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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靑雲)의 출발
무지개의 설계(設計) 풍운아 중동(中東)에 비둘기와 뱀 머큐리의 심술 운명의 미소 사막의 꽃 소용돌이 속에서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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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고맙군.” 하고 박희진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얘기를 했다.
“몇날 며칠을 상어떼와 싸우다 보니 잡은 고기는 뼈만 남게 되었어. 나는 성공하려고 기를 쓰고 덤비는 사람의 대부분이 그런 꼴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해. 목표에 도달하고 목적지에 이르긴 했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하는. 그런 까닭에 나는 이런 것을 제안하고 싶어. 목적만을 유일하게 추구하지 말고 일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거라. 뭐라고 할까. 돈을 벌려고 악착 같이 서둘다가 막상 돈을 벌지 못하는 결과가 되면 정력의 낭비, 시간의 소모만 되는 것 아닌가. 혹시 돈을 벌었다고 해도 건강을 해친다거나 인간성을 망친다거나 하면 결국은 손해가 아닌가. 요컨대 매일매일의 노력 자체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라 이거다. 부산을 목적지로 하고 달려간다고 하자. 부산에만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풍경을 감상하는 노력을 게을리 말라는 뜻이다. 성공이란 행운이 없으면 불가능해. 그런데 어떻게 행운만을 믿고 살 수가 있겠나. 불운에 대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말이다. 나는 자네의 의욕을 가상하다고 여기는 동시에 어쩐지 안타까운 생각도 드는군. 그래 말하는 거다. 목표를 성공에 두지 말고 그날그날을 충실히 보내는 데 중점을 두라구.” --- pp.111~112 창업 도중의 사업체인 만큼 위한림이 그 중심에 없으면 핸들 키가 빠져버린 자동차처럼 될 것은 빤한 이치다. 수출 관계의 모든 신용장은 휴지가 되었다. 조작된 대미흥업의 채권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발주했던 공사를 취소하는 소송이 잇따랐다. 유상무상(有貌無象)의 채권자들이 위한림의 것이라고 보면 붉은 딱지를 붙였다. 홍콩은행, 인도은행, 테헤란은행, 사우디은행에 있는 돈은 지불보증 관계로 모두 분해해 버리고 리야드의 창고에 있는 물품은 횡령 당하거나 몰수되었다. 이렇게 해서 무지개는 일순에 사라졌다. 천하의 사기꾼이라서 수사를 했더니 사기꾼은 온데간데없고 하나의 로맨티스트가 남았다는 얘기로 되는데 그는 지금 대학원을 갓나온 학생처럼 싱그럽다. 앞으로 또 무지개를 찾을 셈인가고 물은 나에게 그는 “돈 벌 생각은 안 하겠다.”며 소웃음을 웃었다. 엘바섬을 벗어난 나폴레옹 위한림이 설마 워털루의 전철은 밟지않을 테니 두고 볼 만한 앞날이다. --- pp.471~472 |
무지개를 좇는 우리 현실의 자화상
“나림 이병주는 역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역사’의 문제가 그의 문학 세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시대 현실’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소시민들의 일상 영역에 들어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당대의 시대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병주 장편소설 『무지개 사냥』은 이병주 문학의 한 축인 ‘시대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의 일환으로, “정치, 경제, 사회의 격변의 틈바구니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 현란한 색깔과 독향(毒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다가 사라진” ‘젊은 청년 실업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1982년 4월부터 1983년 7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대중문화의 전성기이자 독재 정권기였던 1971년부터 1979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소시민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삶 속에 작동하고 있는 경제 생리를 풀어낸다. 누구나, 언제나 무지개를 꿈꾼다 “소설은 ‘피난민의 몰골을 닮은 범람 상태의 사람들, 만성 체증을 앓고 있는 위장을 방불케 하는 자동차 홍수, 물욕이 투사된 수십 층 빌딩과 단층 판잣집의 고저’로 이루어진 1971년 서울 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권력자의 꿈, 권력을 노리다가 실패한 자들의 꿈, 사업가들의 꿈, 사기꾼의 꿈, 좀도둑의 꿈, 허영투성이인 여자들의 꿈, 간통하는 남자, 간통하는 여자의 꿈, 수험생들의 꿈, 예술가의 꿈, 그 무수한 꿈들이 지칠 대로 지쳐 그 형해(形骸)가 건물이 된” 서울은 말 그대로 “꿈의 폐허”였다. 주인공 위한림은 꿈의 폐허 서울에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권모술수”를 익혀 더 큰일을 도모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일을 벌인 결과 파산에 이른다. 그렇게 그의 무지개는 일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이 아닌 다른 무지개를 생각해 보게 된다. 50년 전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무지개 사냥』은 ‘70년대의 병리에 대한 조명’하면서 경제 제일주의가 파생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인간의 소중한 것을 상실해 가고 있는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목표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