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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삶을 바꾼 스승과 제자의 만남
전호근
사우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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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공자와 그 제자들_가르침이 있을 뿐, 신분을 차별하지 않는다
김정희, 이상적, 전기_ 시련에도 지지 않는 우정
이황과 기대승_나이와 지위를 넘어 서로 존중하며 논쟁하다
주희와 채침_ 금지된 학문으로 시대와 불화하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_ 붉은 마음과 푸른 꿈의 만남
사마담, 사마천_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기약하다
정약용과 강진의 제자들_ 유배지에서 나눈 우정
조식과 정인홍_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
정제두와 강화학파_ 이단을 공부한 유학자
이달, 허난설헌, 허균_ 재능을 가진 이가 부서지지 않기를
순자와 이사_ 뛰어난 스승과 독한 제자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_ 서로 기대며 실학을 꽃피우다
신사임당, 이이_가르치고 배우는 어머니와 아들
홍인과 혜능_ 말로 전하지 않는 가르침
경허와 수월, 혜월, 만공_ 콧구멍 없는 소와 세 개의 달
유영모와 함석헌_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기쁨
최제우, 최시형_ 제자가 있어 스승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저자 소개 1

田好根

성균관대학교에서 유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이다. 저서로는 은사이신 안병주 선생과 함께 『역주 장자』를 펴냈다. 아내와 더불어 『공자 지하철을 타다』를 쓰고, 아이들을 위해 『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을 썼다. 또 『한국철학사』, 『고전 함께 읽기』, 『대학 강의』, 『장자 강의』,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 『강좌한국철학』(공저),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공저), 『동양철학산책』(공저), 『동서양고전의 이해』(공저),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공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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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58g | 148*210*20mm
ISBN13
9791187332732

책 속으로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는 평범한 말로 시작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비범해 보일 정도다. 그런데 배움이 기쁜 이유가 뭘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은 대학(大學)이었다. 당시 이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귀족으로 제한되었다. 배우는 과목을 봐도 그렇다. 이른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육예(六藝)라 하는데 이 모든 과목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당연히 평민들은 배울 수 없었다. 그런데 공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자는 육예에 관한 한 당시 최고의 전문가였는데, 그 보따리를 모든 사람에게 풀어버린 것이다. 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그 기쁨을 짐작할 만하다.
---「공자와 그 제자들」중에서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 온 지도 어언 다섯 해가 흘렀다. 한때 생사를 같이하던 벗들도 이젠 소식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또다시 육지에서 보내온 거질의 책이 바다를 건너 그에게 전해졌다. 제자 이상적이 만 리 바깥, 북경에서 여러 해를 두고 구해서 보내준 귀중한 책이다. 모든 사람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데 이상적만은 옛정을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해준 것이다. 김정희는 그를 칭찬하는 뜻에서 갈라진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썼다. 조선 문인화의 최고걸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정희, 이상적, 전기」중에서

흔히 강고한 체제수호 이데올로기로 비판받는 주희의 철학은 주희 생존 당시에는 권력자들에 의해 탄압받는 학문이었다. 주희 이전의 사유체계에 따르면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는 태어나면서 결정된다. 하지만 주희의 철학 체계에 따르면 독서를 통해 벼슬에 나아간 사대부는 정치의 보조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존재다. 그 때문에 사대부는 왕과 귀족의 통치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통치행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직접 올바른 정치를 구현해야 할 책임을 요구받는다. 이 같은 관점은 기존 권력의 지형을 흔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고위 관료 계층은 이들의 등장을 반가워할 수 없었다.
---「주희와 채침」중에서

정제두의 학문을 계승한 이들은 모두 시문과 서예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양명학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이광명의 종손인 이건창은 김택영, 황현과 함께 한말 삼대 문장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들은 모두 양명학자였다. 이들은 경술국치를 당하자 자결하거나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건승은 애초 을사늑약 이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재산을 다 털어서 강화에 ‘계명의숙’을 세워 구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압록강을 넘어 만주 흥도촌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이로부터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 항일 무장투쟁이 이어졌다.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강화학파의 후손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 이들 양명학자들은 자신들을 이단으로 배척했던 주자학의 나라 조선을 끝까지 지키려다 망국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정제두와 강화학파」중에서

