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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1 컨테이너선에서의 만남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2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혼돈 앤드루 솔로몬, 『부모와 다른 아이들』 3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인터뷰 후지와라 신야, 『동양기행』 4 안으로부터의 이야기 이시무레 미치코, 『신들의 마을』 5 결례를 줄이려는 노력 헨미 요, 『먹는 인간』 6 슬픔이 형태를 이룰 때까지 노다 마사아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7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8 이해, 혹은 찾아가기 모이세스 코프먼·텍토닉 시어터 프로젝트, 『래러미 프로젝트』 9 어둠을 바라보는 일 제임스 엘로이, 『내 어둠의 근원』 10 온전한 이야기의 희망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11 떠나온 자들의 세계 W. G. 제발트, 『이민자들』 12 우리는 남이다 엠마뉘엘 카레르, 『적』 13 타인의 탄생 207 최현숙, 『할매의 탄생』 에필로그 |
金玄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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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고무나무 농장과 1차 가공 공장을 갔고, 슬로바키아의 운동화 공장을 갔으며, 부산 신항을 촬영했다. 그리고 홍콩에서 출발하는 컨테이너선을 촬영했다. 네 곳에서 몸으로 일하고 있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 사투리와, 통역자가 힘들어한 키나발루산 일대 원주민의 말레이어 사투리, 통역자를 찾기도 힘들었던 슬로바키아어, 미얀마인들이 쓰는 영어로 전해지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온전히 담고 싶었다.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정의는 그대로 글쓰기의 한 장르로서 논픽션에도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이러한 정의가 적용된 논픽션의 고전이다. --- p.11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에서 格에는 ‘대적하다, 부딪치다’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인터뷰는 의미가 있다. 같은 格 자가 격투(格鬪)에도 쓰이는 것을 보면, 그것은 몸의 부딪침을 전제로 하는 동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격물치지를 ‘사물에 부딪쳐 그 이치를 아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후지와라 신야의 글은 그러한 격물치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본보기다. 부딪는 행위, 부딪침을 통해 상대를 알아 가는 것은 글이 아니라 몸이다. 글은 그 몸의 경험을 옮겨 낼 뿐이다. --- p.48~49 깊이 있는 성찰과 불필요한 번민은 어디서 나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내 밖을 묘사하는 언어와 내 안을 설명하는 언어의 차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점점, 나의 내면을 설명하는 언어보다는 내 바깥의 세계를 묘사하는 언어 쪽으로 기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논픽션이다. --- p.59 그는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첫 커밍아웃을 아내에게 했습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순간 70여 명이 모인 공간에 정적이 흘렀다. 보통은 커밍아웃한 자녀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조언해 주었던 경험 많은 부모들도 그 사람에겐 해 줄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들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는 아내와 길게 이야기했고, “계속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해외에 나가서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섣불리 조언하지 않고, 모두가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그 시간의 집중된 분위기가 좋았다. 그이는 흥분하지도 않고, 유창하지도 않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조용한 시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전하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집중’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시간 동안에는 이야기를 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위안을 얻는다. --- p.74~75 S 씨의 슬픔은 어떤 형태를 이루어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 그것도 부모의 이해를 받지 못해 자살한 자식을 둔 부모 당사자의 후회 같은 것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거의 육체적인 감각에 가까울 정도의 감정이라면 타인이 머리로 ‘안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전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어떤 감정은 온전히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게 남겨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S 씨가 아들의 무덤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때 카메라를 멀리 물려 뒤에서 찍었고, 인터뷰 중간중간에 울음이 터져 나오면 촬영을 끊고 당사자가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카메라를 돌렸다. 정답을 전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정답이 아닌 것을 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할까. --- p.108~109 내가 모르는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만 정해 놓고 시작해도 크게 도움이 된다. 또한 상대에 따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정도는 사전에 공부하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정한 그날의 원칙이 극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도합 열 시간 가까이 네 커플과 진행한 인터뷰 촬영은 그해에 했던 촬영 중에서 가장 유쾌했다. --- p.116 2019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네 쌍의 커플 같은 이들의 이야기나 『언더그라운드』에 등장하는 일본 시민들의 이야기, 특정 집단으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많이 나온다면 그들이 속한 집단(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2019년의 한국 장애인’이고, 하루키의 책에서는 ‘1990년대 중반의 일본 시민’이다.)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들이 훨씬 성숙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그 속도는 느리겠지만, 그 아쉬움은 다른 문제다. 그러니 우선은,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끊임없이 개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 p.127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것이 인터뷰 기술이기도 하다. 물론 여러 가지 ‘스킬’을 배울 수는 있고, 나 역시 오랜 기간 인터뷰를 하며 그런 스킬 몇은 익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진심은 스킬 따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터뷰 대상을 만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인터뷰 촬영을 가장 기대하기도 한다. 