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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1부ㆍ11 2부ㆍ77 3부ㆍ129 옮긴이의 글ㆍ177 |
Михаил Алексеевич Кузми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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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많이 어리군요. 세계 전체가, 아주 다양한 세계들이 당신에게는 닫혀 있어요. 아름다움의 세계는 더더욱 그렇고요. 이 아름다움의 세계는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랑해야 할 것이에요. 모든 교양의 바탕이니까요.”
--- p.28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 웃을 줄도 찡그릴 줄도 아는 인간, 사랑하고 입맞추고 증오할 수 있는 인간, 혈관에 흐르는 피가 살갗에 비쳐 보이는 인간, 벗은 몸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깃든 인간 대신에 수공업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영혼 없는 인형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입니다. --- p.29 “이미 당신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될 씨앗이 있어요.” --- p.29 “사람들은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이 신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유롭고 용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 p.39~40 시트루프의 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오가는 갑론을박, 포도주와 가벼운 대화를 곁들인 남자들만의 느지막한 저녁식사, 천장까지 가득한 책들에 둘러싸여 말로와 스윈번을 탐독하는 서재, 온갖 화장품들이 그득하고 선명한 녹색을 배경으로 암적색의 목신들이 화환 모양으로 춤을 추는 침실, 붉은 구리 식기들이 즐비한 식당, 이탈리아, 이집트, 인도에 대한 이야기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 이 섬 저 섬을 넘나드는 산책,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논증들, 볼품없는 얼굴에 깃드는 미소, 퇴폐적인 기운을 내뿜는 ‘포 데스파뉴’?의 향기, 야위었지만 반지를 여럿 낀 힘센 손가락들, 비범하게 두꺼운 밑창을 댄 단화들.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몽롱하게 도취되어 그는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p.54-55 사랑은 사랑 그것 말고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궁극적 목적도, 선도 악도 없다. --- p.56 기적은 바로 우리 주변에, 발걸음 떼는 곳마다 널려 있다. 전율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인간 몸의 근육과 관절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남성의 눈을 즐겁게 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만 연결 짓는 자들은 오직 저열한 정욕만 드러낼 뿐, 진실한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더욱 멀어져간다. --- p.57 “바냐, 한번 생각해봐요, 완전 낯선 사람이, 그러니까 다리도 살갗도 눈도 아주 다른 낯선 사람이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어서, 그 자체로 당신의 것이어서 언제든 그를 바라보고 입맞추고 만질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그의 몸 은밀한 곳 반점까지 하나하나, 팔에 난 금빛 터럭 하나까지도,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살갗의 볼록 튀어나온 곳, 움푹 들어간 곳까지도 말이죠. 그럼 당신은 그가 어떤 모습으로 걷는지, 먹는지, 자는지, 또 그가 미소 지을 때 얼굴에 어떻게 주름이 잡히는지, 또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의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다 알게 되는 거예요. 그때 당신은 더는 당신 자신이 아닌 게 되죠, 당신이 그와 하나가 된 것처럼요. --- p.79 “사랑이 건드리는 손길을 느끼면 얼마나 두려운지요. 기쁘기도 하지만 정말 두려워요. 날아가는 것 같다가도 꿈속인 듯 끝없이 추락하고 죽어가는 것 같죠. 그럴 때면 어딜 가든 당신을 관통한 무언가가, 사랑스러운 얼굴에 있는 그 하나만 보이는 거예요. 눈이랄지, 머리칼이랄지 아니면 걸음걸이랄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죠. 사실 그건 하나의 얼굴일 뿐인데, 그 얼굴에 대체 뭐가 있기에 그런 걸까요? 얼굴 한가운데 있는 코, 입, 두 눈. 그 얼굴에 있는 무엇이 그토록 흥분케 하고 사로잡는 걸까요? 사실 꽃이나 비단처럼 감탄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들은 많잖아요. 그런데 그 얼굴은 아름답지 않아도 온 영혼을 뒤흔들어놓고,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내게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죠. 왜 그런 걸까요? --- p.81 보통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죠. 그런데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경우도 있어요. 진짜예요, 내가 성자전에서 읽었어요. 성녀 에우제니아, 니폰트, 보롭스크의 파프누티도. 그랬고, 차르 이반 바실리예비치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테죠, 신께서 이 껄끄러운 가시를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으실 리 없다고 믿는 건. 하지만 바냐, 신께서 마음에 집어넣으신 것을 거스르기란 정말 힘든 일일 뿐 아니라 죄일 수도 있답니다.” --- p.81 육신도 죄고, 꽃이랑 아름다움도 죄고, 몸을 씻는 것도 죄라고 말하는데 그건 다 틀린 말이에요. 모두 죄라면 주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셨을 리 있을까요? 