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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불
루쉰김택규
읻다 2021.10.13.
원서
死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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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시인선

책소개

목차

아우들과 이별하며·1
연꽃송이
아우들과 이별하며·2
내 사진에 부쳐
판아이눙을 애도하며

사람과 시간
《들풀》 서시
가을밤
그림자의 고별
거지
복수
복수·2
희망


아름다운 이야기
죽은 불
개의 질책
잃어버린 좋은 지옥
묘비문
쇠약한 선의 떨림
의견
죽고 나서
이런 전사
마른 잎
희미한 핏자국 속에서
한 가지 깨달음
긴 밤에 익숙해져
무심코 쓴 시
《방황》에 부쳐
무제
을해년 늦가을에 무심코 짓다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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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차 번역가. ‘이중톈 중국사’ 시리즈와 『논어를 읽다』를 비롯한 양자오의 중국 고전 강의 시리즈 다수를 옮겼다. 쑤퉁의 『이혼 지침서』 『나 제왕의 생애』, 왕웨이롄의 『책물고기』, 루네이의 『자비』, 마이자의 『암호해독자』, 왕후이의 『죽은 불 다시 살아나』, 탕누어의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등 60여 권에 달하는 소설, 인문서를 번역했다. 저서로는 『번역의 말들』 『번역가 되는 법』 『번역가 K가 사는 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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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178g | 115*190*9mm
ISBN13
9791189433383

책 속으로

헤어져 다시 일 년을 보내야 하는데
만 리 긴 바람이 객선을 떠나보낸다
다들 기억해야 할 말 하나 있으니
삶의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지 않다
--- 「아우들과 이별하며 1」 중에서

어둠 속에선 모른다, 신열과 두통을 이리 오라, 이리 와, 또렷한 꿈이여!
--- 「꿈」 중에서

침묵하고 있을 때 나는 꽉 차 있음을 느낀다. 입을 열려고 하면 동시에 공허함을 느낀다.
과거의 생명은 이미 죽었다. 나는 이 죽음이 매우 기쁘다. 이로써 일찍이 그것이 살아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죽은 생명은 이미 부패했다. 나는 이 부패가 매우 기쁘다. 이로써 그것이 아직 공허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들풀》 서시」 중에서

음험한 눈을 깜박이던 하늘은 더욱 파래지고 불안해져 마치 달만 남겨둔 채 인간 세상을 떠나 대추나무를 피하려는 듯하다. 달도 슬그머니 동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나무줄기는 기괴하고 높은 하늘을 계속 묵묵히 쇠꼬챙이처럼 곧게 찌르고 있다. 하늘 이 아무리 고혹적으로 이리저리 눈을 깜박여도 오로지 그를 죽이겠다는 일념뿐이다.
--- 「가을밤」 중에서

나는 홀로 먼 길을 떠나련다, 너도 없고 다른 그림자도 없는 어둠 속으로. 내가 어둠 속에 묻혀야만 세계는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한다.
--- 「그림자의 고별」 중에서

나는 베풂도 못 얻고 베푸는 마음도 못 얻을 것이다. 베푸는 자의 짜증과 의심과 미움만 얻을 것이다.
나는 무심함과 침묵으로 구걸할 것이다.......
--- 「거지」 중에서

그래서 드넓은 광야만 남았고 그 두 사람은 거기에서 발가벗은 채, 날카로운 칼을 쥔 채 건조하게 서 있었다. 죽은 사람의 눈빛으로 행인들의 그 건조함과 무혈의 대살육을 감상하고서 생명의 비상하는, 극도의 대환희 속에 영원히 잠겼다.
--- 「복수」 중에서

난 그저 맨손으로 이 공허 속 어두운 밤과 싸워야 한다. 몸 밖의 청춘을 못 찾더라도 어떻게든 스스로 몸속의 황혼을 내던져야 한다. 그런데 어두운 밤은 또 어디 있을까? 지금은 별도 없고 달도 없고 웃음의 아련함과 사랑의 춤추는 비상도 없다. 젊은이들도 매우 평온하여 내 앞에는 진짜 어두운 밤도 없어져 버렸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
--- 「희망」 중에서

끝없는 광야 위에서, 혹한의 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며 맴돌고 솟아오르는 비의 영혼.......그렇다, 그것은 고독의 눈이고 죽은 비이며 비의 영혼이다.
--- 「눈」 중에서

