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대 선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던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술 없이도 취하는 게 젊음 서둘러 가라, 내 사랑에게로 하지만 저기 외따로 가는 자 누구인가? 더 크게 지을 수야 있겠지만, 더 많은 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인식했으면, 무엇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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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서원에서 온 편지
전영애는 현재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 여백서원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여백서원은 전영애가 ‘개집만한 집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공부할 수 있는 작은 집을 여주에 마련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보니 일이 점점 커졌고, 이제는 ‘괴테 마을’을 직접 만드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단순히 독일의 괴테 마을을 복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괴테의 공간을 구상했다. 현재 서원의 일부인 ‘괴테 오솔길’이나 ‘스무 명을 위한 파우스트 극장’ ‘여백 어린이 도서관’ ‘갤러리 여백’ 등도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탄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스스로 서원을 돌보며 나무와 꽃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비료도 주느라 정작 본인의 일인 학문은 뒤로 밀리기 일쑤다. 그는 현재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는 말이 전영애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서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캄캄한 후원을 걸어 작은 단칸방 집의 불을 켤 때다. 한국의 서원에 난데없이 웬 괴테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그럴 때마다 따지고 보면 옛 서원들에서 “모신” 공자도 외국 학자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이렇게 첨언한다. 바이마르라는 인구 6만의 작은 곳이 독일의 문화적 역사적 자부심이 되는 것도 인물 하나 잘 키워내어 그렇다고, 우리에게서도 인물 하나 잘 커 나오기를 바란다고. 그런데 그 인물은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크는 것이라, 그저 훌륭한 예 하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저 혼자 잘 크는 인물도 부럽지만, 또한 독일에서 나온 괴테, 쉴러, 베토벤 등도 부럽지만 그런 인물들이 있게 한 사람들이 부러워 그 이야기를 많이 하노라고 거듭 말한다. 서원 한쪽에는 흰 연꽃이 가득 피는 연못과 작은 솔밭 사이에 한 사람을 위한 아주 작은 한옥집이 한 채 있는데, 이 집은 우정友亭, 즉 ‘벗의 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보통 외국학자, 예술가들이 두어 달씩 머물며 작업하는 장소로 쓰이는데, 멀리서 온 학자들은 이곳에서 책을 완성해가기도 하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려 갤러리 여백에서 전시를 하고 간다. 이렇게 동서의 만남의 한 표본이라 해도 좋을 만큼 긴밀하고 다채로운 만남이 여백서원에서 이어지기도 한다. 전영애가 이 모든 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키웠는지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가 모델로 삼은 괴테는 살면서 위기나 시련을 겪으면 능동적인 사유와 연구, 창작으로 극복해낸 인물이다. 그는 괴테를 알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한다. 종이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문인 괴테가 들려주는 간명한 지혜의 말 괴테는 빼어난 작품들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많은 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바이마르 공국의 장관이면서 26년간 극장을 이끌었던 연극인이고, 38년간 도서관을 감독하며 세계의 온갖 책들을 끌어모아 작은 나라를 문화의 메카로 만들었다. 대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아서, 그가 써낸 작품들을 모은 바이마르 판 전집은 무려 143권에 달한다. 이 글들은 분야도 다양한데, 시와 소설, 희곡 등 문학뿐만 아니라 식물학, 광물학, 기상학, 동물학에 대한 글도 많고 자연과학에 대한 논문도 있다. 괴테가 남긴 스케치만 2500여 점에, 사는 동안 쓴 편지의 양도 2만여 통으로 추정된다. 긴 생애 동안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사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괴테는 그 모든 일들을 결코 대충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대작 『파우스트』는 무려 60년 동안 쓴 작품으로 유명하다. 실로 크고 넓은 인물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눈물 젖은 빵”에 관한 이야기나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말들에는 괴테가 긴 생애 동안 끊임없이 꿈꾸고 사랑하며 체득한 빼어난 지혜가 담겨 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는 괴테의 작품세계가 워낙 방대하여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차분히 이야기하는 말투로, 우리가 괴테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찾아내어,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험하고 때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어떤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어긋나지 않을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전영애의 글에서 완연히 전해져오는 느낌은 따스함이다. 행여 괴테의 의도가 잘못 전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자신의 인생 궤적을 통해 어렵게 알아낸 귀한 깨달음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소중한 사람을 향한 편지를 닮았다. 다시, 책 한 권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일 책이 ‘지식의 보고’로 전해지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무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시대다. 그러나 전영애는 아직도 부러 무거운 책을 쌓아놓고 한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한다. 괴테가 60년 동안 쓴 『파우스트』를, 그는 45년을 두고 읽었다.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나중에는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두었다. 천천히 번역까지 해가며 읽은 책 한 권 한 권이, 그에게는 매번 하나의 세계였다. 전영애는 “세상 무엇이든 더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의 종말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먼 옛날의 위인으로서의 괴테보다 늘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열렬히 사랑하며 “해처럼 맑게” 살았던 친숙한 한 사람과 마주앉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