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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꽃그늘에서
타인의 눈 허수(虛數)의 윤리 기묘한 간주곡(間奏曲) 새로운 출발 천사의 동산에서 X+X+X+Y=X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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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병리 현상으로 보고 추적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긴 하지만 단순한 읽을거리로 되는 것보단 시대 배경을 충분히 감안한 소설로 만드는 것이 훨씬 웨이트 있는 것으로 될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존재들이란 경제인 아닙니까. 그런데 경제인이 경제인으로서 등장하는 소설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의 포부와 야심, 그리고 생리와 병리, 애욕의 문제 등이 소상하게 취급되어 있는 소설이 없단 말입니다. 기껏 하잘것없는 월급쟁이, 실업자, 바나 살롱에 있는 여자들, 비행 청년, 비행 소년, 비틀거리는 중년 여자…… 물론 그런 것 갖고 문학이 안 될 이유도 없지만 언제나 우리 문학이, 아니 소설이 그런 것 주변만을 맴돌아서야 되겠습니까. 대담한 정치소설, 대담한 기업소설이 정정당당하게 문학으로서의 메리트를 갖추고 등장해야죠. 그럴 때 비로소 문학이 사회에서 정당한 발언권을 주장하게 될 게 아닙니까. 지금 형편으론 아직도 문학은 아녀자의 것, 일부 문학 청년의 것밖엔 되어 있지 못합니다. 아녀자들의 독점물이라고 해서 문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하는 그런 문학도 있어야 하지 않겠소. 이 선생께서 한번 신기록을 내 보시구려. 그 첫째의 시도로써 위한림을 등장시키는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내 특종기사쯤은 문제도 안 될 것이니 재료를 드리겠소. 내가 특종기사를 쓰려고 노린 것은 차가운 사회의 눈이 어디에선가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제인, 정치인이 감득할 수 있게 하자는 거였지요. 신문기자가 그만한 사명의식 없이 그날그날을 지낸대서야 어디 말이 되겠어요? 그래서 그런 준비도 하고 있는 겁니다만, 이 선생께서 소설을 쓰시겠다면 아낌없이 드리죠.”
--- pp.63~64 “정직하게 산다는 건 사회의 희생자가 될 뿐이오. 정직하게 살아 집 한 칸을 장만할 수 있는 세상입니까? 정직하게 살아 아이들 공부나 제대로 시킬 수 있는 사회입니까? 공무원도 그렇습니다. 정직하게 근무하다간 정년퇴직을 당한 사람들, 그 정황이 답답하더만. 공무원 노릇 할 때 요령껏 해처먹은 놈들은 그만둔 뒤에도 자가용 굴리고 삽디다. 내 이웃집에 공무원 하다가 그만둔 영감이 있는데 위경련으로 죽게 됐어요.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 달려갔더니 선금을 내야 치료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 집에 돈이 있어야죠. 쥐꼬리만한 저금이 있긴 했는데 도장하고 통장을 맡겨도 마구 거절입니다. 그 얘길 듣고 내가 돈을 냈지요. 사기꾼 정광억의 돈이 선량한 시민 하나를 살린 겁니다. 이웃에 사기꾼이 없었더라면 그 영감은 병원 문턱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죽었을 거요. 세상에 이와 비슷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어요? 수단 불구하고 돈을 벌어라, 돈만 있으면 붙들려가도 놓여나올 희망이 있다, 이겁니다. 그래 나의 신념은 이렇소. 강도와 절도 빼놓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면 다 하겠다 이겁니다.” --- p.461 |
무지개를 좇는 우리 현실의 자화상
“나림 이병주는 역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역사’의 문제가 그의 문학 세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시대 현실’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소시민들의 일상 영역에 들어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당대의 시대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병주 장편소설 『무지개 사냥』은 이병주 문학의 한 축인 ‘시대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의 일환으로, “정치, 경제, 사회의 격변의 틈바구니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 현란한 색깔과 독향(毒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가 사라진” ‘젊은 청년 실업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1982년 4월부터 1983년 7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대중문화의 전성기이자 독재 정권기였던 1971년부터 1979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소시민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삶 속에 작동하고 있는 경제 생리를 풀어낸다. 누구나, 언제나 무지개를 꿈꾼다 “소설은 ‘피난민의 몰골을 닮은 범람 상태의 사람들, 만성 체증을 앓고 있는 위장을 방불케 하는 자동차 홍수, 물욕이 투사된 수십 층 빌딩과 단층 판잣집의 고저’로 이루어진 1971년 서울 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권력자의 꿈, 권력을 노리다가 실패한 자들의 꿈, 사업가들의 꿈, 사기꾼의 꿈, 좀도둑의 꿈, 허영투성이인 여자들의 꿈, 간통하는 남자, 간통하는 여자의 꿈, 수험생들의 꿈, 예술가의 꿈, 그 무수한 꿈들이 지칠 대로 지쳐 그 형해(形骸)가 건물이 된” 서울은 말 그대로 “꿈의 폐허”였다. 주인공 위한림은 꿈의 폐허 서울에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권모술수”를 익혀 더 큰일을 도모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일을 벌인 결과 파산에 이른다. 그렇게 그의 무지개는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이 아닌 다른 무지개를 생각해 보게 된다. 50년 전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무지개 사냥』은 ‘70년대의 병리에 대한 조명’하면서 경제 제일주의가 파생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인간의 소중한 것을 상실해 가고 있는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목표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