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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
아버지폭력에 맞선 스물넷 여성의 내밀하고 치밀한 지적 통찰
김가을
천년의상상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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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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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진흙탕,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며

1부

유년의 몇 가지 기억들
학습된 무기력
나의 엄마에 대해
진심도 변한다는 슬픈 자각
싫은 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여름과 진형, 동생들에 대해
해와 바람이 전하는 말, 그리고 가스라이팅
폭력의 기원, 학벌제일주의와 사회적 계급을 바라보는 방식

2부

열세 살이 올랐던 슬픈 육교
키에르케고르, 밀, 프롬 그리고 나의 일기장
방향성, 폭력의 반대편으로 가자
관찰자 시점의 탄생
만남과 관계 사이에서 피어난 희망
2018년 12월 26일, 최저기온 영하 7도, 구름 조금
그리고 한 달 뒤, 1월 26일
쉼터에 들어간 날, 생존을 생각하다
‘임시 공간’에서의 생활
회복기, 여러 가지 일들

3부

이것이 보통 사람의 기분이라고?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궁금증, 호기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여름이 글
에필로그 진흙탕 밖으로

감사의 말
도움받은 책들

저자 소개 1

1997년 4월 16일에 태어나서 숫자 4를 좋아한다. 세종 과학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나 인문학 공부와 활동을 더 많이 했다. 소설을 좋아하며 책을 매개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읽기 공간을 갖는 게 꿈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영혼과 호기심을 상징하는 프시케를 좋아한다. 프시케의 어원이 숨과 호흡이라는 점도 좋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 좋다. 스물둘부터 스물넷까지 쓴 글로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라는 책을 얻게 되었다. “더럽고 추하고 검은 기억부터
1997년 4월 16일에 태어나서 숫자 4를 좋아한다. 세종 과학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나 인문학 공부와 활동을 더 많이 했다. 소설을 좋아하며 책을 매개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읽기 공간을 갖는 게 꿈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영혼과 호기심을 상징하는 프시케를 좋아한다. 프시케의 어원이 숨과 호흡이라는 점도 좋다.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 좋다. 스물둘부터 스물넷까지 쓴 글로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라는 책을 얻게 되었다.

“더럽고 추하고 검은 기억부터 슬프고 애틋하고 순수하던 기억까지 다 기억해서 보존하고 싶다. 많은 기억 중에서 보기 좋은 것들만 선별해서 ‘이게 바로 진짜 나야’ 하고 우기고 싶지도 않다. 자기기만, 자기연민, 자기혐오 그 어떤 것에도 매몰되고 싶지 않다. 나는 솔직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50쪽 | 328g | 140*205*20mm
ISBN13
9791190413343

책 속으로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으로 읽었다. 글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이 책은 먼저 지금 우리에 필요한 생생한 고발이다.
--- p.4

나는 ‘아버지폭력’의 피해자다.(‘아버지폭력’은 말 그대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양육 과정에서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모든 폭력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기존의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로는 그 뜻을 정확히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규정한 개념이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빠로부터 맞으면서 자랐고,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폭력을 못 이겨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관련 기관의 도움으로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 들어가 6개월을 보냈고 시설과 제도의 지원을 받아 가해자가 있는 공간으로부터 독립해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내가 집을 나온 것도 아빠가 그간의 폭력에 대해 반성의 의지를 보여준 것도 아직은 모두 하나의 시작일 뿐이지 우리 가족은 지금도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자주 부딪치고 갈등한다.
--- p.8

더럽고 추하고 검은 기억부터 슬프고 애틋하고 순수하던 기억까지 다 기억해서 보존하고 싶다. 많은 기억들 중에서 보기 좋은 것들만 선별해서 ‘이게 바로 진짜 나야’ 하고 우기고 싶지도 않다. 자기기만, 자기연민, 자기혐오 그 어떤 것에도 매몰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솔직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 p.11~12

언어가 통한다고 마음까지 통하는 건 아니다. 같은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말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내가 그때 간절히 바랐던 건 좋은 집도, 좋은 음식도, 많은 돈도 아니고 다만 맞지 않고 사는 안전한 생활이었다.
--- p.30

“가을아 너 좀 웃어.”, “너는 말하는 게 왜 그렇게 힘이 없고 느려?”, “넌 항상 지쳐 보여. 힘들어 보여.” 그런 말을 내게 했을 때 나는 뭐라고 해야 했을까.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겪은 이런저런 일들 때문인 것 같아. 나 어려서부터 많이 맞고, 억압당하고 비난받아 왔거든. 그 시간 동안 만들어진 감정과 생각들이 나의 표정, 말투, 눈빛, 행동에 스며들어 있나 봐.”
이렇게 말을 해야 했던 것일까. 아니. 나는 그냥 그 말을 내뱉는 목소리 앞에서 씁쓸하게 웃고 “그러게.” 하면서 얼버무리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전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 p.31

