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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를 펴내며 좋은 콘텐츠 생산하는 법
이솔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 콘노 유키 핫플레이스의 온도 김윤정 귀여움이 열어젖히는 세계 신윤희 아이돌 팬이라는 콘텐츠 천미림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 허지우 “그거 이차가해 아닌가요?” 장유승 조선 사람이 선택한 콘텐츠 조영일 콘텐츠 시대의 예술작품 정민경 ‘되는 이야기’ 만드는 법 김찬현 막힌 곳을 뚫는 과학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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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무언가가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그것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콘텐츠는 밈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클리셰화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어떤 언어적 표현이나 몸짓, 나아가 어떤 대상 내지 인물, 실제적이거나 비실제적인 모든 것이 그런 복제의 대상이 된다.
---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중에서 핫플레이스는 감상자에게 목적 없는 목적지, 그러니까 일상을 떠나거나 반대로 내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는 공간, 그러나 장소보다는 볼‘거리’로 지나가는 일시적 공간이다. 실제로 보고 몸소 경험할 때 발생하는 마찰을 누그러뜨리는, 매끈한 평면 공간. 핫플과 거기에서 촬영한 사진은 ‘강 건너 불구경’ 하기에 적합한 매체다 --- 「핫플레이스의 온도」중에서 귀여움은 강력한 느낌이다. ‘귀엽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내가 그와 맺고 있는 관계의 형태는 달라진다. 귀여움은 무관심의 벽으로 분리되어 있던 세계에 균열을 낸다. “귀여워라는 말이 나온 순간 빼도박도 못하는 거지. 그 순간 아, 나 망했구나, 인생 저당 잡혔구나 싶은 거지.” 하진의 설명은 귀여움이 만들어 낸 균열이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낸다. --- 「귀여움이 열어젖히는 세계」중에서 정체성의 표현은 솔직하고 때로는 적나라하기도 하며,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기에 팬덤은 매혹적이면서도 때때로 나를 좌절시킨다. 나는 팬이자 연구자로서 그런 순간을 자주 마주했다.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결국 팬덤은 매혹과 좌절이 균형을 이룬 지점에서 생겨난다.”라고 했다. 나는 팬덤에 매료되고 그 문화적 가능성에 가슴 설레면서도, 동시에 팬덤의 한계를 느끼거나 팬덤이 오해받아 잘못 이야기될 때의 좌절 사이에서 연구한다. --- 「아이돌 팬이라는 콘텐츠」중에서 실제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 모두 나의 흥미를 끌지는 않는다. 어떤 작품들은 범죄에 노출되었던 나의 기억을 떠올려 괴롭게 하고, 또 어떤 작품들은 실제 사건에 대한 창작자의 무신경함이 분노를 치밀게 한다.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범죄 콘텐츠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이 계속 창작된다면 이는 우리가 예술을 통해 인간의 민낯을 발견하고 도덕적 감각을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중에서 한 작가에 대한 SNS상의 고발이 이뤄지면 수용자들의 마음속에 법정이 세워진다. 마음속 가상의 검사가 고발문에 따라 증거를 제출하고 가상의 변호인이 반박문에 따라 변론한다. 개념을 적용할 때에는 맥락이 중요한 만큼, 법정의 언어를 가져온다면 법정에 빗대어 맥락을 배치해야 개념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마음속의 법정에서 변호인의 출석을 금지했을 때 그 법정에서 나온 판결을 신뢰할 수 있을까? --- 「“그거 이차가해 아닌가요?”」중에서 소설은 독서와 거리가 멀었던 여성과 하층민을 독자로 끌어들였다. 제아무리 권선징악으로 포장한들 독서인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은 사대부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소설이 가장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니 자제들이 읽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비판에 그치고 적극 단속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설의 유행은 일제 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방각본과 소설은 관 독점의 출판에 균열을 일으켰다. 독서 인구의 증가에 기여한 공로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 장유승, 「조선 사람이 선택한 콘텐츠」중에서 러닝 타임은 결코 자의적으로 조절해서는 안 되는 절댓값인 셈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왜 그런 기능을 굳이 집어넣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가속이다. 20세기가 무의식을 발견한 감속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데이터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가속의 시대다. --- 「콘텐츠 시대의 예술작품」중에서 ‘얘기가 되는 것’은 세 가지를 포함해야 한다. 시간적으로 적절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며, 다루는 사안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갖게 할 만한 것. 첫 번째 정의는 ‘새로운 것(new+s)’을 뜻하는 뉴스콘텐츠의 핵심이고, 두 번째 조건인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것도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세 번째로 특정한 관점이 있는 이야기라고 해서 꼭 그 관점이 하나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여러 관점을 펼칠 수 있을 만한 주제를 건드리면 된다. 기자는 이런 조건들을 갖춘 얘기를 캐내 와야 한다. 매일매일. --- 「‘되는 이야기’ 만드는 법」중에서 「돈 룩 업」중에서 이 그린 것처럼 여러 배경을 지닌 사람들 간의 소통 단절이 현실에도 존재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함께할 사람들, 사람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스스로 잘 알고, 공부하고, 주변 사람에게 알리자는 목표에 공감하는 커뮤니티를 꾸려야 한다. --- 「막힌 곳을 뚫는 과학」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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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대하는
