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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열하일기 1
변화하는 시대를 읽은 자,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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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도강록渡江錄
도강록 서渡江錄序 │ 6월 24일 신미辛未 │ 6월 25일 임신壬申 │ 6월 26일 계유癸酉 │ 6월 27일 갑술甲戌 │ 6월 28일 을해乙亥 │ 6월 29일 병자丙子 │ 7월 1일 정축丁丑 │ 7월 2일 무인戊寅 │ 7월 3일 기묘己卯 │ 7월 4일 경진庚辰 │ 7월 5일 신사辛巳 │ 7월 6일 임오壬午 │ 7월 7일 계미癸未 │ 7월 8일 갑신甲申 │ 7월 9일 을유乙酉

성경잡지盛京雜識
7월 10일 병술丙戌 │ 7월 11일 정해丁亥 │ 7월 12일 무자戊子 │ 7월 13일 기축己丑 │ 7월 14일 경인庚寅

일신수필馹迅隨筆
일신수필 서馹?隨筆序 │ 7월 15일 신묘辛卯 │ 수레제도[車制] │ 희대?臺 │ 시장[市肆] │ 객사[店舍] │ 교량橋梁 │ 7월 16일 임진壬辰 │ 7월 17일 계사癸巳 │ 7월 18일 갑오甲午 │ 7월 19일 을미乙未 │ 7월 20일 병신丙申 │ 7월 21일 정유丁酉 │ 7월 22일 무술戊戌 │ 7월 23일 기해己亥

관내정사關內程史
7월 24일 경자庚子 │ 7월 25일 신축辛丑 │ 7월 26일 임인壬寅 │ 7월 27일 계묘癸卯 │ 7월 28일 갑진甲辰 │ 범의 꾸짖음[虎叱] │ 범의 꾸짖음 뒷이야기[虎叱後識] │ 7월 29일 을사乙巳 │ 7월 30일 병오丙午 │ 8월 1일 정미丁未 │ 8월 2일 무신戊申 │ 8월 3일 기유己酉 │ 8월 4일 경술庚戌

저자 소개 3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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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에 평생 출판을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고, 십 년 동안 돈을 모아 서른세 살에 출판사 등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십년 동안 헤매면서 모은 돈을 소진한 뒤, 다른 일에 종사하며 다시 돈을 모아 마흔세 살에 재도전했다. 그 후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약 30년 동안 출판의 길을 걷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운영하는 출판창업보육센터장으로 있으면서 출판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들을 위해 여러 활동을 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문위원, 파주출판도시 출판체험센터장등을 지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교육 관련 단체와 도서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독서와 인문학 관련 강연을 하면서 책을 읽으며 느낀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몇 권의 책을 번역하거나 쓰기도 했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세상의 모든 지식』, 『한글전쟁』 등을 지었고, 류성룡의 『징비록』을 번역, 처음으로 다양한 그림·사진·지도 등을 삽입해 출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자리 잡도록 한 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 외에도 이중환의 『택리지』를 번역했고, 『그 사람, 김원봉』, 『원문으로 보는 친일파 명문장 67선』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 등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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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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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헌을 수집·정리·번역함으로써 한국학 연구의 기반을 구축하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1965년 서울에서 교육부(당시 문교부) 산하 민족문화추진회로 설립되었으며 2007년 11월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동안 국고 문헌부터 개인 문집에 이르기까지 1300여 종의 번역서를 간행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중요 국가 기록을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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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70g | 153*225*22mm
ISBN13
9791190893909

