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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1. 바람이 불어 〈風が吹いて〉
2. 별 헤는 밤 〈星に迷う夜〉
3. 새벽이 올 때까지 〈夜明けまで〉
4. 자화상 〈自?像〉
5. 십자가〈十字架〉
6. 또 다른 고향 〈また違う故?〉
7. 눈 〈目〉
8. 눈 오는 지도(地圖) 〈雪の降る地?〉
9. 서시〈西詩〉
10. 별 헤는 밤2 (전편) 〈星に迷う夜〉
11. 쉽게 쓰여진 시 〈やさしく書かれた詩〉
12. 버선본〈バ?ジョン本〉
13. 참회록 〈懺悔?〉
14. 태초의 아침 〈テチョの朝〉
15. 또 태초의 아침 〈またテチョの朝〉

2부
16. 무서운 시간 〈恐ろしい時間〉
17. 슬픈 족속〈悲しい足の中〉
18. 새로운 길 〈新しい道〉
19. 돌아와 보는 밤 〈?ってきて見る夜〉
20. 햇빛 바람 〈太陽風〉
21. 삶과 죽음 〈生と死〉
22. 초 한 대 〈初め、ある代〉
23. 빗자루 〈ひざ〉
24. 무얼 먹고 사나 〈何食ってる〉
25. 거짓부리 〈うそ〉
26. 달을 쏘다 〈月を?つ〉
27. 소년〈少年〉
28. 병원〈病院〉
29. 위로〈上へ〉
30. 시간〈時間〉

3부
31. 길〈道〉
32. 새벽이 올 때까지〈夜明けまで〉
33. 눈 감고 간다〈目を閉じて行く〉
34. 간판 없는 거리 〈看板のない街〉
35. 내일은 없다〈明日は ない〉
36. 거리에서 〈街で〉
37. 공상〈空想〉
38. 꿈은 깨어지고〈夢は?めて〉
39. 조개껍질 〈貝?〉
40. 남쪽 하늘〈南の空〉
41. 고향집〈故?の家〉
42. 병아리 〈ひよこ〉
43. 오줌싸개 지도〈おしっこ地?〉
44. 창구멍 〈窓の穴〉
45. 기왓장 내외 〈カワッチャン?外〉

4부
46. 비둘기 〈鳩〉
47. 이별 離別 〈別れ別れ〉
48. 식권 〈食券〉
49. 모란봉에서 〈牡丹峰で〉
50. 흰 그림자 〈白い影〉
51. 황혼이 바다가 되어 〈たそが海になれ〉
52. 편지 〈手紙〉
53. 겨울 〈冬 〉
54. 봄 〈春〉
55. 사랑스런 추억 〈可愛らしい思い出〉
56. 아우의 인상화 〈あおの印象?〉
57. 별똥 떨어진 데 〈流れ落ちたのに〉
58. 산골 물 〈山間〉
59. 굴뚝 〈ころころ〉
60. 해바라기 얼굴 〈ひまわり顔〉
61. 산울림 〈サンヌリム〉
62. 만돌이 〈マンドリ〉
63. 황혼 〈たそがれ〉
64. 종달새 〈ヒバリ〉
65. 산상〈山上〉

저자 소개 1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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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78쪽 | 128*188*20mm
ISBN13
9791165371982

출판사 리뷰

윤동주 시를 통해 암울했던 시대 민족의 아픔과 일생의 고뇌를 시구로 풀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한을 품어내던 소리, 우리는 100년 전, 그가 그리워하던 조국과 고향을 시속으로 들어가 절절했던 아픔을 뒤돌아보면 치가 떨리도록 아픈 그때를 되뇌게 한다.
아픔이여! 누가 오늘의 그 시절을 알겠는가, 할머니의 배가 강제로 찢기고, 어머니의 옷고름 잡아당기던 그 치욕, 나는 그 후손이다. 분명한 것은 다시 자식을 내동댕이칠 수밖에 없는 후대의 사랑을 다시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 말씀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머니는 또 그 어머니의 아픔을 내게 전했다. “나는 총알이 아까워 죽창으로 끼워 죽이던 조선의 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윤동주 시에서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아프고 또 얼마나 외로우면 그는 별을 세며 한을 다스렸을까!
그가 그리워하며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늘과 땅을 향해 뿌리 뽑을 수 없는 한을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산문들과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독 함께했던 한풀이 대상의 별과 달과 화원, 미완성된 창공, 가슴, 울적, 야행 등과 같은 제목만 듣고 나는 울음이 터져 나온다.
오늘의 젊은 청춘 남녀야, 현대인들은 윤동주 시를 한 번쯤 음미해 보았는가? 그의 시는 조선의 한이다. 공감하지 않고 조국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 말아라, 35년간 헤어날 수 없이 아팠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尹東柱の詩

尹東柱の詩を介して憂鬱な時代の民族の痛みと一生の苦惱を市區に解いた。彼は日本植民地時代に祖國のを耐え出した音は、私たちは、100年前、彼がミスしていた祖國と故鄕を時速に入って切切た痛みを振り返ってみると値が震えるそれを繰り返して言うようにする。
?痛みよ、誰がその時代を分かるでしょうか、おばあちゃんの船を引き裂かれ、母のオトゴルム引っ張ったその屈辱、私その子孫である。明らかなのは、再子を叩きつけ打つしかない後代の愛を再び作らない。今母の言葉を覺えている。母はまたその母の痛みを私に傳えた。 「私は總ナイフが惜しく竹槍に入れジュクイドン朝鮮のを忘れていない」という言葉を尹東柱市で感じることができる。

どの痛くまたどの寂しいならば、彼の星を數えたが治めた。彼が好きで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ひたすら天と地に向かって胸の深いつを叫ぶしかない散文と詩を介して知ることができる。有毒一緖にしたハンプルイ對象の星と月と花園、未完の廣がり、胸、くすぶる、夜行などのタイトルだけを聞いて、私は泣いて出てくる。現代人は尹東柱の詩を一度吟味して見たか彼の詩は、朝鮮の1である。共感せずに、祖國を知っていると言うな、もう拔け出せなく病氣の歷史の中に入ってみ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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