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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異?) 다이아몬드
로맨스와 뉴스 미스테리가 있는 간주곡(間奏曲) 무지개 속의 여자 풍운아(風雲兒) 흉색(凶色)의 네온 곤충들의 대수(代數)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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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남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인생의 지류(支流)를 합쳐 대하(大河)를 이룬 역사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써 비롯된 드라마의 전개가 아닌가 .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고 플라톤을 상상할 순 없다. 소하(蕭河)를 만나지 않았다면 패현(沛縣)의 건달인 유방(劉邦)이 한 고조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새겼을 까닭이 없다. 시저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로마 제국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존 포스터 덜레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결코 그보다 키가 작지도 않았고, 얼굴이 못생기지도 않았고, 훈공이 덜하지도 않았고, 야심이 부족하지도 않았던 맥아더 원수가 일개 상사 회사의 회장으로서 그 인생의 경력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례로써 충분한 증명이 된다. 그런데 만남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처럼 동서고금을 설쳐 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바로 당신이 그 결정적인 증거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이 없이 당신이란 존재가 가능했겠는가. 당신에게 있어서 당신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니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긴데, 이렇게 쓰고 보니 약간 쑥스럽지 않은 바가 아니다. 유한일(柳漢一)과 나와의 만남을 얘기하기 위한 서두로선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서두를 달아야 하게끔 하는 그 무엇이 그와 나와의 만남엔 있는 것이다. --- p.12~13 유한일은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도 두세 시간을 더 내 서재에서 놀다가 오후 세 시쯤 돌아갔다. 돌아갈 즈음 “R호텔 703호에 있으니 필요하실 때 전화하세요.” 하고 호텔의 전화번호를 내 메모지 위에 적어 놓았다. 늦잠은 나의 버릇이었다. 새벽 두 시, 혹은 세 시까지 깨어 있는 사람으로선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비교적 일찍 잠을 깼다. 정각 아홉 시였다. 안 하던 버릇으로 하루가 시작되면, 다음다음으로 평소엔 안 하던 짓을 하게 마련이다. 저 편 벽 쪽에 먼지를 쓰고 있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틀었다. 돌연 튀어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범인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나 시간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 문제로 옮아갔는데 ‘범인’ 하는 기분으로 다른 방송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거기서도 뉴스가 계속되고 있었다. 귀를 기울였다. “어젯밤 R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는 아나운서가 있었다. ‘R호텔이면 유한일이 투숙하고 있는…….’ 하는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이어 ?? “사건이 난 곳은 703호실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그저께 유한일이 써 두고 간 메모지를 집어들었다. 유한일이 투숙하고 있는 방이 703호실이었다. --- p.228~229 |
최은희 납치사건이 모티브인 반(anti)추리소설
“소설 『미완의 극』은 한 편의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우리의 경애하는 여배우 최은희를 기념하고자 하는 내 나름대로 부른 추억의 엘레지이다.” 1982년에 소설문학사에서 2권짜리로 펴낸 『미완의 극』은 연애소설도 아니고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소설도 아니다. 이 소설을 쓰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영화배우 최은희 납치사건인데 실제적인 최은희 납치사건을 르포르타주 식으로 그린 것은 아니다. 시대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사회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도 애매한 이 소설은 이병주를 거론할 때 전혀 언급되지 않은, 평가의 대상에서 누락되고 만 소설이다. 이병주가 이 작품을 가리켜 추리소설이라고 하지 않고 추억의 엘레지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이병주의 여러 소설 중에서 아주 특이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가는커녕 거론조차 된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추리소설이면서 문학인 소설, 그것이 이병주의 목표였다. 어찌 보면 반(anti)추리소설론이다. 냉전 시대, 민감한 주제에 정면 도전 “『미완의 극』은 결국 완전히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끝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경애하던 여배우 최은희 씨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나는 최은희 씨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어떤 타의(他意)에 의해 영락없이 침묵해 있어야 할 환경에 빠져들어 있는 것이다.” 이병주는 최은희와 신상옥 두 사람이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이 소설을 썼다. 그 당시에는 두 사람의 북한에서의 활동 사항이 남쪽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베일에 가려진 북한 생활을 추측해서 쓸 수는 없었고, 납치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끝날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 작품은 냉전 시대, 민감한 주제에 정면 도전한 작품이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의 알고 있는 지금, 이 소설을 쓸 무렵인 1980년대 초에 최은희가 북한에 건재해 있다는 것을 이병주는 과연 알고 있었을지 몰랐을지 추측해보면 읽는다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미완의 극』은 다양한 이병주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난 그 독특함을 넘어 작가 이병주가 세계의 평화, 호혜주의, 사해동포사상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써 비롯된 드라마를 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