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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파도의 문장을 읽는다
박상건 저
b(도서출판비)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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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판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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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ㅣ시인의 말ㅣ 5

제1부
파도가 무인도에게 14
풀무질하는 파도 16
이안류 17
틈 19
형제섬으로 가는 길 20
밀물과 썰물 22
바다는 그리움을 띄운다 24
어머니의 바다 26
구계등 갯돌해변 28
소식포 돌아가는 길 30
서귀포 32

제2부
꿈꾸는 격렬비열도 38
금일도 새벽 항로 40
덕적도 자갈마당 42
효자도의 목선 43
삽시도의 파도 45
보길도 예송리 46
고파도 수채화 48
가의도 가는 길 49
강화도 오일장 51
안개 낀 사량도 53
완도의 찬가 55
바다의 찬가 57

제3부
제부도 62
청산도 64
금오도 68
주도 70
낭도 72
사도 74
실미도 76
소록도 78
백령도 80
독도 83
개도 85
백도 86
가파도 지나 마라도 88

제4부
등대에게 길을 묻다 92
등대섬 소녀 94
팔미도 등대 96
죽변 등대 98
우도 등대 100
어청도 등대 101
소리도 등대 103
가덕도 등대 105
방파제 등대 107
지게와 등대 108
등대섬 물보라 끝에서 110

제5부
푸른 섬 112
섬 113
바람이 그리운 날 115
풍매화 116
깃대봉 숲에서 118
꽂지 해변 협주곡 120
석화의 웃음 122
고독이 빛을 밝힐 때 125
민어 126
넝마주이의 바다 128
한번은 꼭, 물보라 치고 싶었다 130
기차는 달리고 섬은 사라진다 132

ㅣ해설ㅣ 최도선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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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214g | 124*194*20mm
ISBN13
9791192986661

책 속으로

「덕적도 자갈마당」


푸른 갈대숲을 지나자
허공이 툭, 뚫렸다
자갈마당 기슭에 바람과 파도가 부서진다
창공과 바다가 한통속이다

파도를 길게 들이켰다가
호른처럼 불어낸다
숨을 내쉬고 털어낼 때마다
파도와 자갈이 한 호흡이다

밀려갈 때마다 무너지는 자갈 소리
파도는 힘줄을 당겼다 풀며
높은음자리표의 해조음을 연주한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노을 젖은 오선지에 갯메꽃이 피고
해무가 장막을 내리면
텅 빈 객석에 섬이 된 나그네가 앉는다

* * * * * *

「등대에게 길을 묻다」


나의 존재 이유는 오직, 하나
너의 길동무가 되는 일이다
마지막 기항지까지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일이다

하루 두 번 길 트는 바다에서
만남은 이별이고, 이별은 곧
만남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머뭇거리는 그 순간, 비로소
여행은 시작되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어깨 걸고
행진하는 파도 소리

밤새 물이랑마다 쭉정이 키질하고
뜨겁게 맷돌을 돌리고
푸른 상처 땀땀이 공글리는
등대 불빛

책갈피 넘기는 바다는, 동트는
수평선에서 책장을 덮고, 비로소
등대도 두 눈 지그시 감는다.

* * * * * *

「민어」
       
                 
갯벌 모래 바닥에 엎드리는
백성의 물고기

제사상에 오르면
불효자도 고개 숙였다

회 살, 매운탕 뼈,
쫄깃한 껍질, 기름소금 속 부레

부레풀 한번 달라붙으면
활도 장롱도 갓대도
운명의 한 몸 되어
떼어낼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풀 다 둘러봐도
민애풀 같은 풀은 없다*

선홍빛 한 상 앞에서
민초들 오래 침묵했다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서른 해를 섬으로 갔다
파도가 부서지는 자리마다 등대가 있었고
나는 늘 그 눈물겨운 불빛 아래서 위안을 받았다

​등대는 말이 없다
등대 불빛은 늘 따뜻했다
나의 시린 등허리를 조용히 보듬어 주었다
​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와 부서졌다
그때마다 등대는 거센 파도의 상처를 
모성으로 꿰매고 어루만지며
새로운 문장을 쓰고 있었다
​
나는 묵묵히 그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등대를 처음 만난 것은 그해 그 섬의 벼랑 끝이었다
칠흑 같은 밤바다에 홀로 서서 
빛숨을 쉬던 그 등대를 잊을 수 없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눈빛과 넉넉한 그 가슴
바다를 쓰다듬으며 파도의 문장을 읽고 다시 쓰는
등대의 속 깊은 사랑을 보았다
​
​파도의 문장
고독의 문장
그렇게 비워진 자리마다 다시 일어서는 문장들
​
이 시집에는
수많은 유인도 무인도 섬사람 뱃사람 등대원의 이야기
그 향기와 체취 속에 흘러간 세월이 물결친다
그 섬 그 바다에서 함께 한 등대가 헹군 
기억들은 푸른 교향악이 되어 울릴 뿐
나의 고독은 여전히 등대처럼 서 있다
​
한 줄기 빛은 바다를 부챗살로 보듬고
넘어질 때마다 부서져 씻기고 또 씻기며
마침내 불꽃 심지로 타오른다
맑은 영혼으로 물보라 친다
​
그 오랜 섬길을
이 한 권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땀땀이 눈물 적셔 공그리던 상처들이 깃든
문장의 너울들을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다
​
부족하지만 그 여정의 기록이 
누군가 서 있을 그 벼랑 끝에서
등대 불빛처럼 스미고 
일렁이기를 바라면서

추천평

섬문화연구소장이자 시인이기도 한 박상건 형이 한반도의 주요한 섬들을 대상으로 시집 한 권을 펴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아직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최초의 작업이요, 우리 해양문학의 한 지평을 광활하게 펼쳐 보인 역저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는 대자연으로서의 바다와 섬 그 자체의 의미 탐구는 물론, 바다와 인간의 삶에 관한 통찰, 생태 환경과 국토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 기타 노동, 민속, 풍물 등에 보여준 시인의 다양한 사유가―마치 파도치는 바다가 항용 그러한 것처럼―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절실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구술되어 있다. 실로 우리 국토의 섬들이 지닌 비의(秘義)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장대한 한 편의 문화사요. 상상력으로 재창조한 바다의 형이상학이라 할 만하다. - 오세영 (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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