완전히 잊어버려 아무 원망도 없는데 무슨 용서의 말을 하겠는가. 원망 없는 용서는 거짓일 뿐이다.
--- 「연」 중에서

만다라꽃은 바로 시들었다. 기름은 예전처럼 끓어올랐고 불꽃도 예전처럼 뜨거워졌다. 뭇 영혼도 예전처럼 신음하고 예전처럼 몸부림치느라 잃어버린 좋은 지옥을 떠올릴 틈도 없어졌다.
그것은 인간의 성공이자 영혼의 불행이었다....... 친구여, 너는 나를 의심하고 있구나. 그래, 너도 인간이었지! 나는 차라리 야수와 악귀를 찾아 나서야겠다......."
--- 「잃어버린 좋은 지옥」 중에서

나는 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체가 어느새 무덤 속에서 일어나 앉아 입술도 안 움직이고 말을 했다."내가 먼지가 되었을 때 너는 내 미소를 보게 되리라!" 나는 달렸고 감히 돌아보지 못했다. 그가 쫓아오는 것을 볼까 두려웠다.
--- 「묘비문」 중에서

말 없는 언어를 말하고 있을 때 석상처럼 위대하지만 이미 황폐하고 쇠약해진 그녀의 육신이 송두리째 떨렸다. 그 떨림은 하나하나 고기 비늘 같았고 그 고기 비늘은 하나하나 뜨거운 불 위의 물처럼 들끓었다. 허공도 즉각 폭풍우 속 거친 바다의 파도처럼 한꺼번에 떨렸다.
--- 「쇠약한 선의 떨림」 중에서

그런데 나는 항상 안락하지도 망하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살아 어느 쪽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또 그림자처럼 죽어버려 원수들조차 알지 못하는 바람에 그들에 게 힘들이지 않고 약간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도 잃고 말았다....... 상쾌한 가운데 울음이 터지려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죽은 뒤의 첫 번째 울음이었다.하지만 결국 눈물은 안 나왔다. 단지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하는 듯싶더니 몸을 일으켜 앉았다.
--- 「죽고 나서」 중에서

지금의 조물주는, 역시 겁쟁이다.
은밀히 천지를 바꾸면서도 감히 이 지구를 멸망시키지 는 못한다. 은밀히 생물을 소멸시키면서도 감히 모든 시체를 오래 보존하지는 못한다. 은밀히 인간을 피 흘리게 하면서도 감히 피 색깔을 영원히 짙게 유지하지는 못한다. 은밀히 인간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감히 그들이 영원히 기억하게 하지는 못한다.

--- 「희미한 핏자국 속에서」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읻다 시인선 12권. 훗날 마오쩌둥에게 “루쉰의 방향이 바로 중국 민족 신문화의 방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과 산문 이외에도 89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중국의 근대화와 삶의 이력을 함께 한 루쉰은 고전시와 현대시를 함께 남겼는데,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1927년 발표된 《들풀野草》에 수록된 산문시 23편이다. 시 선집 《죽은 불死火》은 루쉰의 자유체 시, 산문시, 민가체 시를 포함하는 현대시 35편과 5·7언의 율시와 절구, 초사체楚辭體 시, 보탑시寶塔詩를 포함하는 고전시 54편에서 각기 23편과 10편, 총 33편을 가려 뽑았다.

‘시대적 정열’과 ‘진실성’
시인 루쉰의 문학적 이상


《죽은 불》은 루쉰의 대표적인 산문시로 알려진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고전시를 포함시켜, 루쉰의 일생에서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1900년 2월, 신학당 수학기에 쓴 〈아우들과 이별하며〉를 시작으로 1935년 12월에 쓴 〈을해년 늦가을에 무심코 짓다〉까지 담은 이 선집은 루쉰이 고전시로 시 쓰기를 시작하여 현대시 쓰기를 병행하다가 다시 고전시를 쓰는 여정을 보여줌으로써 루쉰의 문학관을 드러낸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도 시가 없을 수 없으니, 시인이 시를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를 읽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 자신에게도 시인의 시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시가 있기는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를 못할 뿐인데, 시인이 대신 말로 표현하여 채를 잡고 현을 퉁기면 읽는 사람 마음속이 현에 공명한다. 그 소리는 영부에까지 울려 모든 감정 있는 생물로 하여금 아침 해를 바라보듯 고개를 들게 하고, 더 나아가서 아름다움과 위대함, 강력함과 고상함을 발양시켜 더러운 평화가 그로 인해 파괴될 것이다. 평화가 파괴되면 인도人道가 증대된다.”
- 〈악마파 시의 힘을 논함〉