우리의 감각 콘텐츠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왜 그런 말을 쓰는 거지?’ ‘뭐라고 하는지 볼까.’ 하거나 ‘무슨 콘텐츠 이야기일까?’ ‘얻을 만한 게 있을까?’ 하고 반응한다. 콘텐츠에 거리를 두거나, 뛰어들거나. 디지털 세상에 떠다니는 모든 내용물을 보고, 듣고, 만들고, 파느라 바쁜 오늘날이다. SNS에 중독된 이용자들이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얻는 이득과 손해의 정체는 뭘까? K-콘텐츠의 득세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불안하고 우울한 매일매일을 채우는 모든 이야기가 돈으로 바뀔 수 있을 때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문잡지 《한편》은 이런 질문을 품고 철학에서 미학, 인류학, 사회학, 법학, 문학, 언론학, 과학기술학까지 콘텐츠에 관한 열 편의 글을 실었다. 콘텐츠를 둘러싼 지긋지긋함, 사건 사고에서 생산 원칙까지 요즘에는 거장의 영화에서 고양이 동영상까지 전부 콘텐츠라 부른다고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말했다. 시네마의 저무는 영광을 안타까워하는 발언으로부터 철학 연구자 이솔의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가 시작한다.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그 속에 뛰어들어 무한 복제의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후자가 이 글이 보는 콘텐츠 시대의 생존 지침이다. 미술비평가 콘노 유키의 「핫플레이스의 온도」는 사진 찍기 좋은 ‘핫플’이 막상 뜨겁지는 않은 배경으로 아무렇지 않게 물러나는 기제를 분석한다. 미술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떠나가는 인파 속에서 작품도 작품의 배경도 매끈하고 쾌적한 콘텐츠가 되어 버린다. 불면의 밤 볼거리를 찾아 헤매는 지긋지긋함의 감각을 포착하는 두 편이다. 이어지는 두 편은 유튜브의 동물콘텐츠 구독자, 아이돌 콘텐츠를 즐기고 직접 만드는 팬덤에 대한 현장 연구다. 인류학 연구자 김윤정은 「귀여움이 열어젖히는 세계」에서 동물콘텐츠의 힘을 이야기한다. 동물 영상 구독자들의 “귀여워……”란 말은 개의 눈매, 고양이의 앞발이 귀엽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귀엽다는 발화는 콘텐츠 속 동물을 향해 자기 세계를 여는 발화점이라는 주장이다.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신윤희는 「아이돌 팬이라는 콘텐츠」에서 아이돌의 영상 통화 팬 사인회(‘영통팬싸’) 관찰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연구에서 팬덤은 그들만의 이상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현상’이 아니라, 서로 친절하게 즐길거리를 공유하며 스타와 함께 사건 사고를 헤쳐 나가는 ‘주체’다. 두 연구자는 연구의 대상이자 그 자신이 속한 집단을 거리낌 없이 옹호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사는 온라인 세계는 조리돌림과 악플이 사람을 해치는 공간이다. 독립 큐레이터 천미림의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는 범죄 콘텐츠의 재미와 실제 사건의 무게 사이에서 인간이 잔혹한 이야기를 즐긴다는 역설을 분석한다. 범죄 실화를 다루는 작품의 미적 형식과 도덕적 내용 구분하기가 실마리이니, 만물을 ‘콘텐츠’로 일컫는 무심함에 브레이크를 잡는 철학적 탐구다. 법학을 연구하는 허지우의 「“그거 이차가해 아닌가요?”」는 가해자가 고발되는 즉시 세워지는 온라인 법정을 탐구한다. 관심을 주고 재미를 얻는 경제 속에서 하자 있는 상품을 즉각 단죄하려 드는 우리의 마음이 판결을 요구한다. 콘텐츠 시대 특유의 폭력을 염두에 둔 두 편의 글이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세요!” 지난 역사와 오늘날의 이야기 ‘모든 것이 콘텐츠’인 시대에 문자 매체는 콘텐츠 시장의 가장 뒷줄에 서 있다. 이 시점에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를 선사하는 두 편을 소개한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과 『조선잡사』를 쓴 장유승은 한달음에 보는 동아시아 책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조선 사람이 선택한 콘텐츠」에는 조선 후기 소설에 빠진 여성과 하층민들, 그들에게 독서인 정체성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사대부들이 등장한다. 『세계문학의 구조』의 저자 조영일은 「콘텐츠 시대의 예술작품」 쓰기를 시도한다. 지난 20세기에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면, 「오징어 게임」이 방영 17일 만에 1억 1100만 뷰를 올린 지금 복제되는 것은 알고리즘에 끌려다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시 21세기로 돌아온 요즘 세상에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세요!’라는 구호는 콘텐츠 생산이라는 환상을 부추긴다. 솔직함을 팔라는 제안에 어떻게 응하면 좋을까? 마지막 실천편에서는 생산 방식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기자 정민경의 「‘되는 이야기’ 만드는 법」은 뉴미디어 시대에 기자 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과학기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김찬현의 「막힌 곳을 뚫는 과학」은 전문가, 비전문가, 시민이라는 구분을 넘나든 소통 경험을 전한다. 물론 모두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과제인 기후변화는 거대하다. 그럼에도 막힌 말문이 뚫리는 순간의 즐거움이 동력이 된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한편》의 편집자가 만드는 ‘탐구’ 시리즈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8호 ‘콘텐츠’에 적용된 글꼴은 블레이즈페이스 한글체.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듯한 풍성함과 유기적인 곡선이 특징이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에 이어 2022년 9월 ‘외모’를 주제로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