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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왜 나의 정체성은 자꾸 흔들리나?
1. ‘나’를 증명하려 애쓸수록 삶은 허무하다 2. 정체성 고민은 ‘예수’로만 풀린다 Part 2. ‘예수 안에서’ 진짜 내가 보인다 난 구제불능 죄인이다? 1. 나는 성도다 내 처지 때문에 주눅 든다? 2. 나는 복받았다 아무도 내 노고를 알아주지 않아 서럽다? 3. 나는 인정받았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감동이 없다? 4. 나는 구원받았다 나랑 다른 저 인간, 너무 싫다? 5. 나는 화해했다 Part 3. ‘보호받는 자녀’는 항상 안전하다 내 인생만 시련의 연속이다? 1. 나는 고난받는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모른다? 2. 나는 기도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재주가 부럽다? 3. 나는 은사를 받았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힘쓰다 실망했다? 4. 나는 새롭다 원망과 미움이 도저히 안 풀린다? 5. 나는 용서받았다 Part 4. ‘사랑받는 자녀’는 날로 담대하다 나는 돈도, 연줄도 없다? 1. 나는 입양되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2. 나는 사랑받고 있다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3. 나는 상을 받는다 영적 전쟁, 자신 없다? 4. 나는 승리자다 |
Mark Driscoll, Mark and Grace Driscoll,마크&그레이스 드리스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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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라 예배자로 창조되었다. 삶의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세속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삶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으로 분리될 수 있다는 건 사탄의 거짓말일 뿐이다. 무신론자에서 그리스도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예배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의 선택, 가치관, 소비 활동, 일, 행동, 생각까지 삶 전체가 예배 행위다. 그것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문제는 우리의 예배 대상이 무엇이냐다. 모든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창조주를 예배하는 사람들과 피조물을 예배하는 사람들로 말이다. 죄로 인해 우리에게는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예배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다. 우상숭배란 피조물을 신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나쁜 짓이다. 우상숭배는 지독히 파괴적이다.
--- pp.21-22 바울은 도대체 에베소에서 어떤 위험한 메시지를 전했기에 미움을 받고 마을에서 쫓겨나고 소란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을까? 바울이 어떤 강력한 진리를 설파했기에 종교계, 정치계, 경제계 거물들이 그를 미워했을까? 바울이 어떤 가르침을 펼쳤기에 로마 제국처럼 강한 제국이 위협을 느꼈을까? 어떤 점이 에베소 같은 거대 도시를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그 위력은 바로 “예수”께 있었다(행 19:4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란 두 단어가 에베소 전체를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두 단어는 온 세상을 변화시켰다. 신자의 정체성이 이 두 단어에 완벽하게 담겨 있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아니면 우상 안에 있다. --- p.46 당신은 램프의 요정이 딱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빌겠는가? 솔직히 말해보라. 재물? 권력? 사랑? 이제 하나님이 이미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이나 부, 편한 삶을 주시지는 않을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그분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삼위일체의 공동체 속으로 초대받았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영원한 우정에 동참하게 되었다. 온 우주에 이에 비할 복이 또 있을까? --- p.77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는 걸핏하면 하나님께 “왜?”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스스로 판사의 자리에 앉고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히는 위험천만한 질문이다. 물론 고통이 극에 달하다 보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성경의 위인들도 그런 적이 있다. 따라서 고통 중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을 볼 때면 비난하기보다는 도와주고 위로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왜’에서 머물지 말고 ‘누구’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누구’라는 질문은 하나님께 답을 찾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질문이다. ‘누구’라는 질문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고난 중에 우리에게 답(심지어 유용하고 성경적인 답일지라도)보다 더 필요한 건 하나님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꼭 필요하다. --- pp.155-156 은사가 더 많은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다만 얼마간이라도 자신의 은사와 상관없는 분야에서 섬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필요할 때마다 서로의 일을 돕는 가족과 같다. 은사와 성숙은 서로 다른 문제다. 하나님의 은혜로 은사를 키울 뿐 아니라 성숙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다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은사만 받고 성숙하지 못 하면 자신과 남들에게 모두 해가 된다. 은사를 발견하는 최선의 길은 시행착오다. 교회에서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실제로 발로 뛰면서 은사를 찾아가야 한다. 그 분야가 맞지 않아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맞는 분야를 찾을 때까지 여러 분야를 시도해보면 된다. --- p.188 칭의는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난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예수님의 사역으로 구원을 받는다. 우리의 삶이 아닌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소망이다. 