책 속으로

나의 벗 홍대용이 “그 규모는 크되, 그 방식은 세밀하다.”라고 했는데, 이 책문은 중국의 동쪽 변두리임에도 이러하다. 앞으로 더욱 번화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한풀 꺾여서 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릴까 하는 생각에 온몸이 화끈해진다. 그 순간 나는 깊이 반성하여 ‘이는 시기하는 마음이다. 내 본시 성미가 욕심이 없어서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발을 들여놓자, 만분의 일도 채 보지 못하고서 벌써 이런 망령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곧 견문이 좁은 탓이리라. … 장복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가 만일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겠느냐?”
그러자 그는 “중국은 되놈의 나라이니 쇤네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때마침 한 소경이 어깨에 비단 주머니를 걸고 손으로 월금을 뜯으면서 지나간다. 나는 크게 깨달아 “저야말로 평등한 눈을 가진 이가 아니겠느냐?” 했다.
--- p.49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본받으려 한다. …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때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쳤으나,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힘을 분히 여겨 중화의 숭상할 만한 것마저 물리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법을 모조리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의 유치한 문화를 고쳐서 밭 갈기, 누에치기, 그릇 굽기, 풀무 불기 등에서 공업·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남이 열을 한다면 우리는 백을 하여 먼저 우리 백성에게 이롭게 한 다음, 회초리를 마련해두었다가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물리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중국에는 아무런 장관이 없더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야 하사(下士, 하류의 선비)에 불과하지만 한마디 하겠다.
“중국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고, 똥 부스러기에 있다.”
--- p.195~196

지금까지 천 리 길을 오면서 수없이 많은 수레를 보았으나, 앞의 수레와 뒤의 수레가 언제나 같은 자국만을 따라갔다. … 또 모든 바퀴가 똑같으므로 성 문턱에 수레바퀴 자국이 움푹 패어서 홈통을 이루는데, 이것을 ‘성문지궤(城門之軌, 『맹자』에 나오는 구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수레가 없지는 않으나 그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할 뿐 아니라, 바퀴 자국이 한 틀에 맞지 않으니, 이는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을 뿐이다. 만일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이게 될 테니 어찌하여 길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을 걱정하겠는가.

--- p.207~208

출판사 리뷰

나는 누구와 천지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물 안 조선을 뒤흔든 날카로운 통찰과
호쾌한 유머가 빛나는 박지원의 세계


1권에는 압록강을 건너 요양, 심양, 산해관을 거쳐 연경에 도착하기까지의 고단한 여정과 이국의 문명에 관한 꼼꼼한 기록이 담겨 있다. 민가·사당·전당포·패루·천주당 등 다채로운 건축물, 수천 대의 수레와 잘 닦인 도로, 청나라 사람들의 일상과 말로만 듣던 낙타, 험하고 낯선 중국의 강산과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넓디넓은 벌판이 세밀하고 풍부한 박지원의 묘사를 거쳐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가 경험한 신선한 충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일기는 그대로 싣고, 청나라 선비들과 나눈 여러 대화 및 이런저런 장소의 유람기 등은 과감히 생략해 박지원의 관심과 고민을 파악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청나라 땅을 밟은 박지원은 중국의 난방 시설·벽돌 가마·종이 제작법·수레 제도에 특히 주목한다.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해 조선이 배워야 할 점을 조목조목 짚는다. 북학파가 백성의 일상에 쓰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실천적 학문(이용후생)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동행한 조선 사람들과의 대화, 훈장·기생·하인·상인 등 각양각색의 청나라 사람을 만났던 이야기는 생동감 넘치고 유머 가득한 문장들로 전한다. 조선인과 중국인의 서로 다른 행동, 생각, 태도가 엿보이며, 청나라의 실상을 알고도 되놈이라며 무시하는 조선의 고루한 풍조를 겨냥한 예리한 비판이 번뜩인다. 『열하일기』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박지원의 한문소설’로 분류해 따로 읽어 왔던 〈호질〉과 그 뒷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도 함께한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과 문학성이 집약된 작품이자 18세기 조선과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관한 정보가 가득한 백과사전에 가깝다. 끊임없이 새 문물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와 안목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쉽게 읽는 열하일기』는 이 진면목으로 독자를 안내할 것이다. 방대한 정보가 부담스러웠던 성인 독자와 10대를 위해 간추리는 과정에서 생략된 이야기들이 궁금했던 청소년 독자 모두에게 맞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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