진짜 죄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죠. 뭔가에 마음이 가도록 운명이 지어졌는데, 열망이 느껴지는데 그 마음을 허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예요! --- p.99-100 우리도 때를 놓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실컷 보고 실컷 사랑하고 실컷 숨쉬어야 해요! 우리의 삶이 과연 길까요? 젊음은 더욱 짧고 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 사실을 언제나 잘 기억해두어야 해요. 그러면 막 눈을 뜬 아이처럼, 혹은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처럼 삶이 두 배는 더 달콤해질 거예요.” --- p.100 “자네에게는 정신의 가장 높은 도약을 알아봐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네. 자네는 그에게서 언제든 공감과 사랑을 얻을 수 있어.” --- p.120 선량한 의사이자 스승인 내가 자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려주겠네. 바로 삶이야. 시트루프는 자네를 위한 바로 그 삶을 구현하고 있네. 이게 전부일세.” --- p.121 온갖 예술 작품들, 페이디아스, 모차르트, 셰익스피어도 죽고 사라지지. 하지만 작품에 담긴 이상理想, 아름다움의 전형은 사멸하지 않는다네. 아마 이것이야말로 변화무쌍 하게 흘러가는 다채로운 삶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겠지. --- p.136 날개가 있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연인들, 용감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죠.” --- p.149 그는 꽃이 꽂혀 있는 유리잔이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아 천천히 적었다. ‘떠나세요.’ 조금 더 생각을 하고는 똑같은, 그러나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갑니다.’ 그리고 거리로 난 창문을 열었고, 거리는 밝은 햇살에 잠겨 있었다. ---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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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에 비견되는
러시아 퀴어문학의 고전 퀴어문학 출판사 큐큐에서 미하일 쿠즈민의 ≪날개≫를 출간했다. 큐큐에서 출간된 퀴어 작가들의 사랑 시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로 연작시 「알렉산드리아의 노래」 중 한 편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쿠즈민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알렉산드리아의 노래」와 ≪날개≫ 모두 작가의 대표작이자 퀴어라는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들이기에, 큐큐에서 러시아 문학 전공자의 원전 번역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뜻깊다 할 수 있다. ≪날개≫는 러시아어로 쓰인 최초의 퀴어 소설이기도 하다. 지방 소도시 출신 소년이 대도시인 페테르부르크로 올라와 성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로 쓴 이 소설은 20기 초 러시아 사회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문예지 ≪천칭자리≫는 한 호 전체를 ≪날개≫에 할애할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한편 외설적이라는 비판이 따라오기도 했다. 흔한 성애 묘사 하나 없이 대화와 정황을 통한 암시에만 그쳤음에도 파문이 일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일까, 쿠즈민은 소설 발표 후 적잖은 성 소수자 청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 대중은 ≪날개≫에서 당시 러시아 게이 사회의 성 풍속에 주목했다면, 당사자인 게이 청년들은 삶의 아름다움에의 초대를 발견한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성 소수자들에게 바냐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소년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크게 한 발 내디디며 끝나는 이 소설은 많은 게이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날개≫는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의 작품들과 비견되었으며, 오히려 그들의 작품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평가까지 받은 바 있다. 대다수 퀴어 소설에서 주인공이 방황 끝에 파멸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날개≫의 바냐는 자기 정체성의 발견에 머물지 않고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보여준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퀴어 소설이라는 틀에 갇혀서만 바라보지 않아도 될 만큼 ≪날개≫는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이 신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유롭고 용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바냐는 어머니를 여의고 사촌 형을 따라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대도시로 향한다는 기대도 없지 않지만 소년의 눈에 비친 도시의 풍경은 우중충하기만 하다. 바냐가 머무르게 된 곳은 삼촌 알렉세이 카잔스키의 집으로, 그곳은 일대의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냐는 그 집에 들른 부유한 영국인 라리온 드미트리예비치 시트루프를 본 후 자기 안에서 낯선 감정을 느끼지만, 그는 사촌 누나인 나타가 연모하여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남자다. 이후 우연히 공원에서 시트루프를 마주치는데, 오히려 시트루프 쪽에서 바냐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다. 