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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류학자와 기록학자의 세월호 일기
1부 참사 그리고 특별법을 향한 투쟁 (2014. 4. ~ 2014. 11.) 2014년 4월 24일│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리본 나눔 2014년 4월 28일│기록 회의 2014년 4월 29일│비정규직 선장의 무책임 2014년 5월 1일│기억하겠습니다, 애쓰겠습니다, 약속합니다 2014년 5월 2일│성실한 수업 2014년 5월 2일│안산트라우마센터 첫 방문, 숫자화된 희생자들 2014년 5월 9일│시민단체와 첫 만남 2014년 5월 11일│한 어머니의 자살 기도 2014년 5월 13일│진도행 2014년 5월 16일│정부 합동분향소 천막 2014년 5월 17일│시민아카이브의 희망 2014년 5월 19일│박근혜 국민 담화 2014년 5월 25일│두 남자의 슬픈 우정 2014년 5월 28일│학자의 길 2014년 6월 5일│6.4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 2014년 6월 9일│프란치스코회관 모임 2014년 6월 10일│안산, 그 ‘검은 기운’ 2014년 6월 15일│참사 이후 심리지원 유감 2014년 6월 26일│단원고 특별위원회 그리고 화랑부동산 2014년 6월 29일│장관의 저 걸음걸이는 가짜다 2014년 7월 1일│피해자 심리지원에 대한 자문 간담회 2014년 7월 12일│화성휴게소 세월호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2014년 7월 14일│세월호특별법 위기 2014년 7월 23일│국회 농성장 2014년 7월 24일│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100일 시청 앞 행진 2014년 7월 25일│세월호 추모 인류학 간담회 2014년 8월 7일│오랜만에 진도에서 2014년 8월 10일│반별 모임과 농성 공동체 2018년 8월 12일│단식보다 소음이 더 힘들다 2014년 8월 15일│교육청의 선박 여행 권고 2014년 8월 16일│유민 아빠 2014년 8월 17일│단식을 풀었다 2014년 8월 21일│기억저장소 개소 2014년 9월 17일│세 가지 비판 2014년 9월 20일│온마음센터 의료전문가들이 믿는 ‘사실’ 2014년 9월 21일│‘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대한 유가족협의회 대응 2014년 10월 17일 ㅣ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발표 2014년 11월 5일 ㅣ청운동 철수, “대통령에게 미련 버렸다” 2부 끝없는 공격 (2014. 11. ~ 2015. 7.) 2014년 11월 7일│세월호 3법 국회 본회의 통과 2014년 11월 11일│심리치유센터 이웃, 정혜신 박사를 만나다 2014년 12월 9일│예지 생일잔치가 가르쳐 준 것 2014년 12월 31일│4.16 기억저장소의 진화 2015년 1월 9일│보상지원특별법 유감 2015년 1월 16일│추모관이 된 교실 2015년 2월 14일│팽목에 도착한 도보 행진단 2015년 4월 1일│배·보상 문자 공격 2015년 4월 2일│칼을 들이댄 자들 2015년 4월 3일│아이들의 방 2015년 4월 4일│영정을 들고 행진한 부모들 2015년 4월 7일│세월호 1주기 신문기고 2015년 4월 11일│ ‘기억함’을 매달며 2015년 4월 14일│서울대 세월호 1주기 추모문화제 2015년 4월 17일│어제, 세월호 참사 1주기 2015년 4월 18일│물대포 2015년 4월 27일│세월호 엄마는 담배 피우면 안 되나 2015년 5월 7일│사회과학대 심포지엄 2015년 5월 10일│고잔동, 하늘땅별 텃밭작업 2015년 5월 26일│네버엔딩 스토리 0416 2015년 5월 27일│찰흙으로 만든 지붕 없는 집 2015년 6월 2일│구술팀 발족 2015년 6월 12일│김지영 감독 2015년 6월 22일│유가족 엄마들의 책읽기 모임 2015년 6월 23일│김 교수의 폭탄 발언 2015년 6월 24일│기억저장소 실무 개입 중단 2015년 6월 30일│돈 없이는 아무래도 어렵다는 연구자들 2015년 7월 2일│기억저장소 운영회의 2015년 7월 3일│지성 아빠, “이것은 학살입니다” 2015년 7월 6일│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2015년 7월 7일│전시관 ‘밥식구’ 2015년 7월 7일│마지막 화요일의 인수인계 2015년 7월 9일│전교조와 기억 모으기 회의 2015년 7월 12일│기억과 약속의 길에 참여하다 2015년 7월 16일│결국 미국행 비행기를 타다 3부 진상규명은 가능할까 (2015. 7. ~ 2016. 9.) 2015년 7월 17일│안종철 박사 2015년 7월 24일│이재정 교육감의 사람들 2015년 7월 31일│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2015년 8월 27일│단원고 특별위원회 회의 2015년 8월 28일│단원고 교실 문건에 관한 의견 2015년 9월 1일│동거차도 2015년 9월 4일│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눈물 2015년 9월 16일│아이들의 ‘빛’과 ‘자유’를 생각하다 2015년 9월 18일│전문가들의 영역 싸움 2015년 9월 19일│단원고 특별위원회 회의 종결 2015년 9월 23일│설명회?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2015년 9월 24일│국가배상 소송 2015년 10월 6일│조한혜정 선생님으로부터의 편지 2015년 10월 23일│김 국장과의 통화 2015년 10월 26일│밥값식당 스파게티 2015년 10월 31일│ ‘엄마와 함께 하장’ 2015년 11월 14일│국가 폭력 2015년 11월 18일│단원고 교실 유감 2015년 12월 16일│동수 아빠와 김동수 씨 그리고 1차 청문회 2016년 1월 27일│글쓰기 2016년 1월 30일│아름다움이 승리하는 날 2016년 2월 7일│번개 2016년 2월 28일│동거차도의 10반 엄마들 2016년 3월 29일│2차 청문회 2016년 4월 1일│무능자의 분노 2016년 4월 2일│시애틀에서 세월호에 대해 발표하다 2016년 4월 16일│경향신문 70인과의 동행, 팽목 순례 2016년 5월 11일│짓밟힌 단원고 2학년 교실 2016년 6월 18일│한 사람의 죽음을 가벼이 보지 마라 2016년 6월 25일│특별조사위 강제 종료, 농성 시작 2016년 6월 30일│416 안산시민연대 창립총회 합창 2016년 7월 20일│416 단원고 약전 북콘서트 2016년 7월 26일│이건범, 어느 별이 되었을까 2016년 7월 26일│다시 찾은 기억저장소 운영위원회 2016년 7월 27일│기억저장소 소장, 도언 엄마 2016년 8월 20일│눈물의 이별, 기억교실 이전식 2016년 9월 3일│이게 청문회인가, 보나의 눈물 2016년 9월 25일│백남기 농민의 죽음 4부 인양 또 인양 (2016. 