허균이 과연 역모를 꾸몄는지 아니면 억울하게 모함으로 죽었는지는 《광해군일기》의 기록을 살펴봐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사람을 모아 거사를 도모한 구체적인 정황이 있는 걸 보면 그가 실제로 반역을 도모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반역이 아니라 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단종을 애도하는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뭇 사림에게 충절의 상징으로 받들어졌던 김종직을 두고 명예를 훔치는 도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그는 충절을 지키는 사직의 신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온 삶을 내던져 세상을 변혁하려 했던 혁명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달, 허균, 허난설헌」중에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이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선행은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데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스승이 없으면 부정해지고 예의가 없으면 난폭해진다. 이제 사람들을 살펴보면 스승의 감화를 받고 학문을 쌓아 예의를 숭상하는 사람은 군자가 되고, 타고난 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
---「순자와 이사」중에서

박지원은 초시에 응시하여 장원을 차지하면서 영조의 총애를 입어 일찌감치 벼슬길이 보장되었으나 과거에 뜻을 품지 않고 회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대신 신분의 고하나 적서를 가리지 않고 뜻이 맞는 이들과 자유롭게 어울렸는데 특히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과 마음을 터놓고 교유했다.

이덕무와 유득공은 박제가, 이서구와 함께 이른바 사가시인(四家詩人)으로 불릴 정도로 문장이 뛰어났고 백동수는 당시 조선에서 창검의 제일인자로 꼽혔던 무인이었지만 모두 서출로 당시 조선 사회에서 천대받던 이들이었다. 그는 이들과 무람없이 어울리며 묘향산에서 가야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명산을 두루 유람하는가 하면 평양과 개성, 화양과 단양을 돌아다니며 시를 쓰고 문장을 지었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중에서

유영모는 1915년 25세에 김효정과 결혼했는데 26년이 지난 1941년 51세에 해혼(解婚)을 선언한다. 해혼은 이혼이나 파혼과 달리 글자 그대로 혼인의 구속을 푼다는 뜻으로 이를 통해 아내와 헤어짐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법적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참된 사랑을 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1918년부터 살아온 날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일기에 스스로 ‘하루살이’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날마다 편견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영원의 시간으로 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영모와 함석헌」중에서

출판사 리뷰

”천애고아 못지않게 불행한 사람이 스승 없는 사람이다”_ 이문재 시인
“인간은 스승이 없으면 부정해지고 예의가 없다”_ 순자

스승도 제자도 없는 시대,
사제간의 아름다운 자취를 기록하다


동양철학의 권위자 전호근 교수가 서로의 삶을 밝혀준 스승과 제자 이야기 17편을 들려준다.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가르침을 베풀었던 훌륭한 교육자 공자와 그 제자들, 제주도로 유배된 스승 김정희를 잊지 않고 끝까지 정성을 제자 이상적,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시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로 평생 교류했던 황희와 기대승,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뒤에 남은 제자 최시형을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운명처럼 만나 하루하루를 영원처럼 살다 간 유영모와 함석헌…. 멀리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20세기 한국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한결같이 평생 사제간의 우정을 가꾸고 키운 이들의 아름다운 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이들이 나눈 우정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성실하게 옛글을 읽고 연구한 저자가 들려주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적 배경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스승과 제자는 본디 우정을 나누는 관계다. 우정에 관한 수많은 금언이 있지만 그중 스승과 제[자 간의 우정이야말로 으뜸이 아닐까. 그 둘 사이에는 상하도 없고 시기도 질투도 없고 경쟁도 없다. 그러니 이보다 따뜻하고 정겹고 긍정적인 관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_‘들어가며’ 중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 스승이 없으니 제자도 없다. 지식 판매자와 지식 소비자가 있을 뿐이다. 우정은 사라지고 거래만 남은 현실에서 사제간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찾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해준다.

스승과 제자는 나이, 신분, 지위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공자와 그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저자는 교육자 공자가 실현하고자 했던 평등한 교육에 관해 들려준다.