김현경 작가가 쓴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체벌에 동의한다는 것은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뜻이 되어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하는 순간 모욕은 더 이상 모욕이 아니다. 그것은 의례와 질서의 일부가 된다.’고 한다. 나와 동생들은 폭력에 저항할 힘을 잃고, 폭력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잃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았지만 “당신이 폭력을 쓰는 이유에 동의합니다. 맞을 만한 짓을 했습니다.” 하고 암묵적으로 폭력에 동의하는 것처럼 되었다.
--- p.33

나는 무엇보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아빠가 나와 동생들의 목을 죄어올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다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육교 난간에 서지 않게 하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바뀌는 것이 없더라도 그날그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잊지 않고 꼭 하려고 노력했다. 실어증 걸린 것마냥 말을 잃어버렸는데 던져진 질문들을 천천히 고민하고 그것에 대답을 해가며 아주 천천히 내 언어를 찾아갔다.
--- p.111~112

아빠는 내 눈앞에서 우리를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때리고, 우리는 맞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처럼 맞고 있는데 그런 권리나 의무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사람들처럼 되려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그 속에는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그 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된 건물을 부수듯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사고를 부수고, 재조정하고 새로 내면세계를 짓고 싶었다. ‘폭력이 나쁘다.’라는 말이 내 세상에서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가 필요했다. 나는 지식과 경험, 지혜가 아빠가 휘두르는 폭력에 대응할 방패와 무기가 되어 나를 보호해줄 거라고 믿었다. 아마 그런 것들이 간절하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세상이 무섭고 공포스럽기만 한 곳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를 툭툭 털고 다시 걸어가 볼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면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을 거다.
--- p.112~113

“진형아, 나도 매일 버틸 뿐이야. 네가 집을 나가고 내가 뭘 그렇게 즐거울 일이 있겠어. 그냥 한번 웃고 말면 말았지. 나라도 정신 차리고 미래 생각해야지. 그래야 널 도와줄 수도 있지.”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왜 나랑 같이 불행하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동생을 보고 있는 게 힘들었다. 나 역시 그 순간까지도 한 번도 마음을 편하게 가져본 적이 없다. 나도 매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으로 경계하고 긴장하며 사는데, 더 큰 폭탄을 가지고 사는 존재를 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일기장에 쓴 이런 조각 글도 나의 그런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가족 걱정 말고 내 인생 걱정하고 싶다.
쫓기는 거 싫다. 무서운 거 싫다.
따뜻한 데서 살고 싶다. 진짜.
이제 추운 건 그만해. 나 그냥 돈 걱정할래.
뭐해먹고 살지 그런 거 걱정할래.
그니까 그만 찾아와. 나도 숨 좀 고르고 살고 싶어.
이런 상황에서도 바르게 가는 사람 있으면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없으면 안 되는데
--- p.145~146

싸늘하게 식은 감정과 두려움, 망설임이 혼재된 마음으로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는 손이 계속 떨려왔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칠 것만 같아서 두 손으로 붙들었다. 이 와중에 114를 눌러서 옆에 있던 여름이가 112에 해야 한다며 번호를 교정해주었다. 순간 다소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시죠?”
--- p.151

‘애초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있었나? 행복할 기회가 담긴 선택지라는 게 애초에 우리에게 있었어?
--- p.153

한 사람의 우울과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울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내가 했던 무수한, 그리고 무기력한 질문 중에 있었다. 전보다 강해졌으니, 의식도 성장했으니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어려움이 와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가도 막상 폭력이 닥쳐오면 정신이 공포와 두려움과 흐물흐물해지면서 그냥 쓰러지고만 싶어졌다. 현실이, 나의 나약함이 원망스러웠다. 불안하고 힘들어서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폭력도 무섭고 동생이 사라지는 것도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정신줄을 놓고 안 좋은 생각을 해버릴 것 같은 동생을 바라보는 게 힘들었다. 같이 진흙탕으로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 p.144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고통 속에서 이 말을 들을 때 나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마음을 통해서만 강해질 수 있는 거라면, 강해지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편안한 삶만 주시면 안 돼요? 하고 되묻고 싶었다. 한 개인이 견디기에 압도적인 고통이 있다. 내 고통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많은 고통들을 보고 있으면 고통스러운 일들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딛고 성장하고 고통을 이겨내서 큰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그저 고통을 느낄 뿐이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고, 세상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채로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냥 그렇게 될 뿐이다. 성장이 아니라 삶의 무의미함을 견디는 일에 무뎌질 뿐이다.
--- p.187

