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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시인의 말ㅣ5
제1부 꿈 꿈15 얼레지꽃 17 춘몽19 한려수도20 안개 산길22 헛된 꿈24 나쁜 꿈25 그대에게 나는 무엇이었나요?26 그 겨울의 바닷가28 거울 속의 눈30 수수께끼32 천변 풍경33 연리목35 사랑, 그것36 제2부 별 별41 별똥별43 동해 일출45 가을47 일일시호일48 인생이란 무엇인가49 인생이란 무엇인가 251 어머니의 시간53 큰어머니57 Rinascerò, 나는 다시 태어나리라 59 화분에 물을 주며61 존재의 집63 허무와 허무 사이67 제3부 길 길71 벽73 지하철역에서74 감오도75 길을 잃다77 길을 잃다 279 폐사지에서80 2월82 ··김재규··83 낙동강 변 자전거길85 해파랑길87 사이시옷89 피지섬에 가 보고 싶다90 11월92 억새들의 춤93 제4부 문 문97 병 속의 거위98 울지 않는 새100 무제102 무제 2103 사족104 공105 간판들106 연못 속의 물고기108 나는 내가 쓸데없이 깨달을까 봐 두렵다110 삼행시112 뜰 앞의 잣나무113 산사의 겨울114 석도의 〈관홍도〉115 물화117 에필로그 118 ㅣ해설ㅣ 이성희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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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안나푸르나의 밤하늘을 추억하며 이 우주의 어느 구석 거의 아무 별도 없다는 곳, 그 무한 어둠의 자리에 만일 누가 있다면 어떨까, 얼마나 무섭고 저주스러울까. 그곳에 만일 이미 오래전 소멸한 어느 먼 별의 잔광(殘光)이라도 와닿는다면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될까, 아니면 절망만 더 깊어질까. 내 도시의 밤은 환한 불빛의 블랙홀. 그곳에선 볼 수 없던 저 수많은 우리의 별과 은하. 고맙다, 너희가 거기 있어 이 밤 어둠도 성스러운 축복이 된다. 〈길〉 길을 걷다 갑자기 마주 오는 사람과 맞닥뜨린 순간, 내가 급히 왼쪽으로 비켜서자 그도 같은 쪽으로 비켜섰다. 내가 오른쪽으로 비켜서자 그도 역시 같은 쪽으로 비켜섰다. 내가 다시 왼쪽으로 비켜서고 그도 다시 같은 쪽으로 비켜서는 순간, 나는 아하, 하고 그만 멈춰 섰고, 그러자 그도 똑같이 멈춰 섰다. 그 한순간 둘의 마음은 같았는가, 우리는 겸연쩍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서로의 길을 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새삼 생각했다. 길을 갈 땐 너무 혼자 생각에 빠지지 말고 조금은 더 멀리, 앞을 보아야겠다고. 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똑같은 길을 다른 사람은 나와는 반대로 갈 수 있다고. 하나의 길에는 언제나 상반된 두 길이 함께 있다고. 〈사이시옷〉 내 언어 감각이 시류에 둔한 건지, 내게 어쭙잖은 반골 기질이라도 있는 건지, 내게 사이시옷 상당수는 어쩐지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눈엣가시.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귀엣가시. 말할 때마다 목에 걸리는 목엣가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처럼 볼썽사나운, 말 사이에 낀 말 찌꺼기. 이른바 ‘법’의 힘으로 한자리 비집고 들어온, 권력의 앞잡이-의 쩍 벌린 다리. 안 그래도 벌어진 남과 북 사이를 더욱더 벌려 놓는, 무지막지 커다란 쐐기, 아니, 서로의 말길을 잇는 오작교마저 끊어 가는,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무시무시 날카로운 톱니.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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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영철이 첫 시집을 출간했다. 〈어느 먼 별의 잔광 같은〉이라는 시집이다. 이영철은 잘 알려져 있듯이 평생 비트겐슈타인을 탐구한 언어 철학자이다. 거장 철학자가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영철의 첫 시집 〈어느 먼 별의 잔광 같은〉은 늦은 나이에 이르러 삶과 언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존재와 허무를 되돌아보는 한 지식인의 내면적 기록이면서, 동시에 언어가 세계와 존재를 어디까지 붙잡을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철학적 시집이다. 시집은 「꿈」에서 시작하여 「별」과 「길」을 거쳐 「문」으로 나아간다. 이 시적 구도는 각각 현실의 불확실성, 존재의 빛과 허무, 삶의 여정과 선택, 그리고 막힌 세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상징하면서 시집 전체의 구조적 골격을 이룬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꿈’과 ‘먼 것’, ‘잔광’이라는 이미지가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표현한다는 점이다. 사라진 별에서 도착한 빛은 별의 부재를 증명하면서도 그 존재를 현재에 되살린다. 따라서 잔광은 절망이면서 구원이고, 부재이면서 존재이다. 「별똥별」에서 시인은 결국 별똥별과 자신, 나아가 모든 인간을 ‘잠시 빛나다 사라지는 존재’로 인식하며, 소원을 압축한 ‘똑딱’이라는 말 대신 “온전한 문장”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에게 축복과 감사를 보낸다. 이러한 사유는 부모의 죽음과 결합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어머니의 시간」에서 어머니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어머니는 화자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무시간적 회전축’으로 남는다.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과 사랑을 통해 다른 방식의 존재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인생이란 무엇인가 2」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구체적 현실을 불교적 사유와 결합하여,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돌봄과 연민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시집의 또 하나의 성취는 철학적 사유를 관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언어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언어 철학자로서의 시인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에서 시를 시작한다. 「벽」에서 보이지 않는 벽은 인간 자신이며, 「문」에서는 그 벽을 허물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결국 ‘문’은 언어가 막히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열리는 통로가 된다. 특히 「무제 2」의 ‘거시기’와 ‘무명’에 대한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와 언어의 한계를 선(禪)적 사유로 연결한다. 동시에 이 시집은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큰어머니」의 4·3의 기억, 「김재규」의 역사적 평가, 「사이시옷」의 남북 분단에 대한 비판, 「감오도」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성찰은 개인적 서정이 사회적 현실과 만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시인은 자기 존재의 허무를 응시하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결국 이 시집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성과는 철학·서정·해학·언어 유희·사회적 성찰을 하나의 시적 세계 안에 결합한 데 있다. 때로 산문적이고 사유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직설성은 오히려 시인이 오랫동안 붙잡아 온 질문을 숨기지 않는 진정성으로 작용한다. ‘꿈’에서 시작한 여정은 ‘별’의 잔광을 거쳐 ‘길’을 걷고 마침내 ‘문’ 앞에 선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의 “후-우-훔!”은 모든 언어가 소진된 뒤 남는 숨소리이자, 말 이전의 존재로 돌아가는 마지막 음성처럼 읽힌다. 이 시집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도 사랑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끝내 ‘온전한 문장’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늦은 시적 귀환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