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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선과 악의 저편 ……… 13
선과 악에 관한 낡은 관념 | 이브,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과 | 원죄 증후군 |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새로운 나무 1부. 새로운 인식의 열매 01. 선과 악에서 벗어나기 ……… 29 묵시록의 귀환 | 어둠의 세력 | 침팬지 전쟁 | 자기 이익의 원칙 | 공감적 자기 이익 | 타인은 지옥이다? | 문화적 진화와 악의 밈플렉스 |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 선과 악의 평범함 02. 자유의지에서 벗어나기 ……… 115 흔들리는 자아 개념 |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 | 생각이 자유롭다? | 자유로부터의 도피 03. 잘못된 결론 ……… 165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 숙명론의 저편 |모든 것이 임의적이다? | 문화적 상대주의의 오류 | 무죄 패러다임 2부. 새로운 존재의 가벼움 04. 초연한 나 ……… 217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 | 행복이란 무엇인가? | 성장의 자각 | 합리적 신비주의 05. 느슨해진 관계 ……… 265 잘못을 인정하는 기술 | 서로에 대한 용서를 배워야 하는 이유 06. 여유로운 사회 ……… 289 보복은 정당하지 않다 | 묵시록에서 인도주의적인 공동체로 07. 털 없는 원숭이를 위한 복음 ……… 315 진화는 자신의 창조물을 파괴한다 끝맺는 글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 325 원주 ……… 331 찾아보기 ……… 362 |
Michael Schmidt-Sa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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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신교의 신은 절대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으며, 두려움과 후덕함을 함께 갖춘 통일체였다. 힌두교의 많은 신은 지금도 이런 특성이 있다. 유대교에서도 처음에는 신이 여러 가지 의미와 특성이 있어서, 삶의 모든 축복의 원인이자 모든 어려움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유일신적인 의미에서 매우 엄격히 구분한 고대 페르시아의 차라투스트라 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야훼는 통일체로서의 성격을 잃었다. 신은 유대교의 묵시록에서 (나중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점차 ‘절대적인 선’으로 고정되었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절대적인 악’이 존재할 가능성도 생겨났다. 사랑의 신과 등을 맞대고 악마가 출현했다.
--- p.42 공감 능력은 우리의 생물학적 진화에 따른 보편적 유산이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의해 쉽게 차단될 수 있다. 단지 공격하려는 대상을 향해 매몰차게 ‘그들은 그런 고통을 받을 만한 짓을 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며’, 만일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이 혐오해야 하는 온갖 이유를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만 심어주면 된다. ‘타인’이 이런 식으로 비인격화되면, 비인격화된 타인은 우리가 모두 저항해야 하는 ‘보편적 불행’으로 바뀐다. 그러면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눌 자리에 증오와 혐오가 대신 놓이게 된다 --- p.74 도덕의 이름으로 적을 만들어 적과 상반된 실용적 설계도를 함께 제시하면, 구성원은 그것을 도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가장 목소리가 큰 도덕주의자들이 되풀이해서 적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잣대로 정의한 선과 정의를 위해 다른 이들과 투쟁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도덕은 반드시 이중성을 띠고 나타난다. 도덕이야말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벌이는 사회적 충돌에서 가장 유용한 승리전략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도덕적 결속력이 강할수록 집단의 융화력도 강해지고, 외부를 향한 투쟁 능력도 향상된다. --- p.81 공정과 불공정을 판단기준으로 한 윤리적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성적 취향이 무엇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선과 악을 판단기준으로 한 도덕적 관점에서는 타인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절대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도덕주의자가 권력을 쥐면 그런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오늘날 맹목적 도덕주의자가 권력을 장악한 나라에서 아무 까닭 없이 동성애자가 처형되는 것이 아니다. --- p.209 자유의지 가설에서 비롯되는 심각한 결과는 자유의지 가설이 더 큰 차원의 사회적 상관관계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자유의지 가설이 사회 부정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행복은 저마다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은 가난한 자의 가난과 부자의 부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적어도 얼핏 보기에는) 더욱 행복하게 되고, 불행한 사람은 (몇 번을 다시 보더라도) 더 불행하게 된다. 가진 사람에게 확신을 더 심어주고, 가뜩이나 없는 사람에게서 확신을 앗아간다. --- p.302 어떤 철학책은 일종의 ‘새로운 성서’가 되어 ‘최고의 권위’를 주장하는 강력한 밈플렉스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변형이야말로 이 책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일 것이다. 이 책을 바탕으로 ‘무죄의 교회’가 세워지기보다는 아무도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는 벌을 받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이렇게 강조해서 말하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내가 이전에 출간했던 다른 책보다 종교적ㆍ비의적 의미에서 오해의 소지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 p.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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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덕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슈미트잘로몬은 저명한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들이 속한 ‘조르다노 브루노 재단’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이사로, 켈만 인문주의·계몽 재단의 에른스트 토피츠상을 수상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활발히 발표해 ‘두려움을 모르는 사상가’라고도 불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문화라는 이름으로 권력화한 도덕주의의 허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선과 악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탄생한 도덕 개념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절대적인 선으로서 신이 등장하면서 선과 악의 도덕 개념이 절대화되고 고정되었다. 곧 선과 악은 더는 변할 수 없는, 변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 도덕 기준과 원칙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고정되고 절대화된 도덕 개념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대립시키고, 자신들이 정한 도덕 개념에 동의하고 이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한없는 용서와 자비를 베풀지만, 생각과 문화가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차별과 혐오, 보복과 폭력을 부추긴다. 이때 이들은 모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이다. 하지만 저들은 악이다!’ 자의적이고 극단적인 도덕관념에서 도출된 ‘악에 대한 응징과 처단’이라는 구호는 권력자들에 의해서 언제든지 임의로 사용되어 끔찍한 비극을 초래한다. 상황과 맞물려 어떤 집단이 극단적 도덕주의 밈에 감염되면 비판적 사고가 완전히 마비되고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이유는 없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악일 뿐이다!’라는 신념과 광기에 휩싸여 상대에 대한 보복과 폭력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질러진다. 따라서 우리는 아유슈비츠가 ‘악’이 아니라 ‘악’에 대한 망상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경직되고 그릇된 도덕주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하고 윤리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의 분열과 대립이 날로 격화하는 ‘위험한 세상’에서 평화와 공존, 행복을 꿈꾸는 ‘위험한 철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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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도덕 원칙에 기대지 않고도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윤리적이며, 새롭고 평화로운 공존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 최종덕 (학술원 우수도서 『생물 철학』과 『의학의 철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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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가 ‘악’이 아니라 ‘악’에 대한 망상이 아우슈비츠를 만들었다. - [독일 독립신문 프레이어 프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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