우리 여기서 우리 세상을 만들자. 규칙이나 행동 규범을 우리가 다시 새로 만드는 거야. 그리고 진흙탕에 빠졌던 사람들이 이 땅에 찾아오면 언제든지 반겨주자. 그리고 우리는 저 사람들처럼 이 땅에 제한 같은 건 두지 말자. 진흙탕에 온몸이 빠져본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느니, 발만 담가본 사람들은 올 수 없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말자. 그냥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울고, 그 눈물을 머금고 자란 땅에서 난 것들을 먹고 마시자. 거기서 만나자.

--- p.244~245

출판사 리뷰

1. ‘아버지폭력’에 맞선 스물넷 여성의 용기와 희망
― ‘뭘 해야 이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까?’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의 근원에 다가설 수 있을까?’


스물셋 되던 해 아빠의 폭력을 못 이겨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피해자가 품고 있던 질문이었습니다. 김가을 씨의 논픽션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는 이 절박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종국에는 묵직한 어젠다를 사회에 던집니다. 우리 모두가 알지만 어떻게 분류하고 명명해야 할지 몰랐던 폭력 범죄. 훈육, 엄부(嚴父) 같은 단어 뒤에 숨기도 했던, 물리적으로 끔찍하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밑바닥부터 파괴하는 ‘아버지폭력’입니다.

작가 김가을 씨의 주제의식에 따라, 시간의 흐름으로 쓰인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는 총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폭력이 시작된 시점부터 피해를 인식하는 ‘자각기’라고 할 수 있고, 2부에서는 계속 진행되는 폭력의 실상을 관찰하면서 그것을 보고하고 회복을 모색하는 ‘관찰기 및 회복기’입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쉼터에서 나온 이후의 독립된 주체로서 새로운 삶을 궁구하는 ‘진정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장강명 작가가 책으로 나오기 전에, 김가을 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원고를 보낸 지 3주 뒤 다음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다소 길게 인용해봅니다.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으로 읽었다. … 이 책은 먼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생생한 고발이다. ‘아버지 폭력’이라고 불러야 하는 범죄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우리가 모두 알지만 어떻게 분류하고 명명해야 할지 몰랐던 폭력 범죄. 훈육, 엄부嚴父 같은 단어 뒤에 숨기도 했던. 물리적으로 끔찍하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괴하는.

이 책은 훌륭한 인류학 보고서이기도 하다. 아버지 폭력이 어떻게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어떻게 그 도화선이자 연료가 되는가. 맞으며 자란 맏이가 어떻게 막내를 때리게 되는가. 저자는 자기 가족 이야기를 쓰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꼼꼼하고 냉철하게 분석해낸다.

이 기록과 고백은 투쟁 서사이며, 성장 서사이며, 영웅 서사인 동시에 구원 서사다. 저자는 희생자와 생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거기에 맞선다. 다른 희생자를 설득하고 돕는다. 김가을 작가는 마침내 적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적을 이해하고 구하려 나선다. 그 과정에서 이 투사이자 구원자에게 독서가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특히 무겁게 다가왔다. 예쁜 단어를 얼기설기 모은 아편의 대용물을 놓고 공감과 위로를 말하는 시대에 진짜 문학이 주는 뜨겁고 무서운 치유와 부활의 힘을 확인하게 해줬다. 그 힘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이 책도 그 힘을 품고 있다.”

2. 왜 이런 집의 첫째 딸일까…부정하고 싶은 정체성, 정면으로 마주하다 ― ‘아버지폭력,’ 그 이후의 내밀하고 치밀한 지적 통찰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의 김가을 작가는 아빠, 엄마,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입니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한 아빠, 일본 섬마을 출신의 엄마, 그리고 여동생 여름이, 남동생 진형이. 김가을 작가는 첫째 딸입니다.

