고 부추긴다. 아이들이 툴툴거리면서도 누군가 느리게 빠르게 리듬을 만들고 흥얼거리면 거기에 흥을 보태고 멜로디를 만들어서 노래 한 곡 뚝딱 만들어 낸다. 춤추고 노래 만드는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연극 놀이에 빠진다. 인성이와 민우의 싸움에서 영감을 얻어 ‘모래 싸움’이라는 연극을 만드는데,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게 있으면 내용을 바꾸고 인성이와 민우가 우정과 의리를 쌓아 가는 이야기는 부풀려 빛나게 만들었다. 경험을 예술로 바꾸는 동안 싸웠던 두 아이는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를 더 돌아보게 되었다. ‘산개가 타닥타닥’은 학교에 나타난 산개를 잡기 위해 아이들이 나서는 이야기인데, 아이들이 똘똘 힘을 합쳐 작전을 짜고 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일을 해내는구나, 놀라운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을 산개와 함께 보낸 이야기는 6학년 3반만의 ‘뮤직헐’로 탄생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들이 겪은 일을 연극으로, 뮤지컬로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경험,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싸우고 다투더라도 놀이와 노래, 춤으로 머물러 봤던 경험들로 사건을 다르게 보는 눈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른의 지도가 아니라 스스로 일구어 낸 경험만큼 새로운 자리로 한 발 내딛게 될 것이다. 책에 실린 열한 편의 동화는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썼다. 어느 교실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 놀이가 되고, 놀면서 들여다보고 머무르면서 문제를 풀어 가고 있다. 우리 교실의 누군가와 닮아 있는 이야기들을 교실에 가져와서 놀아 보면 어떨까? 싸우고 다투는 사건의 현장에 이 이야기를 가져와서 이야기 나누고 들여다보고 놀다 보면 각자의 교실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피어날 것이다. 덤, 동화 깊이 읽기 이야기마다 교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쓴이의 생각과 교실에서 해 볼 수 있는 놀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 나가면 좋을지 짧게 정리한 글이 부록처럼 실려 있다. “한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 교실은 이야기가 자라는 곳, 온통 남이 붙인 이름만 있는 세상은 시시해, 한마디 말이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아이들은 놀이 속에 있어야, 욕이 떠다니는 교실, 기록하는 것은 역사를 만드는 일, 교실을 움직이는 것은 한 사람의 말, 지금 여기 이 자리, 다 함께 ‘뮤직헐’ 만들기” 모두 열 개의 짧은 글은 한 아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잠시 숨 고르고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글쓴이의 따스한 시선과 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남의 것, 나와 상관없는 것은 기를 수 없다. 내 안에 있는 것, 한 사람에게 이미 있는 것만 기를 수 있다. 아이에게 있는 것이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라도 좋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빗방울 툭” 한마디라도 좋다. 알 수 없는 몸짓이라도 좋다. 콕 찍은 점 하나라도 좋다. 아이들은 순간마다 시간마다 씨앗을 내보인다. 보고 듣고 말하고 다투고 원망하고 실수하며 수없이 새로운 씨앗을 내민다. 아이가 내민 씨앗 하나, 어떻게 가꿀까. 무엇으로 키워 볼까. 노래로? 둘레 세상은 소리와 노래로 가득 찰 것이다. 춤으로? 세상은 온통 움직임과 춤일 것이다. (‘한마디 말이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