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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상하든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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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로 들어가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양치질과 세수를 할때는 꼭 양치질을 먼저 하고 세수를 나중에 해야 했다. 세수를 하고 난 다음에 양치질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비누 거품을 씻어낼 경우에는 물을 열아홉 번― ‘19’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였다 ― 끼얹어야 했다. 그보다 많아도, 그보다 적어도 안 되었다. 그냥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끝냈다.
--- p.13 편의점 ‘불면증’은 그냥 개인이 운영하는 조금 크고 멀끔한 구멍가게 같은 곳이다. 대기업이 전투적으로 확장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보니 수익 구조가 단순했다. 중간 유통 단계가 없어 ‘불면증’은 다른 편의점에 비해 물건값이 쌌다. 싸게 많이 팔자는 사장의 전략이 먹힌 것인지 용케 경쟁에서 살아남은 ‘불면증’은 현재 4호점까지 불어난 상태였다. 사장의 최종 목표는 이 일대에 ‘불면증’을 세 개 더 늘리는 것이다. 누가 보면 돈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냐고 오해할 테지만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p.15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 수녀복 차림의 웬 여자애가 다급히 뛰쳐나왔다. 나와 어깨를 부딪친 여자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댔다. 뭔가 초조해 보이는 낯빛이었다. 그 애의 불안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자전거였다. 대뜸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급해서 그러는데 그 자전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 p.32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애는 자기 가방을 자전거 바구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허락도 없이 내 자전거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여자애가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다그쳤다. “뭐 해요, 빨리 안 타고?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빨리 타요! 빨리빨리! 안 그럼 다 죽어!” 여자애는 더 말하기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마지막 충고를 했다. “균형 잡기 힘드니까 옆으로 타지 말고요!” --- p.32~33 그래서 종종 경우의 수를 다 살아볼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인생이 얄궂게 느껴지곤 했다. 치사하게 연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삶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삶에 완벽한 준비라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완벽한 준비를 마칠 수 있다면 그게 어떻게 시작이고 과정일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 p.50 이번에도 아무것도 안 보일 거야, 하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까만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세상에, 저건 뭐지? 눈을 계속 깜빡거렸다. 사람 형상 같은데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 p.85 “정해진. 해바라기 할 때 ‘해’를 써요.” “반듯한 이름이네요. 그럼 당신이 제 이름 좀 지어줄래요?” “네? 제가요? 제가 왜…….” 당황한 나는 이번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당신이 저의 첫 번째 타인이자 나를 인식한 객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제 이름은 그쪽이 불러줄 테니까 누구보다 당신이 부르기 편해야 하잖아요?” --- p.88 여자아이가 내가 가리킨 쪽을 쳐다봤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보여요. 까매요. 근데 코끼리 같아요. 나 코끼리 진짜 좋아하는데.” “뭐? 코끼리?” “네.” “코끼리란 말이지……. 근데 네 눈엔 이상해 보이지 않니?” “코끼리는 이상하지 않아요. 멋지지!” --- p.152 “다름이 네가 믿어주기만 하면 언젠가 짠, 하고 나타나주지 않을까?” “뭘 믿어주면 되는데요?” “음, 이 세상엔 나와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거?” “저 할 수 있어요. 저랑 아무리 달라도 괜찮아요.” --- p.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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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쓸쓸해서 그러는데, 저랑 놀아줄래요?”
이상해도 불안해도 괜찮은, 부드러운 위로의 시간 어제가 괴로워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꾸는, 쉼 없이 생동하는 삶의 이야기 『얼마나 이상하든』은 삶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상처받아도 우리는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야만 한다. 작품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정해진’은 과거에 일어난 사고 트라우마로 강박증에 시달린다. 매일 아침 규칙적인 순서로 씻고, 낡은 목조계단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장자리만 밟는 등 스스로 정한 루틴을 최대한 지키며 살려 한다. 남들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하고 이상한 삶의 방식이다. 나는 그날 이후 내가 정한 어떤 질서 안에서만 안정과 안도를 느꼈다.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면 뭔가 께름칙하고 불안해졌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거야! 라는 강박적 사고와 불길한 암시가 따라다니는 것이다.(10쪽) 그녀의 주변 인물들도 그렇다. 해진이 일하는 ‘불면증 편의점’ 사장은 불면증에 시달린 나머지 편의점 체인을 확장해서 밤새워 일하고, 편의점 단골인 영국 남자는 한국에 잠깐 놀러 왔다가 갑자기 비행기를 못 타게 됐다며 아예 눌러살고 있다. 그리고 너무 게을러 코앞의 편의점도 꼭 배달을 시켜야만 하는 극작가, 우체통에 매일 같이 편지를 넣는 초등학생, 수녀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동갑내기 친구까지. 해진의 곁에는 언뜻 보기에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해진에게는 긍정적인 공통점도 있다. 바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하루하루 영 다를 것도 없고, 한발 나아가기란 힘에 부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을 괴롭히는 불편하고 나쁜 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쉽게 바뀌는 일이 없으니까. 여전히 평범하게 이상한 나날을 보내는 해진에게 갑자기 엄청나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형체 모를 존재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심심하고 쓸쓸해서 그러는데, 저랑 놀아줄래요?”(69쪽) 저마다의 이상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를 위한 메시지 이상하고도 특별한 존재인 그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해진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강박증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을 줄곧 두려워했지만, 사람마다 다른 형체로 보이는 그를 통해 이상함이란 결국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해진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보통이라는 건 남들 시선에 달린 문제일 뿐 그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것이 그러하듯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고는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다.(153쪽) 언뜻 이상하게 보이기 쉬운 해진과 불면증 편의점의 사람들.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듬고 살아가는 그 인물들이 계속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게 한다. 개성적인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에는 특별한 활기가 있고, 그 사연을 듣다 보면 우리는 결국 모든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말하고 들어주는 힘, 그 힘은 때로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상해도 괜찮은 그들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이상함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드러운 위로와 든든한 격려로 가닿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말하고 들어주는 힘, 그 힘은 때로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 웃게 하기도 하고, 변화와 용기와 의지를 끌어내기도 하며, 지치지 않게 다독여주기도 한다. 웃는 이유가 아닌, 우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