날것으로서 사람의 목소리가 그 어떤 해석보다 힘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다. --- p.128~129 “피디님은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나의 맥락을 묻는 질문이었다.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동생분이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매력을 보여 주고 싶고, 언니분이 애쓰시는 모습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답이 언니가 바라던 대답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방송을 마친 언니가 “그게 정답이잖아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직 누군가의 삶의 세세한 면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당신의 삶은 이러이러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라고 추측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단편적으로 노출된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알아보았다면, 그리하여 그의 삶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우선은 그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그때까지의 나의 이야기, 그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나의 맥락은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 p.136~137 이해의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대상의 위치에 서 보는 것이 이해다. 그것은 위치의 이동을 전제하는 행위이고 기존의 위치, 즉 나의 맥락을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해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때로 그렇게 자리를 이동하고 나면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남발하는 이해가,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전하는 이야기나 행동이 공허한 이유다. --- p.139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고 나면 조금 더 타인의 기준, 혹은 그의 입장에 맞게 나를 조정하는 과정이 따른다. 말을 할 때 “좀 크게 얘기”해야 하는 상대가 있고, 어떤 단어는 쓰지 말아야 할 상대가 있고, 때론 아예 그가 마음을 열 때까지, 나를 신뢰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상대도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릴 만큼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혹은 그럴 필요가 내 쪽에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당신을 해칠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것뿐이다. --- p.211 『할매의 탄생』에서 할머니들이 사투리로 풀어놓은 구술을 표준어로 바꾸지 않은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들의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들의 언어를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 사투리가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만큼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정이었다. --- p.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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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김연수 작가 추천!
“우리를 버림으로써 우리가 탄생하는 자리에 이 귀한 책이 놓여 있다.” 삶의 풍경을 바꾸어 내는 듣기와 읽기 김현우 피디의 에세이는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할 때 우리가 된다는 걸, 그러니까 차이에서 우리가 자연스레 발생한다는 걸 문득문득 내내 일깨운다. 우리를 버림으로써 우리가 탄생하는 자리에 이 귀한 책 『타인을 듣는 시간』이 놓여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타인을 만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우리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김숨(소설가) 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즉답이 아니라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서다. 답을 구하지 못한 질문은 방황처럼 보이겠지만, 그 자체가 방향이다. 그 방향을 찾기 위해 저자는 신발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학교폭력 가해자 등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틈틈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담은 논픽션을 읽는다. 이 신중하고 집요하면서도 인내심으로 가득한 문장은 논픽션의 거친 세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질문이다. ―김연수(소설가) 타인의 이야기를 전해 온 다큐멘터리 피디가 탐색하는 경청의 힘 감염병 위기가 부추긴 변화 가운데 타자, 소수자에 대한 만연한 혐오와 배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한편 디지털 경제는 모두에게 직접 말하고 쓰고 방송하는 콘텐츠 창작자가 되기를 권장한다. 이런 사회에서 듣고 읽고 바라보는 행위의 의미와 가치는 빠르게 퇴색한다. 말하는 법을 다루는 이야기가 넘쳐 나는 데 비해, 듣는 방법과 태도를 논하는 이야기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이렇듯 공존, 포용, 다양성 같은 가치가 퇴행하는 때, ‘어떻게 들을지’에 관한 밀도 있는 성찰을 담고 있는 『타인을 듣는 시간』은 시의적절하게 도착한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저자가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학교폭력 가해자 등 다양한 타인들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아가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전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인 동시에, 13편의 논픽션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맥락을 기록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서평기다. 현대의 고전이 된 오웰의 르포부터 현지인의 삶으로 파고드는 여행기, 참사 피해자 및 유족의 삶과 투쟁의 기록, 구술생애사 작업,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는 글까지, 다채롭고 독특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또 이 책은 ‘잘 듣기 위해’ 타인들의 현장을 찾아가 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며 자신의 지평을 넓혀 가는 특별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갈래의 글감을 긴밀하게 엮어 내는 글쓰기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태도나 재현 방식을 집요하게 고민하고 탐색하면서 차이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감각을 예리하게 일깨운다. 저자 김현우는 또한 존 버거, 리베카 솔닛, 레이철 커스크, 스티븐 킹 등의 글을 옮겨 온 번역가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에서도 알 수 있는 언어에 대한 그의 섬세한 감각은 이 책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익혀 온 다른 세상에 대한 “몸의 감각, 몸의 경험”과 만난다. 