그는 바냐와 그리스 고전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아름다움의 세계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원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바냐에게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될 씨앗이 있”다는 말을 남긴다. 바냐는 삼촌의 식구들에게는 시트루프와의 만남을 비밀에 부치며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 시트루프와의 대화가 남긴 여운 때문일까. 바냐는 그리스어 선생인 다니일 이바노비치의 집에까지 찾아가 그리스 문학과 문화에 대해 들으면서 그 역시 시트루프와 잘 아는 사이라는 우연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편 바냐는 사촌들과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그곳에 온 시트루프를 만나 그의 집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시트루프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전원이 남성으로, 목신들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그곳에서 그들은 라모와 드뷔시의 음악을 듣고, 영문학에 대해 논하며 아름다운 식기들로 식사를 하고 이국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며칠 후, 바냐는 시트루프의 집에서 그의 집을 방문한 이다 골베르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트루프가 어떤 주소지에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것을, 그 사실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냐는 그 주소지를 찾아가지만 시트루프를 만나지 못하고, 그를 기다리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대화를 듣게 된다. 부부 사이를 유지하면서 다른 남자와 지속적인 육체관계를 맺으며 금전 거래를 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바냐는 혼란에 빠지고, 낯선 청년들과 함께 나타난 시트루프를 확인하고는 경악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 시트루프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격앙된 채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의 모습과 그 직후 그곳에 도착한 사촌 누나 나타를 목격한다. 의문에 싸인 채 돌아온 바냐는 다음 날 아침, 라리온 드미트리 시트루프의 집에서 일어난 자살사건, 즉 이다 골베르크의 자살에 대한 신문 보도를 접하고, 시트루프를 둘러싼 수수께끼에 염증을 느끼고 그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하고 카잔스키 일가와 함께 바실수르크로 휴가를 떠난다…… 삶의 아름다움을 향해 떠난 소년의 여정 ≪날개≫는 어떤 독자라도 자신을 스스럼없이 투영할 수 있을 평범한 고아 소년 바냐(바냐는 러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이반’의 애칭이다)가 기차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해 또다시 새로운 여행길에 오를 것을 결심하는 것으로 끝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바실수르크, 그리고 다시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여정에는 작가 쿠즈민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깊이 감화된 러시아 구교도들의 삶,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어울린 (아마도 동성애자들일) 예술계 인사들과의 살롱 문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 내내, 작가는 바냐 자신의 고뇌에 찬 독백보다는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입을 빌려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바냐가 마음을 기대고 따르고자 하는 그리스어 선생 다니일 이바노비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불행히 삶을 마감하는 이다 골베르크, 바냐에게 그릇된 사랑을 품는 마리야 드리트리예브나, 속세에서 떨어져 사는 구교도 은수자,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기는 안나 블론스카야, 그리고 바냐가 사랑하는 라리온 드리트리예비치 시트루프, 이 모든 이들의 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은 어떤 규범으로도 심판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이다. 이 진리를 말하기 위해 쿠즈민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헬라이즘과 헤브라이즘, 기독교의 윤리, 그리고 세속 남녀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20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한계 역시 존재한다. 동성애자 사회를 그리는 한편 계급 문제를 외면했거나 여성 인물들의 묘사가 상당히 문제적이라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그럼에도 ≪날개≫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21세기가 된 지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유효하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고, 당시 쿠즈민이 받았다는 다음의 독자 편지와도 같은 감상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위대하신 분, 제 심장의 꽃, 이 장미 꽃다발을 받아주세요. (…) 당신께서는 제게 날개를 달아주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영혼의 탐색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믿음직스러운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_178쪽 큐큐클래식 큐큐의 세계문학 클래식. 고전 중 퀴어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품들을 출간,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