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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새로 펴내며
그날의 초록 삭풍 불(1973년 발표 당시 제목 '보리밭') 주례기 운주 동자상 폭염 낙월도 황구의 비명 달무리 배밭굴 청무밭 작가 후기(1975) 해설 황구의 시간, 현실을 껴안은 소설의 윤리 / 양윤의(2007) |
호 : 하동(河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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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용주골에서 살래믄 말야, 첫때루 안면몰수하고 둘때루 예의사절하구, 세때루 악발교육해야 사능 게야. 이 흉터 좀 보라우! 손주 볼 나이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좀 보라우. 미치가서... 하여튼지 이놈의 용주골, 이거 머이 못돼두 단단히 못된 건데 말이디...' 주인은 땡볕만큼 더운 한숨을 후우―내뱉고는 다시 야산의 무성한 수풀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주인의 얼굴은 나이보다도 훨씬 겉늙어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앉아 이 겉늙어버린 주인이 내뱉은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안면몰수', '예의사절', '악발교육'... 이렇게 삭막한 땅속에서 용케도 숨줄을 잇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주인의 말대로라면 그야말로 살맛 없는 말세의 끝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헛기침을 한두 차례 쏟아내고 일어났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가 하는 긍지였다. 천성의 탓도 있겠지만, 나는 '평화'나 '행복'이라는 낱말에 대해 별로 크낙한 욕심이 없는 편이었다. 순조로운 일상의 전부는 나에게 있어 곧 평화의 전부였다. 골목 안을 채운 아이들의 함성. 개구쟁이 자식을 부르러 나온 머리가 부숭부숭한 아낙의 화장 않은 얼굴. 정결한 여인의 긴치마. 조강지처의 촌스러운 팔자걸음. 이백십 원이면 살 수 있는 여름 구장(球場)의 열띤 함성들. 닫힌 비원 앞의 어지러운 배드민턴. 합창하는 어린애들의 서툰 불협화음. 그리고 틀림으로써 다시 한 번 기대케 해주는 관상대의 일기예보―. 이런 것들은 하냥 질기게도 평화를 팔고 있었으며, 나는 시시한 좌변기를 타고 앉아서도 쉽게 이런 평화들을 사고 경험했던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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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 세계와 도시 밑바닥 인생의 비극, 당대 현실을 비추다
몇 년째 흉어에 시달리는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하는 중편 〈낙월도〉는 첫 번째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적 궁핍과 가부장적 남성 권력의 횡포로 인해 고통받는 낙월도 여인들의 삶을 통해 민중의 비극적 운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작가가 능숙하게 구사하는 전라도 토속 방언은 바닷가 여인들의 고단한 삶을 실감 나게 재현한다. 표제작인 〈황구의 비명〉등에 와서 작가의 시선은 1970년대 산업화, 대화의 그늘인 도시 변두리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하류 인생으로 옮겨와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현실의 모순을 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려낸다. 소시민의 시선을 통해 양공주의 삶을 묘사한〈황구의 비명〉은 외세의 제국주의적인 자본의 위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속물적인 소시민의 욕망을 묘사하는 가운데 당대의 현실을 서글프게 비유하고 있다. 시리즈 소개 한국 소설의 황금기로 꼽히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출간됐던 주요 작가들의 첫 작품집들을 복원한 [소설 르네상스] 시리즈는 작가가 앞으로 전개해나갈 작품 세계와 문학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독자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작품집들을 젊은 평론가의 새로운 해설을 덧붙여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