우리의 종교적인 노력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이우리 죄의 대가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만이 의를 주실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만 우리 의에 관한 소망을 두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도덕, 종교적 헌신으로는 단 한 조각의 의조차 이룰 수 없다. 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 뭔가를 더하거나 빼면 모든 것을 망친다. --- p.214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죄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용서 아니면 원한, 둘 중에 하나뿐이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잡초와 마찬가지로 원한에도 뿌리가 있다(히 12:15 참조). 그래서 남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었을 때 단순히 실망과 분노, 상처, 슬픔의 잡초를 잘라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원한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아예 송두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원한의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반드시 더 큰 원한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일을 미루면 미룰수록 뿌리를 뽑기가 더 힘들어진다. --- p.234 하나님의 상은 무한하므로 서로 질시할 까닭이 전혀 없다. 우리는 유한한 상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온전함을 좇고 그 온전함을 남들과 나누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 덕분이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상은 아랫사람과 윗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 --- p.298 왜 고난이 찾아오면 놀라고 당황해하는 그리스도인이 그토록 많은 걸까? 주로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달라도 우리는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다. 이것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 영접의 순간과 실제로 예수님을 대면할 순간 사이에 있는 시간, 곧 인생에 관한 얘기가 빠져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영적 기억상실증에 빠져서도 안 되고, 예수님과 사탄이라는 두 왕과 두 왕국, 빛과 어둠, 두 군대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분명 성경은 왕이신 예수님의 승리를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향해 가는 중이다. 그곳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사탄과 죄, 죽음에 사로잡힌 전쟁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 p.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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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의 정체성은 자꾸 흔들릴까?
인생 오춘기를 지나는 당신을 위한 책! 미국의 주목받는 차세대 목회자 마크 드리스콜(마스힐교회 담임목사)이 우리의 ‘정체성’ 고민을 정면으로 다루는 책을 썼다. “나는 누구인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 누구나 한 번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어느 인생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파생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살면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에 계속해서 흔들리고 넘어지고 만다.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죽은 후 천국에 간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오늘 내 일상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 한다.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자꾸 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정체성을 얻으려고 방황한다. 매주 꼬박꼬박 교회에 가도 우리 영혼은 늘 헛헛하다. 저자는 “당신의 참된 정체성은 당신이 과거에 당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해주신 일에서 비롯한다.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당신이 누구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후자가 전자를 결정한다”고 단언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엉뚱한 데서 정체성을 얻으려고 애쓰는 정체성 우상숭배 현상 및 정체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정체성 고민의 유일한 해법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소개한다. 그렇다. ‘예수 안에서 참된 정체성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푸는 실마리다.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신자, 주기적으로 정체성 고민에 빠지는 기신자, 중·고등부에서 청·장년에 이르기까지 전교인 필독서 저자는 정체성 고민을 풀 좋은 재료로 신약성경의 에베소서를 선택했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에베소서를 말씀 그 자체, 저자, 시대 배경 등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파헤치며 오늘날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예수 안에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일깨워준다. 지금 내 앞의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을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나는 성도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인정받았다, 나는 고난받는다, 나는 화해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등등 성경이 증언해주는 14가지 나의 참 모습을 따라가라. 세상 속에서 무기력한 자신에 실망한 이들,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 자아상이 병들었는지 자각조차 못 한 채 뭘 해도 헛헛한 마음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살던 많은 이들이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소유물, 성취, 미래, 사람, 상처 등 오늘도 수많은 거짓 정체성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진짜 정체성을 앗아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예수 안에 있는 당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예수 안에 있는 당신이 ‘진짜 당신’이다. 이제 ‘진짜 나’로, ‘가장 나답게’ 살자. 예수님이 내게 해주신 일을 알면 진짜 내가 보이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