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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벌 호랑이
김동삼, 「일송」 1937년의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에 눈빛이 형형한 죄수 한 명이 압송되어 온다. 다들 가까이하기 꺼리는 그는 만주벌 호랑이 김동삼이었다. 안동의 혁신 유림이었던 김동삼은 신식학교인 협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폐지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뿌리 깊은 양반제에 맞서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다. 단발령을 반대했던 예천의병 최상천이 학교를 피습한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다. 이 시기에 일제의 탄압을 받은 많은 사람이 만주로 이동했으나, 궂은 날씨와 척박한 환경으로 그곳에서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한인 마을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백서농장에서 장주로 지내며 독립군들을 양성하려 했으나 열악한 환경과 고된 훈련, 굶주림으로 탈주하는 인원이 늘어나고, 마적의 습격과 일본의 감시도 심해진다. 더는 농장을 운영하기 어렵다 여긴 김동삼은 백서농장을 해체하고 정식 군정부를 만들어 임시정부의 지원을 받고 현대화된 군대를 가지고자 서로군정서를 만든다. 이후 전국 각지에 산재한 무관 학교들을 통합하고자 했으며, 김좌진이 이끄는 대한군정서에 군대를 보내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데 큰 힘을 보탠다. 러시아의 자유시 참변 이후 김동삼은 모든 독립운동계를 하나로 통합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민족유일당 운동과 삼부통합 운동을 하는 한편, 사회주의 계열과도 통합을 이루려 한다. 오히려 각 독립운동 계파 간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이때 김좌진도 안타깝게 사망하게 된다. 만주사변 이후 하얼빈으로 이주해 한국독립당 고문을 맡아 통합운동을 계속하려 했으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를 거쳐 서울로 이감된 뒤, 10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37년 3월 3일 순국한다. 일본은 그를 죽이지 않고 가족까지 이용해 회유하여 독립군들을 잡아들이려 했으나 그는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수감 중에도 가족에게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게 한다. 그의 사망 후 남은 가족들도 행방불명과 사망으로 고난이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만주벌 호랑이 김동삼은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오늘날 독립된 민주국가가 있게 한 역사의 큰 인물이나 현재 살아 있는 그의 후손들의 삶은 몹시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삶에 대해 다룬 「일송」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수많은 우리 동포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자유를 우리가 누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최승춘 모든 걸 내려놓고 민족과 대의를 위해서 살 수 있을까? 안동 내앞마을에 살았던 200명의 혁신 유림은 척박하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만주 땅으로 망명합니다. 그들에게는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오직 대업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망명을 하는 것이지요. 김동삼의 일생을 보며 태어날 때부터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환경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토리를 맡아 작품을 하면서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던 영광된 시간이었습니다. 송진우 병으로 죽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격동의 1920년 만주. 그 느낌을 오롯이 낸다는 것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스토리를 처음 보았을 때 그 먹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름 없는 만주의 어느 벌판,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젊은 영웅들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