10. ~ 2017. 3.) 2016년 10월 14일│김종철 기자와 기획기사 논의 2016년 10월 16일│진상규명 국민조사위원회 제안을 보고 2016년 10월 19일│추모 자문, 성빈 엄마 2016년 10월 20일│고통스러운 시작, 유가족 중심의 기억저장소 2016년 10월 24일│호성 엄마 구술 2016년 10월 29일│최순실 기록 유출 _ 18 2016년 11월 1일│가족협의회의 헌정 파탄 시국선언 _ 18 2016년 11월 8일│하야한다고 좋아질까 2016년 11월 18일│금요일엔 함께 하렴 2016년 11월 21일│구술기록집 열람 개시 2016년 11월 22일│손배 첫 변론 2016년 11월 26일│박근혜 하야 집회 2016년 12월 2일│입 닥쳐 2016년 12월 3일│청와대 행진 2016년 12월 10일│7차 촛불 무대, 인간의 노래 2016년 12월 13일│기억저장소 정관 개정 2016년 12월 16일│SBS 류란 기자와 만남 2016년 12월 19일│황병주 잠수사 구술 2017년 1월 4일│성미산 마을극장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2017년 2월 9일│기억 육필시 2017년 2월 24일│추모시설 입지 타당성 조사 프로젝트 2017년 3월 9일│반올림, 삼성본사 앞에서의 노래 2017년 3월 10일│헌법재판소 박근혜 탄핵 인용 선고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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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침몰과 구조 실패의 영역으로 한정된다면 우리의 일기는 그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가 그 이상의, 이 사회 곳곳에 웅크리고 있던 질곡과 민낯을 드러낸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
또한 참사는 2014년 4월에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유가족, 생존자, 잠수사, 공무원, 정치인, 학교 교사, 현장 활동가, 의료전문가, 학자, 나아가 전국 곳곳의 국민이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며 새롭게 관계 맺도록 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 방식이 긍정적인 방식이든 혹은 부정적인 방식이든 말이다. 이 일기는 그러한 변화와 움직임의 아주 작은 부분을 기록하고 보고하는 데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 자료들이 조금이나마 참사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프롤로그」중에서 “여러분들은 내가, 선생님이 뭐라고 한다고, 그 말대로 따르지 마세요.” ---「2014년 4월 24일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리본 나눔」중에서 무책임한 개인의 태도를 어찌 비정규직이나 신자유주의의 문제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까? ---「2014년 4월 29일 비정규직 선장의 무책임」중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지식인으로서, 도대체 이 나라의 무엇을 제대로 감독하거나 책임지거나 바꾸어왔는가? ---「2014년 5월 1일 기억하겠습니다, 애쓰겠습니다, 약속합니다」중에서 국가에게 사람들은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 통계적 자료에 불과했다. ---「2014년 5월 2일 안산트라우마센터 첫 방문, 숫자화된 희생자들」중에서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확신이 든다.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잊히는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사회적 기억을 유지하고 확산하는 것만이 왜곡된 구조까지 치유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다. ---「2014년 5월 17일 시민아카이브의 희망」중에서 학자의 사회 참여란 무엇일까? 현장을 조사하고 기록을 모으며, 그 안에 알알이 박힌 마음들을 글을 통해 모두와 나누는 일 아닐까…. 내 몸에 붙은 ‘전문성’과 ‘이론적 틀’들은 현상의 배면에 자리한 인식과 지층을 파열시키는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유용한 도구들일 뿐이다. 이곳 진도체육관의 울림에 귀 기울이되 학자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2014년 5월 28일 학자의 길」중에서 내가 생각할 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 중 한 가지는 최소한 자신이 그곳에 속해 있다는 귀속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심리적인 지지이다. 