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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할 미래
1 _ 김종욱 ;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즐겨라 간단한 미래 휠체어로 하는 워킹 연습 저러다 말겠지 롤 모델이 없을 때 2 _ 김완혁 ; 방송에서 편집된 말들 기회의 땅 서울로 단숨에 대단한 사람이 되다 정부 지원 사업은 어려워 지하철만 타면 신경전 춤이 정말 좋아서 하는 걸까 모든 동정이 나쁜 건 아니다 3 _ 이찬호 ; 잃은 것보다 얻은 것에 집중할 때 감각의 절반이 사라지다 피사체의 자격 3대 400에서 4킬로그램으로 장애인과 눈이 마주친다면 4 _ 김종민 ; 현실을 영화처럼 만드는 방법 두 시간의 마법이 펼쳐진 뒤 충무로에 발을 들이다 장애인 사위는 결사 반대일세 나의 첫 VIP 시사회 5 _ 서영채 ; 지금 멋있는 엄마가 돼야 하는 이유 불공평 박람회 표정을 읽는 마음의 기술 8년의 유랑, 다시 모델로 예의 바른 만큼 차갑다 6 _ 고연수 ; 언제 누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모든 일상이 관계로 이루어지다 괜찮다 싶으면 터지는 문제들 날갯짓이 몰고 온 토네이도 삶의 전환점일 필요는 없다 7 _ 고아라 ; 내게 정착한 세 가지 모국어 몸집이 큰 언어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읽다 오프로드, 몽골로 랑그와 파롤의 새로운 규칙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길은 걸을수록 넓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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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장애는 나와 무관한 이야기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닥칠 미래라면 다르다. 아픈 곳을 수술 후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고,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사고 없는 삶을 살았다 해도 시력과 청력이 감퇴하는 등 누구나 노화의 과정을 겪는다. 결국 우리 모두 생에 한 번은 장애를 안고 살다 죽음을 맞이한다.
--- p.14 어릴 적부터 내가 본 장애인의 직업은 늘 정해져 있었다. 주로 공공 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거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다. 나라의 지원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로 바리스타 자격증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나 동네 예쁜 카페에서 일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거다. 바리스타가 된 많은 장애인은 복지관 1층 커피숍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 p.18 한 인터뷰에서 “다른 비보이들이 넘어지면 웃을 수도 있겠는데, 제가 넘어지면 관객 입장에서 난감할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었다. 나는 공연하는 나를 보는 많은 시선들이 진지하다고 느꼈다. 외다리인 나는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단한 장애인이 춤을 춘다’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p.45 극장은 내게 두 시간의 마법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한없는 어둠이 내려앉고 온갖 영화적 상상이 펼쳐진 뒤, 극장을 나오면 세상은 마치 이전에 볼 수 없던 밝은 세계로 바뀌어 있을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이 없고 아무도 변화를 못 느낀다고 하더라도 나만이 느끼는 세상의 변화가 있었다. --- p.76 스무 살이 되기 전 나는 어른들의 삶이 너무 궁금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먹고 살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자리가 넓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농아인에게 제일 어려운 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실 원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농아인은 쉽게 구하지 못한다.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박람회에서 농아인 직업 중 소리와 관련된 직업은 없었다. 몸 관련 직업만 많았다. --- p.100 살아가면서 ‘곧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될 것이니 주의하라!’고 미리 알림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갖게 될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함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그것이 장애라고 생각한다. --- p.116 다른 농인들과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우리는 바닷속에서 수어로 소통했다. 본인의 안전이나 감정은 기본이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수다 수준의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다. 수면 위에선 농인만의 언어인 수어가 물속에 들어가면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함께 사용하는 언어였다. 환경에 따라 언어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그렇게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깨달았다. --- p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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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시각 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는 의료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2008년 첫 판정 이후 다섯 번째 합헌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시각 장애인 안마사 제도는 시각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도하는 한편 착잡했다. 안마라는 일에 매력을 느껴 업으로 택한 시각 장애인이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당 의료법이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여론은 늘상 제기되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원하는 법이라 속 편히 말하기도 어렵다. ‘안마는 시각 장애인만 할 수 있다’는 명제는 ‘시각 장애인은 안마사로 일하면 된다’는 명제로 곧잘 치환되고 끝난다. 우리는 소수자에게 제한된 권리를 쥐여 준 뒤, 그들이 그 이상의 것을 바랄 경우 쉽게 놀란다.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의 장애인은 특정 전형으로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취직해 단순·반복 업무를 맡는다. 최근엔 장애인을 고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늘고 있다. 취지와 이미지만큼이나 성과도 좋다. 그러나 장애인이 주도권을 잡고 일하거나 기업의 목표와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주로 비장애인 CEO가 대변한다. 장애 유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안심은 손쉬운 호의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이다.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도 사치가 아님을 말하는 일곱 명의 장애인 아티스트가 모였다. 현재의 일을 선택한 계기와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을 작가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 사회복지사가 될 뻔한 김종욱은 휠체어 모델이라는 전례 없는 분야를 열고 있다. 모델 이찬호는 피부의 절반 이상이 상처이지만 몸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일을 택했다. 비보이 김완혁은 7년간 홍보, 디자인,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겸하다 프리랜서 비보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화를 이론으로 배운 적 없는 영화감독 김종민은 충무로 영화판의 첫 장애인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제품을 검수하던 서영채는 다시 모델의 길로 돌아왔다. 웹툰 작가 고연수는 사고도, 장애도, 우연히 시작한 만화의 인기에도 여전히 적응 중이다. 어릴 적부터 키워 온 발레리나의 꿈을 이룬 고아라는 이젠 예술인 너머 경영인의 삶을 바라본다. 임플로이(employee)가 아닌 워커(worker)를 고민하는 시대다. 주어진 일이 아닌, 나에게 잘 맞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누군가의 고민은 나의 적성과 능력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누군가의 고민은 그 이상의 의지와 결심을 담보한다. 일곱 명의 이야기가 모든 장애인을 대표하진 않는다. 그들 안에서도 장애를 얻은 계기와 시점에 따라 각자 장애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모든 장애인이 사회에 나와 일해야 하는 것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장애인 인구 260만 명의 수많은 표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군가 걸을 때 넓어진다.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비장애인만의 특권이 아니다. 일하고 싶은 누구나 품고 싶은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