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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은 늘 발목을 잡는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방법은 없다.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힌다. 화해와 용서는 추상적인 단어일 뿐이다. 실재하지 않고 실재할 수 없는. 속절없이 당해야만 했던 사람에겐 기회도, 선택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영원히 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 p.46 이날까지 솔직하지 못했다는 게 가은을 내내 괴롭혔다. 이유가 있었다. 규선이 냉동되는 사람들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몇 번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서서히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때마다 규선은 너무도 단호했다. --- p.83 음식 냄새가 사람 사는 냄새라고 착각하는 거 같다. 음식 냄새는 그냥 음식 냄새일 뿐이다. 아무도 먹지 않을 음식이라면 더더욱. 엄마는 이 어색한 공기가 시간이 지나면 환기될 거라고 믿었다. --- p.96 누가 지키고 서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꼼짝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했다. 빗방울에 살갗이 찔려 온몸이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벌을 받는 중이니까. --- p.99 미리 알아서 뭐 할 건데? 네가 미리 알든 모르든 어차피 전부 일어날 일이야. 기다리다 보면 저절로 다 알게 된다고. 살아만 있다면 말이야. 뭘 바꾸고 싶어 그러는 건가? 머리가 나쁜 거야 순진한 거야? 사람은 미래를 바꿀 수 없어. --- p.115 아이들을 위해 그런 거였는데. 흔하게 이뤄진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삶을 십칠 년이나 멈춘다는 것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 p.146 아버지. 기뻐해야 하는데, 아버지를 냉동시키지 않아도 되고, 지금 당장 수술할 수 있다니까 기뻐서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데, 나 너무 무서워. 무서워. 돈 때문에 무서워. --- p.228 본인이 살아갈 시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에선 당연한 일인 걸까. 대체 소수는 어느 쪽인 걸까. 다수라고 믿는 쪽이 실은 소수였던 게 아닐까. --- p.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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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을 앞둔 냉동인간 B-17903. 그의 담당인 규선은 그가 냉동된 사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꿈에서 만났던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냉동되는 것을 선택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남들이 선택하는 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는 지금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규선과의 결혼을 앞둔 가은은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한다. 실력은 출중할지라도 그녀가 하는 일은 잡다한 심부름이다. 규선은 그녀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 까닭이다. 결혼하기 전에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알리지 못했다. 가능하면 뒤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태는 제보를 받았다. 그래서 취재하고 싶지만, 국장을 그를 만류한다. 그냥 묻으라는 것이다. 이미 묻혀있던 사건이라는 이유로 국장은 더는 사건화 시키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은태는 국장을 존경했다. 그의 말을 따르고 싶었지만,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더 컸다. 일단 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은가. 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냉동’이라는 소재를 둘러싸고 각자의 입장과 사건이 반복되어 일어난다. 별개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만, 인물들은 서로의 인생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연결되어 있다. 모든 관계를 다 파악했다고 느낄 무렵 마지막 반전이 기다릴 것이다. B-17903 해동되다 냉동 전문클리닉에 근무하고 있는 규선은 인간 냉동으로 생을 멈추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런 그에게 B-17903은 특별히 더 한심해 보였다. B-17903의 해동을 앞두고 비밀문서인 냉동 사유를 보고 놀라게 된다. 그는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냉동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도 자그마치 50년이나. 그가 해동된 이후에 그녀를 만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던 것일까. 냉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그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유다. “눈을 뜨면 알 수 있어요. 이건 그냥 꿈이다, 이건 예지몽이다. 알아맞힐 수 있다고요.” _본문 중에서 예지몽을 꾸는 한 남자가 있다. 졸업을 유예했다. 같이 공부한 동기들은 졸업하고 취직했지만, 자신만 남았다. 아니 자신과 비슷한 동기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녀가 좋았다. 친해지고 싶었고 그녀도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랐다.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꿈을 꿨다. 그녀가 공항으로 가는 꿈이었다. 자신의 꿈은 가끔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 꿈을 미끼로 그녀와 가까워졌고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 아이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그는 도피처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냉동인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녀를 남겨두고 냉동되는 것을 선택했고 이번 삶을 잠시 중지시켰다. 50년 후를 기다리며. 꿈은 실현된다. 실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대로 둘 수가 없다. 바꾸어야만 한다.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녀를 되찾아야만 한다. 오십 년을 기다렸다. 오십 년을. _ 본문 중에서 그에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결혼을 앞둔 가은은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자신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아니 그렇게 집중해서 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지만 가은은 싫었다. 자신이 냉동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에게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냉동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를 생각하니 자신이 냉동되었었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어려웠다. 리스트에도 적었다. 그에게 말할 것.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더 힘들어졌다. 결혼하기 전에는 말해야겠지만 그가 결혼을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을 만들어놓은 다음에 말하고 싶었다. 가은이 원하는 건 뭘까. 공동명의가 싫어서 저러는 걸까. 그 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그도 아니면 규선이 싫증 나기라도 한 걸까. _본문 중에서 냉동인간 그리고 묻힌 사건들 기자인 은태는 사건을 파내고 싶다. 보도를 하고 싶다. 묻힌 사건이었다. 누군가 파헤쳐 나올만하면 어디선가 또 묻어버리는 그런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국장은 그에게 경고했다. 아이가 없어서 이 사건에 더 매달리는 것이냐고도 물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쉬쉬하는 사건이기에 더 매달렸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도록 놔두어도 괜찮을까.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는 게 맞을까. _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