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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개나리벽지 10 손에 묻은 사인펜 자국을 지우며 11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14 호명呼名 16 탑신에 내리는 눈 17 태양극장 20 코스프레 22 전속력 24 필름 현상액 26 짐승의 화원 28 벚꽃 추위 31 켓 티Khet Thi 32 2부 나르키소스와 물고기 피스트 범, 비너스 36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 38 나르키소스와 물고기 40 지구레코드 43 떨어진 면적의 먼지를 털며 45 전해질電解質 47 받아쓰기 50 소규모 소문이 퍼지는 시간 51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어족魚族과 같이 신선하고 53 풀 55 오란비 58 노루잠 59 네잎클로버 60 술래잡기 62 장마와 원고 63 관상어 65 하지夏至 67 3부 친애하는 동업자들 고골리 70 층계참에 선 유다 72 첫인상 74 브로커 77 파랑새 증후군 78 악어 80 보물찾기 게임 82 낮달 84 동물 없는 연극 85 우아한 여가를 위한 근린공원의 산책 시간 88 물의 정물靜物 89 친애하는 동업자들 92 동행 96 4부 눈사람 신파극 존 레넌을 죽인 범인이 태연하게 호밀밭 파수꾼을 읽었을 때 100 팬터마임 101 에코 104 눈사람 신파극 106 침묵을 버티는 힘 109 스웨터 111 대설주의보_낭광증狼狂症 114 잿빛 안개_낭광증狼狂症 116 티라노 눈사람의 사랑 118 거울, 겨울, 나르키소스 121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122 노련한 강물과 사계의 슬픔 124 심장이 놓인 형식 127 시인의 말 128 |
기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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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플 땐 돌멩이를 던진다
광물에 남겨진 시간을 떠서 허공의 정점에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서로 다른 지층에 묻힌 응어리가 옹기종기 조약돌로 평화로운 정오에도 물수제비뜨는 연인의 돌멩이는 수면 가장 높은 곳까지 떠오른다 지상에서 처음 타인의 마음에 가닿았던 흔적들 돌멩이를 집어 들던 무수한 감정은 강물 위에서도 깊고 거대한 속내를 지닌다 이별의 방향으로 벼름하는 생활을 거슬러 올라, 매 순간 허공을 쥐는 손아귀를 본다 더 큰 사랑을 바라보고 더 큰 빈 곳에 휘청거리던 저녁의 저글링 돌멩이에겐 곡예사의 어투를 물려받은 조상이 있다 분장이 다 번진 얼굴로 거들어줄 손 하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 「노련한 강물과 오늘의 슬픔」 중에서 흐르는 물결 위에 글씨를 쓴다 또박또박 백지를 떠올리며 쓴 문장들이 손끝을 밀고 떠날 때 나는 그것이 허구를 향해 번져나가는 물고기 떼인 줄 알았다 서로의 아가미를 들락거리는 투명한 굴곡에 몸을 내맡기고서 타인의 속내로 직진해온 햇살의 화창에 비늘을 반짝거렸다 물고기들은 사랑을 모르고 있으므로 촘촘한 이별의 은유로도 연민 가득한 비문으로도 그물을 만들 수 없었다 하구를 지나 까마득한 적도의 바다 한복판에서 문득 하다만 말들이 지느러미를 붙들 때 비로소 글씨와 함께 번져버린 한여름과 그 풍경 위로 떨어진 몇 방울 눈물을 기억한다 고백은 물고기를 모신 자들의 눈꺼풀 같은 것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 별빛의 고요에도 비린내가 난다 회귀하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가 망망대해의 어둠 속에서 보았던 폐허가 시냇가까지 따라온다 쓴다는 본능을 좇던 물결에 얼굴을 디밀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상처들과 구겨진 삶의 필름을 어루만진다 사랑을 모르는 자의 표정으로 거울 속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다 --- 「나르키소스와 물고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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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슬픔을 연기하는 한 방식
시인은 자신의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는 마술이 아니라면 결국 시인의 모든 시도는 연기(演技)에 불과하다. 실패와 체념이 반복되자 시인은 부재한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밀어붙이는 착란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시인의 연기는 단지 상식적으로 배치된 현실을 재현하고 그 재현을 벗어나는 움직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연기는 단순한 복사(複寫)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순수한 창조의 표현 또한 아니었다. 닮았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간격 사이에 머무르는 행동. 시에서의 연기란 가장 유사한 사태와 감정을 끌어와 이접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적 진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존재하지 않는 배경은 견딜 수 없이 쓸쓸한 것인데, 수많은 부대낌 사이에서 홀로 있음을 망각할 틈조차 잊어버린다. 이를테면 돌담의 안쪽과 바깥쪽, 오직 자신만이 아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에서 울고, 웃고, 냉소하며 말들을 뱉어낸다. 앞선 말들은 수습되지 못한 채 아귀가 맞지 않는 은유를 만들어낸다. 