루쉰은 1908년 봄에 발표한 〈악마파 시의 힘을 논함摩羅詩力設〉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지향인 ‘시대적 정열’과 ‘진실성’이라는 신문학의 이상적 명제를 처음 드러내며 시의 본질과 시의 정치적·계몽적 효용 등에 대해 논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루쉰의 문체로 잘 알려진 계몽적이면서도 전복적인 힘에 대한 믿음만이 루쉰의 유일한 시론은 아니다. ‘노골화된 정치적 파시즘의 횡행’ 속에 신시 창작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구문화 미학의 영향 아래, 신시 창작을 포기하게 된 루쉰은 이렇게 회고하기도 한다.

나더러 시에 대해서 말하라니 실로 천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이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는 한번도 연구해 본 일이 없으므로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 더우인푸竇隱夫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1934년)

역사와 반응하며 변화하는 루쉰의 시 쓰기

루쉰의 시작법과 시에 대한 입장은 중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반응하며 변화한다. 선집에 소개한 33편의 시의 끝에 시를 지은 연도를 표기한 것은 이러한 흔적을 살피는 하나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죽은 불》의 역자 김택규는 스스로 봉건 중국과 신중국이라는 역사 단계 사이의 중간물中間物이라고 여긴 루쉰이 일생 동안 지속해서 썼던 시를 통해, 문필가 루쉰에게서 시인의 특성을 다시 발견하길 바란다.
초기 고전시 창작 시기에 루쉰은 반청反淸운동과 함께 봉건 중국에서 탈피하고자 했으며 이는 〈전진가〉와 〈전투가〉 등 정치성을 짙게 띤 시로 나타난다. 이어서 1919년 5·4운동 이후 1927년 4·12정변에 이르는 시기까지 현대시 창작에 매진한다. 이 시기의 결과물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들풀野草》이다. 이 작품은 “산문과 운문의 중간적 특성을 지닌 산문시 형식의 이점을 이용하여”, “루쉰 자신의 서정성을 폭넓게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다. 1918년, 자신의 최초의 현대시인 〈꿈〉을 발표한 루쉰은 신문화의 적극적 수용과 함께 외국문학 수용 과정에서 습득한 “상징적 표현과 철학적 알레고리”를 실험하며, 자신의 미학적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고전시로의 회귀
익숙한 언어로 일상과 사회를 그리기


저우 선생은 눈을 감고 있어도 꼭 잠을 자는 건 아니었어요. 왕왕 이 때 묵묵히 시구를 읊조리곤 했어요. [...] 그분이 낮잠을 깨고 하는 첫 번째 일은 책상 앞에 앉아 쪽지 하나 를 꺼내고는 완성된 시구를 적는 거였어요. 한 연이나 혹은 두 연인 적도 있었으니까 반드시 한 편을 다 쓴 건 아니었어요. 그러고는 서랍 안에 넣어두었어요. 새로운 시구를 얻었을 때는 즉시 쪽지에 적어두었고, 새로운 시구가 안 나오는 날엔 쌓아둔 여러 시구들을 펴서 다시 읽어보고는 몇 구를 첨가해 한 편을 완성하기도 하고 맘에 안 드는 시구를 몇 자 고치기도 했어요. 또는 꾸깃꾸깃 뭉쳐서 휴지통에 버리기도 했고요.

- 루쉰의 서거 후 쉬광핑許廣平 인터뷰, 〈옮긴이의 말〉 중에서

1927년 이후, 루쉰은 사회적 관계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일상 공간에서 현대시보다 문언문 문학 토양에서 자란 자신에게 익숙한 고전시 창작으로 회귀한다. 신문단의 첨단에 서있던 루쉰의 이러한 행보는 일관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선집의 구성을 통해, 신문화의 전사의 모습을 한 루쉰으로만 그의 문학을 바라보는 편견을 걷어내고 시대의 경계에 놓인 중간자로서의 루쉰, 형식을 넘어 동시대의 정열과 함께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시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시인 루쉰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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