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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왕 찰스 2세에게 바치는 헌사 ·04
일러두기 ·10 제1장 노아의 홍수 ·13 제2장 근원 언어 ·55 제3장 노아와 요임금 ·75 제4장 중국의 지리와 인문 ·119 제5장 중국의 상업과 정복 · 161 제6장 중국 언어의 특징 · 193 원문주와 인용원문 · 274 참고문헌 ·291 옮긴이의 말 ·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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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웹(John Webb, 1611~1672)의 『17세기 유럽인의 중국 언어 예찬론』(1669)은 서양 최초의 중국 언어 논평서이고 동서양 문명 비교서이다. 웹은 중국에 직접 입성한 사절단과 예수회 선교사가 전해준 중국 관련 정보를 토대로 중국 언어가 근원 언어일 개연성을 서양의 여러 성서학자, 역사학자, 동양학 학자의 글을 참조하여 논하였다. 오늘날은 근원 언어, 보편 문자에 대한 관심이 없고, 게다가 중국 언어가 근원 언어라는 주장은 비웃음을 당하기에 적당하다. 이 저서는 중국 문명이 성경 기반의 서양 문명에 가한 충격의 여파를 성경의 인식틀로 사유하고 해결하고자 한 17세기 서양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저서는 서양의 원시 중국학의 기원에 접근하고 전근대 서구인이 본 중국 언어와 중국 문명을 조망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웹은 중국 언어가 근원 언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당시 유명했던 30인 이상의 유럽 저자들의 글을 인용한다. 다행히 웹이 출처를 남김으로써 독자들은 그가 누구의 글을 인용했는지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때로 본문에서 출처자의 이름이 명시된 경우에도 어디까지가 간접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웹의 주장인지 모호하다. 본문에서 출처자의 이름이 없고 여백에 출처만 있을 경우 이런 모호함은 더 심해진다. 오늘날의 학문적 기준을 17세기의 학계에 적용하여 그의 글을 표절로 매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최소한 웹은 당대의 어느 학자 못지 않게 글을 빌러 오는 것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인용의 출처를 명시한 것에는 역사가도 아니고 언어학자도 아니고 건축가였던 웹이 당대 유명했던 저자들의 글을 빌려 자신의 글에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던 동기도 있었던 것 같다. 웹은 근원 언어를 파악하는 6가지 기준인 언어의 고대성, 단순성, 일반성, 단정한 표현, 유용성, 간결성을 토대로 중국 언어가 근원 언어일 개연성을 전개한다. 웹이 논저 내내 심혈을 기울인 중국 문자의 고대성에 대한 주장은 그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다. 성경의 창세기와 중국의 신화시대를 그가 확보한 자료로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애초부터 무리이고, 어느 학자라도 이것을 증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이를 의식하고 원 제목에서 중국 언어가 당시 서양에서 인류의 조상으로 믿는 노아가 사용했던 언어 즉 우리 인류의 근원 언어일 ‘개연성’을 탐색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웹이 당시에 제한된 자료 내에서 중국 언어의 특징에 대해 보여준 통찰은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면 그의 글이 발표한 지 150년 동안 그보다 뛰어난 글은 없었다고 확언할 정도로 뛰어나다. 중국 언어가 근원 언어라는 웹의 주장은 프니츠 등 보편문자를 지향하는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서양의 원시 중국학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웹을 반드시 언급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웹은 한국의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므로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웹은 17세기의 영국의 왕실 소속 건축가이었고 학자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사람이 많았듯이 웹은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 고대의 석조상인 ‘스톤헨지’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중국 언어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였다. 그는 당대 유명한 건축가이자 궁정감독관인 이니고 존즈(Inigo Jones, 1573~1652)의 제자로 영국의 왕궁 건축을 담당하였다. 영국의 내전 동안에는 왕정 복고를 옹호하는 왕당파로 활동하였다. 웹이 브라이언 월튼 주교(Brain Walton, 1600~1661)가 주도한 다국어 성경(Polyglot Bible, 1654~1657)의 속표지를 디자인한 것이 고대 언어와 여러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웹의 ‘중국 언어 예찬’의 주요 논지는 사실상 책 출판에 앞서 찰스 2세에게 바치는 헌사에 들어 있다. 중국 제국의 언어가 근원 언어이고 노아가 요임금이라는 웹의 주장이 오늘날 독자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시 17세기에는 학계에서 연금술과 과학이 공존하고, 환상과 사실이 혼재된 논저가 많았다. 