만일 내가 그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없다면, 그곳은 결코 그 사람에게 ‘공동체’로 인식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지리적인 공간의 공유를 공동체 혹은 귀속감의 일차적인 요인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보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8월 10일 반별 모임과 농성 공동체」중에서 인류학에서는 언젠가부터 진실을 소문자에 복수형인 ‘truths’로 사용해왔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기보다는 사람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양한 진실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발표에서 대문자 ‘Truth’를 사용했으며, 실제로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단지 우리는 그 ‘대문자 진실’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인류학적 관점과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것을 믿었다. ---「2014년 10월 17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발표」중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유가족이나 시민 세력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하늘에 있는 아이들은 이러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여 4.16운동이 현재 정권과의 정치적 싸움으로 환원되어 버리지 않도록, 또는 오랜 기간 습관화된 운동의 관성 속에 파묻혀버리지 않도록, 나는 늘 억울하게 세상과 작별해야 했던 그 아이들을 먼저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래야만 4.16운동은 그 이전과는 다른 변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2015년 1월 16일 추모관이 된 교실」중에서 세월호 참사가 정말 국가 혹은 정부만의 문제인 것일까?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일상이 변화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015년 6월 22일 유가족 엄마들의 책 읽기 모임」중에서 변화란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그렇지만 노력이 쌓여야 언젠가 이루어지는 것이 변화이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6년 8월 20일 눈물의 이별, 기억교실 이전식」중에서 그날 사람들 모두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지만 세월호는 대중들에게 점점 잊히고 있다. 유가족들은 단 한 번의 승리 경험 없이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가고, 이제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것 같다. ---「2016년 10월 14일 김종철 기자와 기획기사 논의」중에서 4.16 기억저장소에 열람하는 장소를 두어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오면 본인의 실명과 소속을 적어두고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복사나 외부 반출을 금지하고, 혹시라도 온라인상에 내용이 왜곡되어 공개되거나 맥락과 상관없이 일부만 발췌돼 오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 궁금하다. 그간 부지런히 해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개 시기가 너무 늦었고, 또 공개하는 방식이 너무 편협하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2016년 11월 21일 구술기록집 열람 개시」중에서 무엇보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는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오보는 이미 배가 거의 침몰하고 구조가 불가능한 시점에 나왔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구조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가 팽목항으로 내려가던 버스 안의 부모들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대하고 가슴 졸이게 했는지 생각하면 잘못의 크기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월호를 겪으며 상처받은 기자들이 만들어나갈 앞으로의 언론은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2016년 12월 16일 SBS 류란 기자와의 만남」중에서 2017년 3월 이후 지금까지 이현정 교수는 트라우마센터인 안산 온마음센터의 자문위원장으로서, 나는 기억저장소의 운영위원으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을 냈다고 세월호 참사와 나의 삶의 관계가 마무리될 수는 없다. 나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하며 나의 삶을 살아내야 하니, 앞으로도 일상 전부를 세월호 참사 관련 일에 투여하는 것이 답은 아니겠지.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자리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제대로 알게 해준 세상과의 대면 방식 역시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에필로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