글과 영상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의 성실함, 섣부른 공감과 연대에 대한 날 선 문제의식, 예의와 진심을 다하는 자세는 그 만남의 결과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경청의 힘과 듣는 이의 윤리에 관한 저자의 사유가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다. 내 ‘안’이 아니라 ‘바깥’을 향하는 언어, 논픽션의 재발견 『타인을 듣는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쓸모는 다양한 논픽션(또는 논픽션의 속성을 지닌 책)의 매력과 의의를 새롭게 발견해 내는 데 있다. 저자는 논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이라는 간명한 문구로 정의한다. 그리고 “내 내면을 설명하는 언어”와 “내 바깥의 세계를 묘사하는 언어”의 차이를 짚으며, 바깥을 향하는 언어로 구성된 논픽션에서 깊이 있는 성찰을 건져 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논픽션들은 공통적으로 ‘차이’에 섬세한 언어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저자 김현우는 차이 나는 경험, ‘정상’에서 소외되어 온 정체성이 비로소 가시화되고, 그렇게 이해와 인정을 위한 초석이 마련될 수 있음을 밝힌다. 예컨대 숫자, ‘통계 단위’가 아닌 각자의 이름과 ‘느낌’을 가진 광부 개개인에 주목하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집’이나 ‘자유’ 같은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과 감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그럴 때 하층민을 위한 주거 정책의 한계 역시 보이게 된다. 또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다루면서는, 차이를 외면하거나 무화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나의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타인을 인정할 때 연대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나아가 이런 사례를 통해 차이에 대한 섬세한 인식 없이 설익게 ‘우리’를 명명하고 ‘연대’를 꺼낼 때, 외려 서로의 다름을 지워 버리는 결과가 벌어진다는 것을 짚어 낸다. 또 저자는 논픽션들에서 타인의 일상을 충분히 내 몸과 감각으로 함께한 후의 소통, 타인에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의 중요성을 읽어낸다. 한 대의 카메라만을 들고 현지인들이 사는 곳으로 곧장 들어가는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과 나란히, 미처 인터뷰이의 삶의 환경을 충분히 겪어 “몸을 준비”하기 전에 진행한 인터뷰의 실패를 고백한다. 이어서,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사회적 사건을 자신의 “사적인 일”이라 표현할 만큼 오래 공동체에 머물며 사건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텍스트 『신들의 마을』과 함께,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가족들을 긴 시간 만나며 “마음만으로는 다 준비할 수 없는” 타자와의 마주침에 준비되어 갔던 과정을 소개한다. 혐오범죄가 일어난 도시를 직접 찾아가 구성원들을 1년간 인터뷰해 그들의 말만으로 희곡을 만든 『래러미 프로젝트』, 그리고 타인의 삶을 듣기 전에 추측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장혜영 씨와의 다큐멘터리 작업이 성사될 수 있었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이처럼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지해 나가고, 타인의 삶을 몸으로 겪어 가는 작업들이 집단의 서사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포착해 낸다는 점에서도 논픽션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나와 당신의 성장을 위한 청자의 윤리 이 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저자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타인에게 질문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윤리를 길어 올린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논픽션을 읽으며 축적한 그 내용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제시되어 타인의 말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무엇을 하겠다.’보다 ‘무엇을 하지 않겠다.’를 정해 놓고 시작하면 도움이 된다. 무엇을 하면 안 될지를 알기 위해 사전에 공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을 장시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극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른 이의 삶을 재단하지 않기 위해 상대의 디테일을 최대한 많이 모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또한 쉬운 이해와 공감, 감정이입을 경계해야 한다. 이를테면 출연을 망설이는 상대 앞에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삶에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신뢰를 얻으려면 기다림과 자제의 시간이 필수적인데, 그 시간은 타인의 기준과 입장에 맞게 나를 조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 타인에게도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늘 유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타인을 듣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이해의 영역과 지평이 넓어지고 결국 개개인이 성장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삶’의 테두리를 깨고 나올 때 타인과 내가 서로의 세계에서 새로 ‘탄생’하는 선물 같은 순간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말 걺으로써 생겨나는 청자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듣기의 윤리학을 배우고자 할 때, 타자에 대한 존중과 ‘우리’의 공존이라는 과제가 달성될 수 있고,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성숙시킬 수 있다고. 이 책처럼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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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피디의 에세이는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할 때 우리가 된다는 걸, 그러니까 차이에서 우리가 자연스레 발생한다는 걸 문득문득 내내 일깨운다. 우리를 버림으로써 우리가 탄생하는 자리에 이 귀한 책 『타인을 듣는 시간』이 놓여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타인을 만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우리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 김숨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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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즉답이 아니라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서다. 답을 구하지 못한 질문은 방황처럼 보이겠지만, 그 자체가 방향이다. 그 방향을 찾기 위해 저자는 신발 공장 노동자,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학교폭력 가해자 등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틈틈이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담은 논픽션을 읽는다.
그러므로 이 신중하고 집요하면서도 인내심으로 가득한 문장은 그의 것이기도 하고 그가 읽은 논픽션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하는 일의 것이기도 하며, 논픽션의 거친 세계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 김연수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