이 식구의 가부장인 아빠의 폭력은 김가을 씨가 대여섯 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끔찍한 폭력과 슬픔 가득한 장면이 등장할 것 같지만, 작가는 의외로 차분하게 글을 써 내려 갑니다. 이 차분함 밑에 어떤 말들이 적혔다 지워졌을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살아서 끝끝내 어둠 속에 엉킨 경험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기에 편집자들은 ‘고맙다’는 이야기만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는 결국 폭력 이후를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나침반이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버지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은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고통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현실 바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은 말하기가 ‘금지’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족’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정 안에는 날카로운 창살이나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이 없지만, 보이지 않는 그 벽은 상당히 높고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에서 말하듯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엄마는 심리적인 종속뿐만 아니라 법적(결혼제도)으로도 경제적으로 매여 있기에 쉽게 탈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드높은 벽을 넘어 ‘말하기’ 시작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음도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 후반부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돌봐야 하는 지난한 과정, 아무리 치료를 받는다 해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경험들. 김가을 씨는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에서 앞으로 가는 것 같다가 갑자기 뒤로 후퇴하는 일상까지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기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폭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이렇게 세 가지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폭력의 체계 안에서 한 사람이 피해자이며 가해자이고, 결국 방관자 역할까지 할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이 잘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아버지’가 문제라고 말할 때가 됐습니다. 구체적인 가해자가 누구인지 적시할 때도 됐습니다.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그 흐름을 만들어줄 첫 번째 책이 될 것입니다.

나는 폭력의 반대편으로 가려고 애썼다
거기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스물셋이 되어 여섯 살 이후로 처음 맞지 않은 해를 보냈다. 나는 무엇보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아빠가 나와 동생들의 목을 죄어올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다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육교 난간에 서지 않게 하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바뀌는 것이 없더라도 그날그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잊지 않고 꼭 하려고 노력했다. 실어증 걸린 것마냥 말을 잃어버렸는데 던져진 질문들을 천천히 고민하고 그것에 대답해가며 아주 천천히 내 언어를 찾아갔다.”_ 본문 중에서

3. 고통을 해석하기 위해 ‘김가을’에게 힘이 되어준 작가들
― 살아남기 위한 독서


2020년 4월 23일 오후 5시경. 편집자에게 메일 한 통이 도착합니다. “이런 글이 출판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서 메일 드립니다. 『안네의 일기』식으로 피해자 쉼터에서 있었던 일과 과거의 특징적인 기억들을 적고, 이를 연결한 글을 이어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맞으면서 자랐고,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는 폭력을 못 이겨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4월 27일 답신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었어요. 글을 잘 쓰시네요.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인문학 공부요. 어떤 공부를 하든 공부할 때 제일 좋은 주제는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힘들게 하는 것, 뭔가 맺혀 있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렇게 공부하면 치유되는 게 있다고 해요. 저를 비롯해 사람들은 모두 마음의 병이 있어요. 흥분하면 핏대가 오르고 말이 꼬이고 하는 것들은 마음속 일이 몸으로 표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때 그 공통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쓰신 글이 있으면 보고 싶습니다.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부스러졌지만 파괴되진 않았어』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년이 조금 모자란 20개월 정도의 시간을 거치면서, 김가을 씨는 끝까지 차분한 톤,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 경험에 대한 지적인 해석을 담아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언어로 불리는 ‘철학’과 ‘지식’을 통해 ‘아버지폭력’을 드러내고 해석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장강명 작가의 추천글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그는 “아버지 폭력이 어떻게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어떻게 그 도화선이자 연료가 되는가. 맞으며 자란 맏이가 어떻게 막내를 때리게 되는가. 저자는 자기 가족 이야기를 쓰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꼼꼼하고 냉철하게 분석해낸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희생자와 생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거기에 맞선다. 다른 희생자를 설득하고 돕는다. 김가을 작가는 마침내 적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적을 이해하고 구하려 나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합니다. “이 투사이자 구원자에게 독서가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특히 무겁게 다가왔다. 예쁜 단어를 얼기설기 모은 아편의 대용물을 놓고 공감과 위로를 말하는 시대에 진짜 문학이 주는 뜨겁고 무서운 치유와 부활의 힘을 확인하게 해줬다. 그 힘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이 책도 그 힘을 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백 년 전에 살았던 애덤 스미스가 짚은 것처럼 내가 사는 세상은 부와 권세에 박수치는 세상이었다. 그렇지만 책은 내게 그 세상 밖에 있는 다른 길, 지혜를 탐구하고 미덕을 실천함으로써 도달하는 길을 제시해주었다. 나는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남들이 칠해주는 대로 칠해지는 사람이었다. 혼자서 칠해보라면 안절부절못하며 옆 사람 도화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이.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수학 문제 풀 줄만 알았지 인생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 그러다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구석진 작은 모퉁이부터 내가 색을 정해 칠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빠가 말하는 길로 갔어도 얻는 게 없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계속 뒤틀린 채 마리오네트처럼 살아가다간 내가 끔찍하게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될 게 뻔해 보였다. 이성적인 여동생 여름이와 달리 감정 변화가 심하고 불안이 많고 예민했던 나는 그렇게 계속 배우고 마음을 고쳐먹고 훈련시켜야 바뀔 수 있었다. - 본문 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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