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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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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발걸음이 닿는 곳
“엄마와 옛집에 다녀왔다. 종로구 부암동 산자락, 지금은 가정집 대신 박물관이 되어 버린, 내 유년기의 창백한 기쁨이자 글쓰기의 전부인 곳. 언니의 방이 있던 자리가 이제 매표소가 되어 버린, 노크만 하면 드나들었던 방문 대신 차례로 줄을 서 표를 끊고 들어가야 하는 곳. 나는 그 거칠고 높고 기이한 곳에서 태어나 11년을 살았다.” 시인은 자신이 잘 담겼던 곳들을 잊지 않는다. 그 장소는 11년 동안 살아온 옛집이기도 하고,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이기도 하며,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산책길의 고궁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그의 문장처럼 부지런히 걷는 액체 상태의 시인은 흐르던 자신의 몸을 알맞게 담을 공간을 명민하게 찾아내고, 찾아낸 곳을 결코 소홀히 하거나 놓치지 않는다. 김연덕에게 다양한 공간들은 다채로운 감정으로 남는다. 남자 친구와 다툼 후에 그를 만나러 가던 길의 공단은 거칠고 차가운 쓸쓸함으로, <대산대학문학상> 등단의 부상으로 가게 된 런던은 함께 갔던 이들과 나누었던 신비롭고 오래된 설렘으로, 우연히 단골이 된 카페와 와인 바는 첫눈에 우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뿌듯한 다정함으로 남아 있다. 시인의 마음이 입혀진 공간은 결코 단순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눈동자를 통과하고 나면, 추운 겨울 할머니와 함께 있던 요양원의 모습도 건조하고 두렵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가 한 장소를 두 번 방문하기 때문이다. 처음 발걸음이 닿았을 때와 문장으로 다시 한번 닿을 때. 첫눈에 흐리고 앙상했던 곳도, 혹은 처음 본 순간부터 명쾌하고 온화했던 곳도 데생의 빈 부분을 채우듯 다시 손을 뻗어 그려 본다. 시간과 문장이 한 차례 더 어루만진 공간은 시인의 글 속에서 서서히 일어선다. 우리는 그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마침내 다정한 사람에게 고일 때 “그날의 상처에 대해 쓴 것인지, 다정하고 싶은 의지에 대해 쓴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과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나에 대해 쓴 것인지, 오늘 만난 바위산, 부드럽게 파열되던 풍경에 대해 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혀 아름답지 않게 피로하고 어지러운 모양으로 얽힌 글이 되어 버렸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이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유일하게 쓸 수 있고, 써야만 하는 글이었다는 것.” 시인의 친구는 시인에게 말한다. “연덕은 사랑할 때도 꼭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성실해?” 시인은 그 말에 당황해서 자신을 부정하거나, 안도해서 자신을 부풀리지 않고 그저 다짐한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세요. 차가워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그 마음에 몰두하는 시인의 성실함은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퍽 쉬운 일도 아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그에게 조개껍데기로 엮은 장식품을 선물하면, 그는 멀리서 온 마음에 답장을 하기 위해 공방에서 유리로 조개와 소라를 깎으며 한겨울을 보낸다. 단골이 된 카페에서 편한 자리와 맛있는 커피를 건네주면, 어느 날 여행을 떠난 시인은 카페 주인을 떠올리며 그에게 건넬 빈티지 접시를 고른다. 그것은 쉬운 교환인 것 같지만 아무나 가능한 교환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가 경험한 모든 관계가 등가교환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의 접촉을 간직한다. 김연덕에게 사랑하는 일은 해 온 것을 후회하지 않고 해 나갈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시인의 산문에는 그런 그의 사랑하는 자세가 다부진 모양으로 담겨 있다.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어, 그렇게 믿는 듯한 태도로 신념과 혼돈 사이를 거닐며 소원을 빌 듯 그 사람에 대한 일기를 적는다. 그 일기를 차곡차곡 쌓은 『액체 상태의 사랑』은, 겨울을 닮은 시를 쓰는 시인의 봄 같은 기도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