상상력이 가미된 그의 주장 때문에 그의 글을 폄하기보다는 그 당시의 사유가 발생한 학문 토대와 그 사유의 한계를 살피는 것이 의의가 있을 것이다. 동서양 최초의 조우가 만들어낸 날 것 그대로의 사유와 이미지가 이후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더욱 그러하다. 성경 연대기는 웹의 이 저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은 지구의 실제 나이가 ‘기원전 4000년이다, 기원전 5000년이다’라는 주장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17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시기의 막바지로 중세의 기독교 중심의 사고관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세계창조부터 대홍수에 이르기까지 고대 역사에 관련해서 성경이 유일한 지침서였다. 르네상스 이후의 역사가들은 역사 기술에 매우 엄격하여 성경에 묘사된 사건을 이용해서 세계 창조의 정확한 시기를 계산하는 학문이 크게 유행했다. 성경 연대기에 대한 무수한 주장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널리 유포된 것은 제임즈 어셔 대주교(James Ussher, 1581~1656)의 히브리어 성경에 토대를 둔 성경 연대기었다. 어셔의 연대기가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연대기가 킹 제임스 성경의 공식 주석서에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어셔는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 바벨의 혼란 등을 성경과 천문학 등을 이용하여 정확한 날짜를 제시하였다. 어셔는 세계 창조를 기원전 4004년로 보고, 대홍수는 세계 창조 후 1656년으로 또는 기원전 2349년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 특히 당시 성경적 세계관을 믿는 학자와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마르티노 마르티니(Martino Martini, 1614~1661)가 1658년 출판한 『중국 역사』이었다. 마르티니는 복희씨가 기원전 약 3,000년 전에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했고 요임금은 기원전 2357~2257년에 중국을 통치했다고 말한다. 노아의 홍수 이후 살아남은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어야 하는데 중국에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사람이 살고 있었고 노아와 시대가 겹치는 요임금은 홍수 전과 후에 모두 생존하며 중국을 통치했다는 해석이 된다. 이것은 당시의 성경적 세계관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계 창조에서 대홍수까지의 고대사의 전부가 단지 신화이거나 아니면 노아의 홍수도 전세계적 홍수가 아니라 한 지역에 특정된 홍수이므로 성경은 단지 한 지역만을 기록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중국의 고대사 기록은 서양의 성경적 세계관의 신뢰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중국의 역사를 성경의 연대기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연대기가 필요했다. 중국 예수회에서는 히브리어 성경과 불가 성경에 토대를 둔 연대기로는 중국의 고대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래서 1637년 예수회는 그리스어로 된 70인역을 받아들인다. 70인역에 따르면, 세계 창조는 기원전 5200년이고, 노아의 홍수는 세계 창조 후 2262년 또는 기원전 2957년이다. 중국 역사의 기원전 3,000년은 히브리어 성경과 불가 성경의 연대기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 발생 약 603년 전의 일이지만, 70인역 성경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5년에 발생한 것이 된다. 중국에 관한 자료는 일부 사절단의 방문기와 보고서를 제외하면 사실상 예수회에서 보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수회가 중국 보고서를 출판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중국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중국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자금을 모으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을 이상적인 국가로 매력적으로 그려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후원 기금을 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던 17세기 당시 웹은 이러한 중국의 이상적 이미지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웹이 이 책에서 과도할 정도로 성경의 연대기에 집착했던 것은 17세기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중국 문명을 접했던 느꼈던 당대의 불안감을 드러내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웹이 중국 언어의 고대성을 주장하면서 노아를 영국과 중국의 공통 조상으로 세우고 중국 문명의 우월성을 모두 노아가 중국에 건너가 전달한 덕분으로 논리로 펼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웹이 성경의 세계관에서 중국 문명을 해석하고 포용하고자 했던 시도로 볼 수 있다. 웹을 통해 우리는 17세기 유럽인의 중국 언어 예찬의 기저에 놓인 새로운 문명을 접했을 때의 기대와 불안을 감지할 수 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