시인은 어리둥절한 관객의 귓가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의미 없음을 고백한다. 그것은 흡사 돌멩이가 굴러가는 소리를 닮았다. 어쩌면 프로메테우스를 묶었던 바위산이 굴러가는 소리일 수도 있다. 이따금 하늘에서 항의하는 돌들이 떨어지곤 하지만 우주의 오래된 민원처럼 지구가 굴러가는 소음은 담당 기관이 폐쇄된 지 오래다. 시인은 장엄하고 웅장하게 돌담을 딛고 서서 균형을 잡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준다. 시인은 자주 식은땀을 흘리며 울어보지만, 다시 내려올 수도 그대로 망부석이 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세로 결국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해본다. 그림자에 집중하는 동안 시인은 돌담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드러낼 수 있는 내부의 한도를 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의 소리는 가장 어두운 부분에서 나온다. 어둠은 밤과 다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종이 위에 그려진 나무 상자 속에서 어린왕자의 순한 양을 키울 수도 있고, 해가 뜨고 지는 우주를 택배 상자에 담아 배송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독자의 속내에도 군데군데 어둠이 얼룩지고 서로 다른 소리가 난다. 누군가 엉겁결에 ‘사랑’이라는 말을 발음해본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땐 엉겁결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엉겁결에 뱉어낸 말들도 실은 고도로 계산된 불협화현(不協和絃)의 결과다. 시인에게서 시인이라는 말이 엉겁결이 나온다. (무심코 떨어트린 성냥 하나가 극도의 고독을 딛고 선 사람에겐 전 생애를 울리는 고백처럼 불타오른다는 거짓말.) 누구라도 그림자를 만지작거리면 희미한 부분이 생겨날 것이다. 약간의 밝음 속에서 꿈결 같은 것이 흘러나올 무렵 시인은 그것을 천사의 날개인 양 경이롭게 바라본다. 시인은 천사를 본 적이 없지만, 날개를 구분할 줄 안다고 믿는다. 날개는 어떻게 나는가? 시인은 돌담 위에서 위태롭게 양팔을 벌리고 움직여본다.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멀리서 작은 돌멩이며 나뭇가지를 던진다. 시인은 계속해서 양팔을 휘젓는다. 새들이 위태로운 유기체 쪽으로 배설물을 떨어뜨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시인의 몸이 뜬다. 시인은 거짓말처럼 거짓말이다. 시인은 돌담에 묶여있고 거짓말처럼 세상이 떠오른다. 참을 수 없이 가볍게. 거짓말처럼 사는 일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텅 빈 몸통에 날개만 매단 시인이 멀어져가는 세상을 올려다본다. 세상에서 흘린 바람과 빗물, 진리의 수화물들이 수직으로 시인을 관통한다. 시인을 계속해서 양팔을 움직인다. 시인은 움직일 것이다. *리메로북스의 ‘티라노 독서 시리즈’는 단일 저자의 문학작품의 경우, 추천사에 대한 작가의 ‘응답하는 글’로 출판사 서평 및 리뷰를 대신합니다. 시인의 말 맞지 않는 일기예보처럼 언어의 기후는 늘 다른 동네에서만 비를 내린다. 흠뻑 젖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현실로 울먹일 때 생애의 몇 퍼센트쯤 강물에 담근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골목에 찍힌 젖은 발자국이 말라가는 동안 나는 슬픔이란 모국어를 시늉하곤 한다. 그중 몇몇은 필요 이상의 성량을 보태거나 술주정이 되었다. 희미한 기억들 일부가 용케도 시편이 되었지만 어느 것이든 역사적 차이는 없었다. 표정과 몸짓이 미흡할수록 가책보다 안도를 느낀다. 가능성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제는 살아있어야 했으므로 누군가의 슬픔은 비공식적인 호흡이어야 했으므로 어제처럼 계절이 바뀌면 젖은 행렬이 가슴께로 들어온다. 오늘도, 내일도 뾰족한 것들은 오래된 취기가 맺힐 것이다. 찌르고 찔리면서 떨어진 핏물을 마시고 이 땅의 시간도 검푸른 바다로 흘러나간다. 물고기와 사람 사이에서 시의 체온에 가까운 종족을 찾기로 한다. 2022년 5월 일더위가 뿌듯해질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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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생활할 것. 슬픔을 펼칠 것. 무심하게 파고들 것. 당신도 와닿을 것.” - 권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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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은 전위와 고전의 경계 위에서 사계의 슬픔을 노래한다. 우리가 결국 당도해야 하는 ‘가장 알맞은 말’들이 노련한 강물 위에서 춤을 춘다. 티라노의 독서에 경배를!” - 이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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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서 독자는 사유-이미지로 분주한 쓸쓸함을 읽는다. 틀림없이 이 시집의 배음은 어떤 쓸쓸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뒤안길에 홀로 남겨진 이의 회한도, 앞질러 완주한 이의 고독도 아니다. 사유만이 울리는 공간에 스스로를 던져넣은 이의 완강함이다. 기혁의 이미지는 집중된 사유가 낳는 적요와 놀고 있다. 외로이 높은 노래가 아닐까.” - 조강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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