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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시인의 말ㅣ 5
제1부 균열의 기억 13 잊힌 후 14 한적한 강원도 어느 산골의 오후 16 당신을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어느 날 17 내 안에 머물던 새 18 떠난 들녘 20 꽃처럼 봄이 진 이후에야 22 달맞이꽃 23 북한산에 눈이 내리면 24 겨울, 바닷가에서 26 물푸레나무에게 27 제2부 선자령에서 31 겨울 수기리에서 32 비행기고개를 넘으며 34 저 견고한 세상의 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36 저녁 무렵 실상사에 들러 38 동안거 40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42 파사성에서 44 풀씨제 46 저문 들녘의 꽃들을 위하여 48 구권이 길 떠나던 날 50 쓸쓸한 봄밤 52 대관령에서 53 제3부 초파일 신륵사에서 57 순리를 위하여 58 바람의 언덕 61 산이 무너지는 소릴 들었네 62 악어의 눈물 64 나무 아래서 66 고달사지에서 68 눈 오는 들판에서 70 반야원에서 71 궁평리 연가 72 천덕봉을 오르며 74 제4부 가을 항구에서 77 김주열 열사 묘지에 들러 78 객토 80 강물이 바다에 이를 때까지 82 시간에 대한 고찰 86 소한 추위 88 땅끝에서 90 백장암에서 92 당신 가신 날 94 그 덕에 잘 있었다 96 3월에 내리는 눈 98 화암사 99 제5부 설리 103 그리하여 아주 사소하게 나는 104 나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106 단풍나무 숲을 걸으며 108 섬강 두물머리에서 110 경비원 김씨 112 석모도의 노을 115 밤티재길 116 용기가 없었던 탓에 118 누가 힘겹게 봄을 오게 했는지도 모르고 119 죽림정사 120 저 먼 별까지 혼자 걸어갈 테니 122 ㅣ해설ㅣ 우대식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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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에서〉
아니다, 아니다 하며 세월이 흘렀다. 잠시 꽃이 피고 겨울이 오고 산도 계곡도 파도에 휩쓸려 눈구름 속으로 침몰해 들었다. 그림자 하나가 떠 있었다. 그림자 하나가 길을 잃었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쌓여 길조차 길을 잃고 눈을 맞았다. 눈은 마침내 대관령을 집어삼키고 백두대간…… 솟구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세월이 내내 흘렀다. * * * * * * 〈바람의 언덕〉 세상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한 생애 이끌고 온 그대 발자국들인들 무슨 의미 있으랴. ? 거제도 바람 부는 언덕에 가면 바다로 난 길 쪽은 언제나 바람이 불고 저마다 빛을 내는 저 많은 몽돌들도 그 위쪽 동백도 환한 웃음 곁에는 언제나 바람이 훑고 간 흔적. ?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밤새 그대에게 쓴 편지가 무슨 의미 있으랴. * * * * * * 〈저 먼 별까지 혼자 걸어갈 테니〉 언젠가 나 죽어 내?영별식장에는 굳이 바쁘신데 오실 일 없으시네. 살아 내내 외로움으로 지내는 동안 언제부턴가 외로움에 터를 잡게 되면서 마음 편히도 그렇게 살게 되었으니 마지막 외로움도 실은 해탈로 가는 한 길목 아닌가. 나 그간 잊고 지내던 이승의 노래 한 소절 목질의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저 먼 별까지 혼자 걸어갈 테니……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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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는 있었으나 / 정작 당신을 만날 수 없어 쓸쓸했던 // 그런 날 이상하게 당신이 / 조금 왔습니다. // 당신 아닌, /실은 당신보다 더 당신이 / 강물 위에 노을이 되어 떠 흘렀습니다.”(「당신을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어느 날」)와 같은 연애시 형식을 띠고 있는 시들에 등장하는 당신은 “숨은 신”으로 작용한다. 하나이면서도 모든 곳에 존재하는 숨은 신은 사랑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신은 늘 없었으며, 하여 만날 수 없는 존재지만 어느 날 당신은 조금 와 있는 존재이며 “당신보다 더 당신”인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경이감을 노래하고 있다.
박남원의 시가 기대고 있는 다른 하나는 기행의 형식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금강산과 연이은 우리 땅 북단에서부터 땅끝마을까지 그가 호명하는 지명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유람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 혹은 성찰의 공간과도 밀접한 관련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피상적 낭만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가진다. 가령 어느 섬에 들어 노을을 바라보면서 “살아오는 생 내내 빛이 단지 빛일 뿐이었다면 도대체 저 마지막 노을의 장엄함은 무엇이겠는가.”(「석모도의 노을」)라고 노래하고 있다. “바람 불고 노을 지는 길 위에서?/ 가끔은 힘들고 외로웠지만 / 그래도 내가 머물 곳은 다른 곳은 아니어서 / 여전히 그늘진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내 자신에게 / 한편으론 자랑스러운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 // 하지만 그마저 자랑스럽지 않았다면 / 얼마나 쓸쓸한 일이었을까. / 세상은 얼마나 쓸쓸했을까.(「나무 아래서」) 누군가의 사랑의 모습은 역동적이고 화려할 수도 있겠지만 저물어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쓸쓸하고 조용하기만 사랑의 길 위에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크고 작은 삶의 우여곡절들이 시집 한 권 낼 여유조차 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누더기가 몸을 떠나지 못하듯 시가 내게 그랬다. 돌이켜보면 시가 물질적으로 가져다준 것은 없었지만 싫든 좋든 여기 담겨 있는 시들은 어쩔 수 없이 내 삶이고 나로서는 누가 뭐래도 소중한 정신적 분신들이다. 갈수록 세상이 힘들어지는 것 같다. 산하나 넘으면 더 높고 험한 산과 마주하게 되는 이 쓸쓸하고 어려운 세상에 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겠는가. 외롭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이 시집이 조그마한 위로라도 줄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 저자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