『논어』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라는 평범한 말로 시작한다. 논어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이 구절은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문장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배움이 기쁜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은 대학(大學)이었다. 당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귀족뿐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천민 출신이든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베풀었다. 신분에 구애 없이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공자는 3천 명에 달하는 제자 중에 가장 가난한 제자를 가장 사랑했다. 공자가 위대한 교육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 세상은 불평등하다. 예나 지금이나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교육이다. 공자의 교육철학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등등하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 정의로운 세상이 된다. 공자가 ‘학(學)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논어의 첫 문장이 학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누구나 배우면 된다는 것, 배움으로써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_본문 중에서

조선의 실학을 꽃피운 박지원과 박제가는 만난 순간부터 평생 스승이자 벗으로 지냈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었지만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한번은 스승 박지원이 돈을 꿔달라는 편지를 박제가에게 보냈다. 자신의 처지를 공자의 가난한 제자 안회에 빗대며 돈과 함께 술도 보내달라며 익살을 떨었다. 박제가는 편지를 가져온 하인 편에 돈 200전을 보내며 답신에 “술은 보내지 못합니다.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라며 농담을 써서 보냈다.
양주의 학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말로 욕심이 지나치다는 의미이다. 스승과 제자는 이렇듯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허물없이 지냈다.

제자가 있어 스승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학문의 발전이든 모순된 세상을 돌파하는 과업이든 한 세대에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고매한 이상을 세운 스승에게는 그 뜻을 이어받아 수행해줄 제자가 있었다. 그런 제자가 있었기에 스승은 암울한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했다. 사마천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커다란 수치를 당하고도 죽지 못한 졸장부라고 비웃는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것은 마음속에 맹세한 것을 완성하지 못함이 원통해서이고, 이대로 죽어버리면 내 문장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게 될 것을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말하는 맹세란 ‘통사를 저술하라’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실행하는 일이었다. 아버지 사마담은 사관으로서 모든 지역과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통사를 저술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 사마담은 본인이 통사 저술이라는 위대한 이상을 완수하지 못하리라고 예견이라도 한 듯 아들 사마천을 역사가로 키웠다. 아들 사마천이 있었기에 사마담은 절망하지 않고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으리라.

사마천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스승이었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마천은 수치심을 누르고 6년 동안 역사 기술에 매달렸다.

“사마천은 자신의 삶을 백 세대가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내장이 아홉 번이나 뒤틀리는 고통을 맛보고 늘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치욕을 감수하면서 끝내 남기고자 한 말이 사기로 남았고 그 문장은 찬란하기 비길 데 없다.”_본문 중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형수가 된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동학의 기운이 위세를 떨치자 조정은 수장 최제우를 참형에 처한다. 그에게 직접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순도하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라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 최제우는 사라졌지만 그의 가르침은 끊어지지 않고 제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_ 본문 중에서

스승의 바람대로 최시형은 동학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2대 교주가 된 최시형은 시위를 주도한 죄목으로 도피를 하면서도 교단을 정비해 나갔고, 동학혁명을 일으켰으나 일본군에 패배한다. 동학농민군이 패배한 뒤에도 최시형은 전국을 다니며 스승의 가르침을 전했다. 동학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최제우의 가르침은 최시형을 통해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에는 나이와 신분과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우정을 나눈 17편의 스승과 제자 이야기가 나온다. 일찍이 순자는 “스승이 없으면 부정해지고 예의가 없다”라고 말했다. 시인 이문재는 “천애고아 못지않게 불행한 사람이 스승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사제간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정과 관계 맺기에 관해 성찰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제열전’이 우리 모두를 누군가의 제자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제자란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누군가의 스승으로 재탄생하는 주체가 아니었던가.”_ 추천사(시인 이문재)

추천평

“천애고아 못지않게 불행한 사람이 스승 없는 사람이다. 물론 스승은 학교에만 있지 않다. 골목에도 있고, 기차 옆자리에도 있을 수 있다. 책갈피에, 영화 한 장면에, 노랫말 한 소절에도 스승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갈수록 참스승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려받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해서 물려주는 어른이 줄어들기 때문이리라. 나는 전호근 교수의 이 책이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경구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참스승은 없고 반면교사만 득실거리는 이 난세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언덕 가운데 하나가 책이다. ‘우정의 관계’, 즉 사제간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 책만큼 훌륭한 스승이 또 어디 있으랴. 모든 좋은 책은 반드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나는 이 ‘사제열전’이 우리 모두를 누군가의 제자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제자란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누군가의 스승으로 재탄생하는 주체가 아니었던가.” -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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