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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모르네 나는
海에게서 少年에게
가을?
가난배
千萬길 깁흔 바다
少年大韓
벌[蜂]
밥버레
新大韓少年
舊作三篇
?두고
막은 물
우리 님
아나냐 네가
三面環海國
大韓少年行
태백범[太白虎]
黑軀子의 노리
바다 위의 勇少年
太白山歌 1
太白山歌 2
太白山賦
太白山의 四時
太白山과 우리
봄마지
詩三篇
鴨綠江
?의 불으지짐
大朝鮮精神
더위치기
?門潭
크리쓰마쓰
어린이 ?
물네방아
한힘샘 스승을 울음
새해

봄의 仙女

녀름

보배
봄의 압잡이(일은봄의비)
저 하늘
압헤는 바다
깃븐 보람
한배날
경부텰도 노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崔南善, 육당六堂, 공육公六,

1890년 4월 26일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 철원). 자(字)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1890년 4월 26일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 철원). 자(字)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한국 개화기 인문학의 선구자요, 신문화운동의 개척자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하여 수많은 서양의 고전 명작들과 한국의 고전들을 번역 소개하는 등 출판문화로 ‘문장구국(文章救國)’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1908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인 [소년]을 창간했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으며, 이후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청춘] [새별] 등 많은 잡지를 발간했다. 1919년 3.1운동에 주동으로 참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민족대표 47인 중의 1인으로 체포, 2년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으며, 한국역사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43년 11월에는 일본 동경에서 학도병 지원 연설에 나오는 등 일제에 협력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친일행위에 대한 해명과 속죄를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1957년 10월 10일 [한국역사사전]을 집필하던 중 68세로 작고했다.
* [백팔번뇌(百八煩惱)](1926, 근대 이후 최초의 창작시조집), [단군론](1926),[시조유취(時調類聚)](1928), [심춘순례(尋春巡禮)](1925),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1925), [금강예찬(金剛禮讚)](1926), [풍악유기(楓嶽遊記)](1926), [백두산근참기](1926), [아시조선(兒時朝鮮)](1927), [삼국유사해제](1927), [살만교차기(薩滿敎箚記)](1927, 북방 샤머니즘 해설서),[육당최남선 전집] 15권(1973), [고사통(故事通)](1943), [조선상식문답](1947), [국민조선역사](1945), [역사일감(歷史日鑑)](1947)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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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金文柱)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조지훈 시에 나타난 생명 의식 연구>로 석사 학위를, <한국 현대시의 풍경과 전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서울신문≫(문학평론), 2007년 ≪불교신문≫(시)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8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주관 제9회 ‘젊은평론가상’, 2011년 제6회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대산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형상과 전통≫, ≪소통과 미래≫, ≪
김문주(金文柱)는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95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조지훈 시에 나타난 생명 의식 연구>로 석사 학위를, <한국 현대시의 풍경과 전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서울신문≫(문학평론), 2007년 ≪불교신문≫(시)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8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주관 제9회 ‘젊은평론가상’, 2011년 제6회 ‘김달진문학상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대산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형상과 전통≫, ≪소통과 미래≫,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 ≪백석문학전집 1·2≫(편저) 등이 있으며, 가천대와 고려대, 서울과학기술대와 숙명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계간 ≪서정시학≫과 ≪딩아돌하≫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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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9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94쪽 | 128*188*20mm
ISBN13
9788966803897

책 속으로

海에게서 少年에게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泰山갓흔 놉흔뫼, 딥턔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무어야, 요게무어야,
나의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디하면서,
?리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업서,
陸上에서, 아모런 힘과權을 부리던者라도,
내압헤와서는 ??못하고,
아모리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압헤는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나에게 뎔하디, 아니한者가,
只今?디, 업거던, 통긔하고 나서보아라.
秦始皇, 나팔륜, 너의들이냐,
누구누구누구냐 너의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르리 잇건오나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됴고만 山모를 依支하거나,
됴ㅅ쌀갓흔 뎍은섬, 손ㅅ벽만한 ?을가디고,
고속에 잇서서 영악한톄를,
부리면서 나혼댜 거룩하다하난者,
이리둄, 오나라, 나를보아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나의 ?될이는 한아잇도다,
크고 길고, 널으게 뒤덥흔바 뎌푸른하날.
뎌것은 우리와 틀님이업서,
뎍은是非 뎍은쌈 온갓모든 더러운것업도다.
됴?위 世上에 됴사람텨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뎌世上 뎌사람 모다미우나
그中에서 ?한아 사랑하난 일이잇스니
膽크고 純情한 少年輩들이,
才弄텨럼, 貴엽게 나의품에 와서안김이로다,
오나라 少年輩 입맛텨듀마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 pp.8∼11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 근현대시선’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일본 유학에서 서구 근대를 경험한 최남선은 귀국해서 남은 학비를 털어 1908년 ≪소년≫지를 창간했다. 창간호에는 “학생은 이 잡지로 인하여 아버지와 스승에게 듣지 못하던 신지식을 얻을 것이요, 교사는 이 잡지로 인하여 좋고 적당한 교수 재료를 얻으리라”고 썼다. 이처럼 최남선은 출판 운동을 통해 몽매 상태에 빠져 있는 조국을 계몽하고 중세적 가치에 함몰된 인민을 근대사상으로 교화하고자 했다. 잡지 발간은 물론이고 일반교양서 60여 종과 국내외 대중소설을 발간함으로써 독서 대중에게 ‘요긴한 지식’, ‘고상한 취미’, ‘강건한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이다. 출판과 마찬가지로 최남선에게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무지한 타자, 즉 민족을 향한 계몽적 실천 행위의 일환이었다. 그에게 문학은 개성을 사유하고 실현하는 장이라기보다 몽매한 인민을 일깨우고 개화하는 계몽의 공간이었다. 스스로 “시인의 천품(天稟)을 갖지 못한 자”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의 글쓰기가 본질적으로 근대문학의 심미적 성격에 부합한 것이 아님을 인식한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는 출판과 글쓰기를 통해 새롭게 도래하는 근대 물결을 전달하고자 했으며, 신시(新詩)를 비롯한 시가 역시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시가 형태인 신체시를 처음 선보였으면서도 이를 정착·발전시키지 못하고 전통적인 시가 장르로 돌아갔던 최남선의 문학은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성격과 한계를 잘 보여 준다. 최근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최남선의 삶과 문학은 한국 정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결절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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